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말을 많이 하던 편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할 말이 줄었다기보다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먼저 든다. 그 판단이 언제나 틀렸던 건 아니어서 나는 그 방식을 꽤 오래 믿고 지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이 말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의 반응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말을 꺼냈을 때 생길 수 있는 어색함이나 조금의 실망 같은 것들을 미리 피해 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이 말을 상대를 위해 썼다기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써왔다. 괜히 예민해 보일까 봐, 괜히 부담을 주는 사람이 될까 봐. 그러니까 이 문장은 다정함이 아니라 회피에 가까웠다.
말하지 않은 마음은 생각보다 얌전하지 않다. 조용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왜 이것도 몰랐지’라는 생각으로 모양을 바꿔 돌아온다.
그때서야 나는 서운해진다. 상대가 몰라줘서라기보다는 내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미 잊어버렸기 때문에. 기대는 했지만 요청은 하지 않았다는 걸, 나 스스로도 헷갈린 채로.
요즘은 가끔 말하지 않는 태도가 성숙한 건지, 아니면 그냥 익숙해진 건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조용히 넘기는 게 편해진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을 조금씩 미뤄두는 데 익숙해진 건지도.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말은 상대를 믿는 말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나를 덜 드러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 정도는 혼자 감당해도 된다고,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고 나에게 하는 말.
그게 항상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문장을 너무 자주 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의 위치를 나조차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남아 있는 건지, 이미 지나온 건지.그리고 가끔은 누군가가 몰라준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왔다는 사실이 조금 늦게, 조용히 아프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인생도 관계도, 결국은 말을 하면서 배워가는 거라는 생각.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긋나더라도 다시 맞추기 위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해 속에 남지 않기 위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
말을 한다는 건 관계를 흔드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계속 살아 있게 두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문장보다, 말해도 괜찮을 거라는 쪽을 조금 더 믿어보려 한다. 인생이든 관계든, 결국은 그렇게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일 테니까. 살다보면 인생 별거 없다. 쫄지말고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