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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by 박진현

이 이야기는 영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살면서 인간은 악연이든 선연이든 인연을 만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인연들도 있다. 동물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다. 또 무형의 존재(존재하기는 하지만 실재하지는 않는 존재)도 있다. 가령 사랑, 도덕과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은 존재하지만 실재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과 선연이 되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들과 악연이 되어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런 것들은 사람과 붙어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마음과 붙어서 인연이 되기도 한다. 사랑과 사람이 붙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인연이 되기도 하고 도덕과 마음이 붙어 순간적으로 부도덕한 판단을 내려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인연들 중에서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떼지지도 않는 인연들을 영혼의 인연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케셰르 니쉬마트'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히브리어로 '영혼의 인연'이라는 뜻이다. 영혼의 인연에 대해서 나는 선연과 악연의 구분을 짓지 않기로 했다. 그런 기준은 지극히 나의 주관에서 나온 것으로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서 언제든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영혼의 인연들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얼마든지 주관에 의해서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아닐까?


"이야 너 무슨 시인이라도 될 참이야?"

"아니 그냥... 어제 밤에 좀 감성적이어서 적어봤어"

"너 나 알지? 나는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 그냥 다 좋은 거야 안 좋은 건 없어"

"넌 항상 그렇더라? 다 좋은 게 어디있냐?"

"너 내가 말한 것 중에 안 좋은 거 단 하나라도 있었어? 내 말을 잘 들으면 불행할 수가 없어요. 네가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니 옆에 있는게 다 헛수고가 되잖아"


나는 미안하다고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기 싫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 보여준 적도 없고 허락한 적도 없는 남의 일기를 혼자서 읽는 그가 나는 너무도 싫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가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다. 나는 그가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었다. 그의 말이 맞다. 그가 말한 것 중에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아니지 즐겁게 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표현이 맞겠지. 나는 나의 선택권을 모두 그에게 일임이라도 한듯 살아가고 있다. 좋은 점도 있다. 내가 힘들 때 그는 언제나 내 기분을 살피며 내가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내가 슬플 때도 마찬가지로 내가 슬픈 꼴을 못본다. 내가 기쁠 때면 더욱 기쁘게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니 내가 그를 따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비합리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해서 매번 그의 의견을 묵살하고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매번 정신을 차려보면 그의 의견을 듣고 있으며 심지어 그가 조언해주지 않아도 그가 제시했던 것들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기도 한다. 이런 내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내 것이 아니라 그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의 아바타로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나다' 한 번도 그는 나를 대신해서 무언가를 한 적이 없다. 결국 선택도 내가 했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진다. 그는 나에게 조언을 하고(때로는 유혹하듯이) 내가 선택하기만을 기다려준다. 애석하게도 나는 모든 선택을 그의 뜻대로 할 뿐이었다. 내가 책임을 지지 못하는 상황이 왔을 때도 그는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책임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근데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는 어쩌면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만약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가 그가 아니라면 나는 한 번도 그가 아닌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에게 기대본 적은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아주 평범한 남자다. 30대 청년. 친구들을 만나면 기가 죽지 않을 만한 직장도 있고 외모도 나쁘지 않다. 적어도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면 항상 역겹지는 않다. 자존감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운동도 꽤나 잘 하고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쓴다. 직장에서는 일도 잘 하는 편이고 천재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머리도 좋은 편이다. 이는 전부 객관적인 평가들이다. 내가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보는 주변 사람들이 한 말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남자다. 아주 지극히 평범한 남자. 나의 선택권을 그에게 모두 일임한 듯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주관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반대로 내 스스로를 줏대가 있으면서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삶을 스스로 잘 이끌어나간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근들어서 나는 그를 만나고 난 후에 점점 자아를 잃어가고 있으며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내 정신을 이상하고 만들고 자아를 잃게 하는 행동이나 말을 직접적으로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부분은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 정신과 의사도 잘 모를 것이다.



*


벌써 아침인가보다. 7시48분쯤 되었을 것 같다. 50분에 알람을 8시에 알람을 맞췄는데 아직 울리지 않았다. 항상 알람이 울리지 않은 채로 잠에서 깨면 고작 몇 분 정도 더 빨리 깨는 경우가 많았다. 억울한 일이었다. 그 몇 분을 더 빨리 깬 것이 그렇게 억울해서 그런 날이면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꽤 나빴다. 그리고 왠지 훨씬 더 피곤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정신은 깬 상태로 눈을 감고 핸드폰을 잡아서 켜보니 7시40분이었다. 1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10분을 더 잘 것인지 아니면 일어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다시 잠이 들 뻔하였다. 놀라며 핸드폰을 보니 7시 44분. 놀라서 잠이 다 깼다. 알람을 미리 끄고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젯밤 걱정이었다. 매일 밤 이상하게 자려고만 누우면 걱정이 밀려와서 심박수가 빨라지고 뒤척이게 된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선잠과 깨기를 반복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젯밤의 걱정이 떠오른다. 걱정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혹시나 이 일이 내 평생의 일이 되어버릴지는 않을 지, 이렇게 나는 속절없이 늙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노년을 가난하게 보내게 될 것은 아닌지. 걱정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아침까지 이어진다. 나는 걱정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변기에 앉아 쇼츠를 본다. 생각없이 엄지손가락을 내리고 있으면 멍해지면서 회의감이 확 몰려온다. 순간 내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고 초라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나채로 앉아서 대변이나 누면서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내 자신이. 정말이지 그 누구도 모르길 바라게 되는 내 모습이다. 실제로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안다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사람은 알고 나는 모르면 좋을 것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이를 닦는다. 그리고 욕조 안으로 들어가서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는다. 마지막으로는 심호흡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냉수마찰을 한다. 그럼 정신이 번쩍 든다. 아직 깨지 못한 모든 세포들이 전부 동시에 기상하는 느낌이다. 냉수마찰은 한심한 나를 향한 스스로의 질책이기도 하다.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고 나와서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고 차키를 챙겨서 나간다. 여기까지가 1년 365일 내내 절대로 변하지 않는 나의 아침일상이다. 변하는 것이 있다면 시간이다. 쉬는 날은 7시50분에서 10시50분으로 바뀌는데 그것 말고는 정말 단 하나도 바뀌는 것이 없다. 매일같이 누구나 겪을 법한, 누구나 겪고 있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보통의 아침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보내는 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만족한다기 보다는 말 그대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드는 회의감은 냉수마찰로 상계처리를 하니 회의감 역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일상을 응원해주는 이도 있었다. 는 이런 나의 일상을 응원했다. 괜찮다고, 남들 다 그런 일상을 보낸다고, 굳이 아침부터 운동하고 독서할 필요가 있느냐고, 아침부터 에너지를 쏟으면 하루 일과만 힘들어지고 지칠 뿐이라고, 회사에서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는데 집에서라도 쉬고 놀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나는 그의 말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동의한채로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렇게 아침부터 내 옆에서 속삭였다. 회의감이 들 때도 냉수마찰로 상계처리를 하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준 것도 그였다. 절대로 게으른 일상이 아니라고 만약 게으른 일상이라면 조금 게으르면 어떻냐고, 하루종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일도 하는데 그 정도는 게으른 것도 아니라고. 그것 역시 동의한채로 살아왔다. 나는 어쩌면 그의 말에 동의함으로 그런대로 이런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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