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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pr 22. 2020

<이어즈&이어즈>: 우리가 세상을 망쳤어. 만족해?

드라마 <이어즈&이어즈(Years and Years)> 내맘대로 리뷰

(주의) 이 콘텐츠는 드라마 <이어즈&이어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담고 있으므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다 



만일 어느 날 은행이 전부 망해버린다면? 모든 국민이 의무로 투표를 해야 하고, 투표하지 않으면 처벌받는 법이 생긴다면?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난 정치인이, 모든 학교에 스마트기기를 무력화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하고, IQ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국민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면? 지금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콧방귀를 뀌고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를 보고 난다면, 이 말도 안되는 디스토피아가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고작 6부작밖에 되지 않지만,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미래는 현실적이고, 참담하고, 또 희망적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영국의 평범한 '라이선스' 가족들이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2019년 영국은 브렉시트 직후, 혼란하지만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업가 출신 정치인 비비언 룩(엠마 톰슨)은 공영방송에 나와 욕설을 하기도 하고(I don't give a fuck), 난민 문제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상식을 초월하는 황당한 말들로 국민들을 선동한다. 라이언스 가족들은 그녀에 대해 욕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5년이 지난 뒤, 가족들 중 셋째 아들인 대니얼은 우크라이나 난민 출신인 빅토르와 사랑에 빠진다. 그 사이 비비언 룩은 사성당을 창당하고 점차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 가족들 중 막내인 로지는 비비언 룩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그녀의 말도 안 되는 공약들에 찬사를 보낸다. 할머니 뮤리엘의 생일 밤,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미국은 남태평양에 위치한 중국령 섬인 훙샤다오에 핵무기를 발사한다. 훙샤다오 현장에 있던 사회 운동가이자 라이언스 형제 중 첫째인 이디스는 이 사건으로 피폭된다. 급기야 세계 증시가 급락하고 은행이 도산하여 라이언스 형제 중 둘째 스티븐과 그의 아내 셀레스트는 저축액을 모두 잃고 쫄딱 망하는 신세가 된다. 이후 비비언 룩은 영국 수상이 되는 데 성공하고, 전세계의 현대사는 더욱 더 요동치기 시작한다. 


비비언 룩(엠마 톰슨)이 만든 사성당의 심볼


끔찍한 상상은 늘 현실이 된다


60분 남짓한 6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드라마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 '라이언스' 가족의 삶을 중심으로 곧 닥칠 지 모르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은행의 줄도산, 대공황 시대의 도래, 난민 문제, 쿠데타와 테러, 핵무기의 효과, 전 세계를 강타하는 전염병 등 시리즈 내에 워낙 많은 이슈들이 등장해서, 어떤 이슈는 비중 있게 그려지지만 어떤 이슈는 간단하게 언급되고 넘어가기도 한다. 최근 코로나 19를 겪고 있는 시점에 보자면, 꽤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전체 에피소드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순히 작가적 상상력에 기반해 만들어진 시리즈라고 보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득될 만한 포인트가 충분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진짜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라이언스 가족은 이 모든 이슈들을 관객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해 주는 전달자이자, 관객이 각 이슈의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적 캐릭터로서 기능한다. 일례로 라이언스 형제 중 셋째인 대니얼은 주택관리일을 하던 공무원이었으나,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으로 영국에 오게 된 빅토르 고라야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정치적 이슈로 난민과 관련된 정책이 급변하는 동안, 빅토르와 대니얼은 생이별을 했다가 만나기를 반복하며 힘든 사랑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얘기같았던 난민 이슈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좌우하는 엄청난 이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하는 대목이다. 


빅토르 고라야(좌) 와 대니얼 라이언스(우)


라이언스 형제 중 둘째인 스티븐의 에피소드도 다른 형제들만큼이나 기구하다. 금융전문가로 일하던 스티븐은 회계사로 일하는 아내 셀레스트와 함께 두 딸을 풍족하게 키우며 런던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은행들이 줄도산하며 찾아온 세계 불황에 스티븐의 은행 계좌는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큰 집에서 행복한 삶을 살던 스티븐은 이제 집도 팔고 그 와중에 사기도 당하며, 택배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위치를 영위하던 가장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이 와중에 그는 바람까지 피워서 두 딸과 아내, 그리고 친할머니로부터 외면당해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이 캐릭터를 연기한 로리 키니어는 개인적으로 중년의 찌질함을 가장 잘 표현해 내는 배우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그의 벗겨진 머리마저 중년 남성의 찌질함을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장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 시리즈 중반에 택배원이 된 그가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로 택배를 배달하는 모습을 보면 그 생각이 더더욱 증폭된다. 다만 그의 찌질함은 찌질한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리즈 속에 잘 표현된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더더욱 서글프다. 


스티븐 (로리 키니어)


로튼토마토 신선도 89%, 관객점수 90%에 빛나는
 영국 드라마 <이어즈&이어즈>


<이어즈&이어즈>는 <닥터 후> 메인 작가인 러셀 T 데이비스(Russell T Davies) 가 각본을 썼고, 엠마 톰슨이 황당한 법안을 제시하는 유명 정치인 비비언 룩으로 등장해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다. 엠마 톰슨이 맡은 비비언 룩은 극의 전체를 관통하는 캐릭터다. 그녀는 라이언스 가족과 직접적인 접촉을 거의 하지는 않고, 대부분 TV 속에 등장하는 정치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국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최근에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리즈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얼굴을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훌륭하고, 특히 스티븐 역을 맡은 로리 키니어와 대니얼 역을 맡은 러셀 토비의 연기력은 가히 경이롭다. 배우들의 떨리는 눈가와 동공까지도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배우는 블랙 미러 시리즈에서도 만나본 적 있는데, 개인적으로 두 배우의 작품 보는 눈이 꽤 인상 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는 것은 배우로서도 굉장히 고민 되는 지점이었을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이 두 배우의 향후 필모그래피가 상당히 기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세상이 이렇게 된 건 다 너희들 탓이다. 


시리즈 마지막 즈음에 라이언스 형제들을 앉혀 놓고 할머니인 뮤리엘이 던지는 이 대사는 단순히 극 중 등장인물들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각본가인 러셀 데이비스가 6부작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자,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뒤바꾸어 놓는 대사기도 하다. 결국 세상을 망치는 건 행동하지 않는 개인, 불의를 보고도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관하는 개인, 불평 불만을 늘어놓지만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은 하지 않는 개인이라는 것. 은행이 줄도산하고 사람들은 길거리로 나앉고, 환경오염은 점점 더 심각해져 매년 범람하는 홍수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속출하고,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펴는 정치인의 등장으로 인권은 말살당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도록 방치되는 사회. 그 모든 디스토피아의 처음과 끝에는 결국 우리가 있고, 아주 작은 부당함을 목격했을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아무 말도 안하고 내버려둔 것도 결국 우리라는 것. 그 대사가 뇌리에 남아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2020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시리즈를 보는 내내 이 다음은 어떻게 흘러갈지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자,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생길 수 있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판타지. 2020년 3월 13일 왓챠플레이를 통해 국내에서 독점 공개되었으며, 왓챠플레이에서 전편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즈&이어즈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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