내가 사남매를 키우며 힘듦을 이겨내는 방법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1도 없는 우리 부부에게 사남매 육아란 정말 답이 없었다. 힘들어도 무슨일이 있어도 아이를 업고 이고 안고 움직여야 했다.
둘이서 아이들 부등켜 안고 울고 불고 한지 7~8년쯤 되었을 때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정말 미친듯이) 많이 지쳐있었다. 이때는 .. 여행이고 머고 취미고 머고 아무것도 없었다. 쉴 수 없이 움직여야 했고 잠조차 내 마음데로 잘 수 없는 하루하루였다. 일상이란게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고비 넘기고 또 한고비를 넘겼다 이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자마자 더 큰산이 내눈 앞에 있었다. 이 산은 내 혼자 넘어갈 수가 없었다 신랑이 같이 손을 잡아주고. 주위에 사람들이 엉덩이를 밀어 줘야 가능할 것 같았다. 주위에 사람들도 다 그렇게 넘어가고 있었다. 온가족이 힘을 보태도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높은 산에 둘만 덩그러니 있었다. 신랑이 아무리 당기고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넘어가 지지가 않았다 쉽지 않을꺼라고 생각은 했는데 .. 아애 안 넘어가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세아이를 낳았을 때도 네아이를 낳았을 때도 맞벌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돌봄도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때는 진짜 .. 우리 둘다 지쳐버렸다. 그래도 다행인건 시간은 그냥 흘러갔다. 미칠 것 처럼 힘들어도 시간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흘러갔다. 이 높은 산을 시간이 끌고 강제로 올라왔다.
그래서 일까? 어느 순간 부터 아이 우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고 아이가 조금만 쳐져도(아플까봐) 미쳐버릴 것 같았다. 2~3년 전만 해도 신랑의 모든 연차는 아이들 아픈데 써야 했다. 신랑이 쉬고 싶을 때 아플 때는 연차를 사용하지 못했다. 처음 신랑이 연차를 제대로 쓴건 막내가 두돌쯤 제주도 여행갔을 때였다. 그때 "연차는 이렇게 쓰는거지" 둘이서 이야기를 했었다. 네아이 모두 첫 제주도였고 셋째 낳고 첫 여행이었다.
여행 .. 20대 때는 종종 가는 휴가 였다. 먼가 계속 배우고 꿈을 향해 달라가는게 재미있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언젠가는 나도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꿈꾸는 30대 40대는 멋졌었다. 상상하면 이뤄진다고 매일 상상하면서 공부하고 계속 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1~2년에 한번 친구들과 해외 여행을 갔었다. 그외에는 기껏해야 시골이나 엄마랑 가는 계곡이 전부였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예전부터 자연을 좋아했던 것 같다. 조용한 곳에서 유유자적 있는걸 좋아했다.
시끄러운 술집이나 노래방 보다는 조용한 카페를 좋아했다. 그랬던 나였는데..
(잠시 과거 회상 중)
예전에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는데 점점 과거의 나를 많이 그러워한다.
"사남매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야지!!" 와 이건 결심하는게 쉽지 않았다. 첫 여행 갈 때 막내가 두돌이었다. 그전까지는 여행갈 엄두는 1도 내지 못했다. 코로나도 있었지만 [여행] [나들이] 이런건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단어였다. 당장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지치고 힘든데 어디 나간다는 생각자체가 사치같았다. 너무 힘들고 지치면 아무생각도 아무 기분도 들지 않는 다는걸.. 이때 알았다. 첫째 때 느꼇던 일에 대한 공허함, 육아의 힘듦으로 오는 우울증 이런 것도 전혀 없었다. 아니 느낄 여유가 틈이 없었다. 그때의 기억이 1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멘붕 상태였다. 매일 울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지나간 시간과 아직 아무것도 시작못한 나에 대한 좌절감(?) 공허함(?) 머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 그런 감정이 휘몰아 쳤다. 2년째 어린이집 대기 중이기만 한 막내를 보면서 좀 막막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 비행기 티켓을 왜 봤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이 항공권 할인 기간이라며 해외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하길레 나도 그냥 구경이나 해볼까? 했던 것 같다. 막내 두돌 생일 쯤 제주도 비행기 티켓 가격을 보고 '많이 힘들었지 너를 위해 준비했어' 라며 누가 주는 선물 같았다. 왕복 비행기 가격이 1인당 5만원도 안했다. 신랑에게 이야기하고 결재하기까지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렸었다.
막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건 걱정이 안됫는데 우리는 둘인데 네아이를 잘 챙길 수 있을까? 안전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까? 괜히 가서 고생만 하고 오는건 아닐까? 이런 걱정이 휘몰아 쳤다. 그래도 몇년만의 여행인데한번 가보자!! 가보자!! 몇번을 외치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우리가족에게는 쉼표가 필요했다.
비행기 티켓은 진짜 저렴하게 예약을 하긴 했는데 그 다음이 걱정이었다. 6인이 들어갈 수 있는 저렴한 숙소가 있을까? 차는 카니발로 해야 하나? 이 때는 네아이를 데리고 한번도 여행을 안가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들이도 거의 나가본적이 없었다) 숙소는 왜 이렇게 4인실만 보이는지 찾아도 왜 기준인원이 2명이고 최대가 6명인건지 .. 쉽지가 않았다.
지금가라고 하면 정말 잘 할 것 같은데 그때 봤던 저렴한 가격의 비행기 표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 가고 싶다~
내가 걱정했던 것 보다 네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건 더 힘들었다. 쉽지 않았다. 먹는 것부터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안 힘들었다고 하면 그건 100%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밝게 웃는걸 본적이 없었다. 으면서 밝게 웃으며 노는 아이들을 미소 지으며 바라 봤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 보고 있는게 좋았다. 바다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 베시시 웃음이 나왔다. 젖소 농장에서 조르르르 말에게 줄 우유를 들고 가는 사남매가 너어무 ~ 귀여웠다.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하고 뭉클했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 필요는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여유 없게 지낼 필요는 없었는데..
여행하는 동안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즐거웠다 아이들이 아직도 제주도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때의 기억이 아이들에게도 좋게 남아 있다. 그 뒤로 나는 사남매를 데리고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금전적인 이유로 자주 가지는 못한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후, 아이들의 웃음을 나도 즐겁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라는게 일상에서는 찾기 어려웠는데 여행을 가면 먼가 쉼표(,)를 딱 찍어 주는 느낌이 든다. 밥도 다 해먹고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나가서도 할일은 산더미 인데 우리의 표정이 달랐다. 거창하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아니지만 숲으로 바다로 우리는 떠났다.
아이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세상 예민한줄 알았던 둘째는 예민한 아이가 아니었다 호기심도 많고 과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텍텍 거리던 셋째도 "엄마 사랑해" 하면서 뽀뽀를 할줄 아는 아이였다. 우리는 산에서 뛰어 놀고 계곡에서 더위를 날리며 바다에서 조개를 캤다. 나도 아이들도 그렇게 힘듦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함박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나는 많이 힘들다. 네아이를 키운다는건 .. 정말 쉽지가 않다. 몇년 뒤에 일할 수 있을까? 취직이 되긴 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무색하게 시간만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언제까지 다같이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따라다니는 한 계속 같이 다니고 싶다.
이 힘듬 속에서도 우리는 웃었고 즐거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