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대개 시작보다 유지가 어려웠다. 처음 만나는 순간은 가볍고 선명했지만,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조심스러워졌다. 사람을 만나면 마음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말의 온도를 맞추고, 상대의 주파수에 따라 거울처럼 같아졌고 말은 늘 한 번 더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웠고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고려했다.
무언가를 남겨두기보다는 전부 건네는 쪽을 택했다. 그때는 그것이 진심에 가까운 태도라고 믿었다. 사랑은 그런 방식으로 증명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해하고, 더 맞추고, 조금 덜 서운해하면 오래 갈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다 쓰고 나면 대개 이별이 남았다. 누군가는 먼저 떠났고, 누군가는 조용히 거리를 두었다. 남겨진 자리에서 늘 두고 온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부족했던 점을 떠올리고, 고칠 수 있었던 장면을 반복해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 위에 다른 선택을 얹어보는 일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한동안은 그 생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관계는 우연이었다.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면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조금 더 깊어지면 운명이라는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동안,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가까워지고 또 멀어졌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 쉬운 듯 어려웠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문득 멀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고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도 이상하게 또렷한 순간도 있었다. 감정은 분명한 출발점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함께 지나온 시간이 천천히 쌓이고, 그 위에 신뢰와 기대가 겹쳐진다.
시간이 쌓이면 기대가 쌓이고 기대는 대부분 전해지지 않은 채 자랐다. 나는 서로를 하나로 생각하게 되고,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간혹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이 왔다. 그러나 묻지 않은 마음은 종종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해보다 해석이 앞섰고, 해석은 대개 늘 조급한 나를 남겼다.
그렇게 이별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사람이 떠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조용히 자라난 기대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 조금 더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가정. 그런 생각들은 이미 비어 있는 자리 위에서도 한동안 형태를 유지했다.
상담실에서 들은 말이 오래 남은 적이 있다. 결국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이야기였다. 특별한 문장은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그 이해 속에서 안도하고 싶었던 마음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관계 안에 있을 때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 보던 얼굴이 오래 곁에 있을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면은 예고 없이 자리를 옮긴다. 그 안에 머물러 있을 때는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단지 불안이 덧씌워진 감정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질 뿐이다.
많은 관계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는다. 가장 좋았던 시기의 표정, 그날의 말투, 특정한 계절의 공기. 현재를 그 장면과 비교하며 판단하곤 했다. 조금만 어긋나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여겼다. 충분히 묻지 않은 채 결론을 내려버린 적도 있었다. 나에게 사람은 늘 그렇게 다가가고 싶고 다가가기 어려웠던 존재였다.
요즘은 감정이 앞서려 할 때 잠시 멈추는 법도 연습한다. 즉각적인 판단 대신 시간을 두어본다. 생각이 가라앉으면 처음과는 다른 모양이 드러나기도 한다. 언제나 잘 해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모든 것을 다 쓴 뒤에야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줄어들었다.
마음이 어디에서 움직이는지 여전히 단정할 수는 없다. 전부를 건네는 태도가 꼭 진심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만 혼자서도 하루를 감당해내는 일, 작은 선택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그런 시간이 쌓이면 덜 흔들릴 것이라 믿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면 여전히 마음을 먼저 쓴다. 괜히 한 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이해하려 한다. 아마 쉽게 바뀌지 않는 방식일 것이다.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그렇지만 또 시작하게 된다. 모든 것이 흘러간 뒤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지나간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애쓰지 않으려 한다. 오롯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전부라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