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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로 가는 가장 먼 길 -1

제발 이 비행기에서 내려줘!

[널 보려고 7시간 날아와쏘..삿포로 치토세공항 명물]


상황은 앞서 작성한 신라면으로 돌아간다.

(고글 :우리가 경험하는 공항은 일부에 불과하다 6)
 
이른 아침 나의 여정을 아는 회사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그도 공항에서 일한다)
 ”심상치 않아 지금 상황이. 가지 말지? “
”야 인마, 나 지금 뱅기 탔어 뭐 여기서 뛰어내릴까? 나 간다잉“
 
공항 짬밥 동료말을 무시한 나는, 곧 그의 직감의 실체를 알게 된다. 사실 난 디아이싱에 대해 건너건너 들었을 뿐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9시 비행기였고, 기내식 줄 생각에 딸내미 아침밥이며 간식이며 하나도 먹이지 않았고, 탑승 후 아이 수발, 비디오 세팅 등 한창 정신없는 차에 문득 창밖을 보니 아직도 낯익은 게이트 풍경.
 
‘음? 뭔가 이상한데. 왜 안움직이지
 
이내 기장님의 방송이 나온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기장입니다. (왜 기장님들은 자기 이름을 안 말할까? 기장인 거 다 아는데 )
이 비행기는 대설 및 공항 혼잡으로 인해 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처음에는 납득할 만한 상황이었기에 기다렸다. 대설주의보였으니까. 그러는 사이 1시간 여가 흐르고 슬슬 딸내미가 배고프다 짜증 내는 찰나 두 번째 방송이 나온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기장입니다 (ㅋㅋ) 아직 인천공항 혼잡 및 대설로 인해 이륙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 30분 뒤 또 나오는 방송, ”안녕하십니까 저는 기장입니다. 곧 제방빙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하..) 이동 시간이 정해지면 알려드리겠습니다. “
 
그 사이 일부 손님들은 기내식을 미리 달라며 클레임을 하였는데, 관제탑은 무한 기다리라 하고, 승무원은 비행기 이동시간을 모르는 상태에서 기내식을 나눠 줄 수 없는 상황인 듯했다.
 
11시 즈음, 아이의 배고픈 짜증을 (내가) 견디지 못하고 승무원에게 살짝, 혹시 땅콩과자라도 줄 수 없는지 물어봤으나, 아주 곤란한 얼굴로 거절당했다. 느낌상 단거리 구간이라 주전부리를 소량 탑재(혹은 미탑재) 하는데, 밀폐된 상황에서 한 명 나눠주면 전원이 달라하는 곤란한 상황이 생길까 봐 방지하는 느낌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딸아이를 달래는데, 승무원이 조용히 와서 “이거라도 아이 먹이셔요” 소곤대며 개인적으로 가져온 도넛을 건네주었다. 괜스레 눈물이 글썽, 인류애 충전, 고마울 따름이었다.
 
1시간이 또 흐르고 방송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기장입니다. 약 40분 뒤 제방빙 장소로 이동 예정입니다 “ (하..) 네 번째 방송에서야 구체적 시간이 나왔다. 마침내 관제탑으로부터 일정을 전달받은 것이다. 그 순간 승무원들은 일사불란 기내식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방빙 작업을 마치고, 내가 탄 비행기는 문이 닫히고 무려 4시간이 지난 시점에 비로소 이륙할 수 있었다.
 
그사이 딸내미는 좋아하는 만화도 실컷보고, 게임도 하고, 밥도 먹고 비행기가 뜬 직후부터 2시간 내내 푹 잤다. 내가 잠깐 잠든 사이 혼자 갤리에 가서 승무원에게 어린이용 퍼즐도 야무지게 받아오신 따님. 이후 딸내미는 비행기에서의 시간이 아주 즐거웠다 하더라. 너만 즐거웠어..
 
딸아, 너라도 행복했으니 다행이다! 왜냐면.. 하필 우리 비행기가 가장 오래 지연되는 바람에, 승객 특이사항을 체크하던 팀장님께 엄마의 탑승이 들통나 버렸거든. 몰래 가는 여행이었는데^^^
 
뭐, 둘 중 하나라도 행복했으니 성공한 여행 아니겠는가?
그렇게 잊지 못할 기억을 안고,  딸과의 24년도 첫 여행을 시작했다, 겨울, 삿포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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