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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Mar 05. 2024

안녕 엄마

02. 안정감 있는 삶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가득하다

안정감 있는 삶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가득하다


나의 삶은 언제나 무던했다고 이야기 했었나.

내 삶은 언제나 무던했다.

화목한 가정에 평화로운 일상들, 모나지 않은 성격에

학창시절을 거쳐 대학에 가 졸업을 하는 순간까지도.

나의 삶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잔잔한 수면위 이따금씩 일렁이는 물결들만이 가득한.

뻔한 이야기이지만 수면위의 백조는 우아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수면아래에서는 무던히 열심히 물장구를 치고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한 백조의 우아한 삶은 삶을 이루는 톱니바퀴 중 어떠한 것 하나라도

온전치 않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

백조의 호수는 잔잔해야 하며 백조를 노리는 천적도 없어야 하고 비, 눈도 피해야 한다.

물장구를 치는 백조의 다리에 문제라도 생기면 백조는 금방 균형을 잃고 무너질 것이다.

나의 삶을 지탱하던, 잔잔한 수면 위 우아한 백조처럼 부던히 노력하던 다리 중 하나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다리가 사라진 백조가 잔잔히 헤엄칠 수 없듯, 내 삶은 이제 어떻게든 살아내보려 애쓰는

물장구를 치는 백조의 모습들로 가득해졌다.


나는 이곳에 나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고 가장 슬펐으며 지금도 벗어나려 애쓰는 이별의 이야기에 대해서

회고해보려 한다.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지만 동시에 꺼내지 않는 것도 너무나도 괴로운.

그래서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글로라도 꺼낼 수 있었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엄마와의 이별 이야기이다.

2023년 3월 10일 금요일 새벽 6시


귀 옆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통화 벨소리였다.

잠결에 누구인지 보니 엄마였다.

이상했다. 우리 엄마는 바로 옆 안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정신없이 핸드폰을 들고 안방으로 갔다.


엄마는 2월달 즈음부터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정형외과도 다니고 집중 치료를 위해 다니던 학교에 2주 병가를 낸 상황이었다.

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허리는 원래부터 자주 아팠고 단순히 신경이 눌리거나 디스크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단한 암 덩어리가 우리 엄마의 뼈에서 자라나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엄마는 침대에서 끙끙대며 119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정신없이 119를 부르고 엄마의 바지를 갈아입히고 움직일 수 없는 엄마에게 양말을 신겼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참 길었다.

집에는 나랑 엄마 둘 뿐이었다.

아빠는 다른 지역으로 출장 발령이 나서 여름까지는 집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고

대학생인 동생은 기숙사에 있었다.

무서웠다. 그냥 너무 무서웠다.

엄마가 아픈게 너무 무서웠다.

동시에 아픈 엄마의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무서웠다.

"어느 병원으로 갈까요? 가까운 병원에 가는 방법도 있고 좀 걸려도 큰 병원에 가는 방법도 있어요.

결정은 보호자께서 하시면 됩니다."

구급대원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내가 꼭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호자라니, 내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수 있나.

앞에 사람이 이렇게나 아파하는데 내가 그런 걸 결정할 수 있나.

그냥 어디라도 좋으니 의사가 우리 엄마를 빨리 봐줬으면 좋겠는 마음이었다.

병원에 가면 괜찮아지겠지. 별거 아니겠지.

병원에 아픈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우리 엄마는 별거 아니겠지.

응급실에 도착해서 병원 수속을 받고 아빠한테 전화를 해 상황을 알리는 순간에도

나는 정말 별거 아닐거야 라는 말만 속으로 되뇌었다.

정말 그러길 바랐고 그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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