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집

by 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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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래된 나무 빛깔의 주택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어릴 적 만난 한 선생님의 집에서의 시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6학년, 매일같이 학교가 끝나면 일명 ‘7 공주’(‘흰 눈이 기쁨 되는 날~’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단지 7명의 소녀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긴 별명이었다)와 어울려 노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특히 수요일은 평일 중 유일하게 학원이 없는 날이었고, 학교도 일찍 끝나기에 우리는 운동장과 동네 놀이터를 누비며 하루 종일 놀았다.


겨울의 어느 날, 7 공주의 멤버 중 한 명인 Y가 미술학원을 가야 한다며 먼저 가보겠다고 했다. 나는 미술을 너무 좋아했지만, 배우던 미술 과외 선생님의 유학으로 인해 강제로 그만두게 된 이후로, 나에게 미술은 더 이상 학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이제 피아노나 미술보다는 수학이나 영어 학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여전히 미술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Y에게 미술학원을 한번 따라가 봐도 되냐고 물어봤고, 흔쾌히 같이 가자는 Y의 손을 잡고 학원으로 향했다.


미술학원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선생님 댁에서 수업을 받는 형식의 학원이었다. 학교에서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언덕을 지나, 첫 번째 골목의 세 번째쯤 되는 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왼쪽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안쪽으로는 약간의 언덕이 하나 더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선생님 한 분이 나오셨고, 처음 보는 아이인 나에게도 너무나 다정하게 웃으며 들어오라고 해주셨다. 그리고 그 순간 펼쳐진 풍경은 초등학생이던 내게 영원히 한 장면으로 각인될 만큼, 좋은 뜻에서 충격적이었다.


거실에는 통유리창이 있었고, 내 몸의 두 배는 될 법한 커다란 캔버스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벽면에는 각종 미술 재료들과 스케치북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일반적인 거실 가구인 소파나 TV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큼직한 테이블 하나가 중앙에 놓여 있었고, Y는 능숙하게 벽면 장에서 스케치북과 물감 따위를 꺼내 와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일반 가정집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풍경에 큰 충격을 받으며, 멍하니 나무 의자 옆부분을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음료수를 내어주시며 나에게도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유하셨고, Y와 선생님과 함께 한참을 깔깔 웃으며 행복하게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한 달 내내, 수요일마다 그 집을 찾아갔다. 밖은 추웠지만 선생님 집은 늘 따뜻했고, 벽난로 앞에는 커다란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열두 살이라고 했었는데, 머리에 귀여운 핀을 꽂고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반질반질한 나무바닥을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져보기도 했고, 빵집을 운영하시던 선생님 남편과 함께 크리스마스 쿠키를 굽기도 했다. 나무 빛깔로 가득한 따뜻한 집에서, 온 집 안에 쿠키를 굽는 향긋한 버터 냄새가 퍼지던 그 순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임을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시간이 너무 좋아서,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용기 내어 말을 꺼냈지만, 엄마의 반응은 예상대로 시큰둥했다. 아마 곧 중학교에 갈 내가 미술을 전공할 것도 아닌데 굳이 돈을 더 들여 학원을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대구답지 않게, 2012년의 겨울은 눈이 많이 왔다.

우리는 포대자루를 어디선가 구해와서, 선생님 집 앞의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를 끼고 있는 언덕에서 눈썰매를 탔다. 그렇게 그 집에서 마지막 추억을 만들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가끔 그 집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일부러 하굣길을 빙빙 돌아 그 골목을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Y 없이 선생님께 인사드리기는 어쩐지 쑥스러워서, 먼발치에서 대문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강아지는 건강히 잘 있는지, 선생님은 여전히 그 큰 캔버스를 다 채우고 계신지, 선생님 남편의 빵가게는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한가득이었지만 끝내 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 계절, 두 계절이 지나고, 한 해, 두 해가 훌쩍 지나버렸다. 오랜만에 그 집이 생각나 다시 찾아간 그 골목길엔 어느새 모두 재개발이 되어 번듯한 오피스텔이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