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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Dec 20. 2019

세종과 장영실은 친구였다?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내맘대로 리뷰

이 콘텐츠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시사회 참석 이후 작성된 것입니다.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담고 있으므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스토리로 승부하는 영화 VS  배우로 승부하는 영화



한 편의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토리로 승부하는 방법이다. 엄청난 반전을 말미에 숨겨놓는다거나, 자극적인 이야기, 탄탄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불러오는 데 성공하면 그 영화는 대개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조금 뻔한 스토리의 영화라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다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배우'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초호화 캐스팅, 충무로를 뒤흔들 법한 캐스팅,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종종 눈에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후자에 가깝다. 장영실과 세종대왕이라는 아주 뻔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과연 이 훌륭한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해 냈는지, 그리고 감독은 그것을 132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어떻게 녹여냈는지, 그 양상을 관전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호군 장영실이 안여(安與: 임금이 타는 가마) 만드는 것을 감독하였는데,
튼튼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실록에 남아 있는 이른바 '안여 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실제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이 타는 가마를 장영실 등 여러 사람이 만들었는데, 안여가 부서져 이에 대한 책임을 여럿에게 물었다고 나와 있다. 이때 처벌받은 사람 중 유일하게 장영실만이 이후 실록에서 자취를 감췄다. 세종에게 다년간 촉망받으며 면천까지 받을 만큼 승승장구했던 장영실이 명확한 생몰연대도 알 수 없게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일부 호사가들은 여러가지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도 이 부분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비어 있는 역사적 사실간의 틈을 메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장영실과 세종간의 관계가 부각되며, 두 인물이 오랜 세월 쌓아온 일종의 우정 내지는 브로맨스와 같은 관계를 영화는 섬세하게 그려낸다. 때문에 자연히 주연을 맡은 두 배우에게 눈길이 가게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브로맨스가 우정과 애정 사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아마 일정 부분은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두 인물 간의 관계가 굉장히 끈끈하고 친밀하게 그려지며, 그 이유를 영화는 꿈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안여 사건이 애초부터 스케일이 큰 역사적 사건이 아닌데다, 엔딩으로서의 임팩트를 주기에도 약한 사건인 탓에 다소 스토리를 길게 늘어뜨린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말해 달라고 한다면, 완벽한 배우들이 혼신을 다해 만들어내는 132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일단 주연을 맡은 최민식(장영실 역)과 한석규(세종 역) 두 배우의 시너지가 폭발하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가히 용호상박이라는 단어가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는다고밖에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두 배우가 펼치는 연기는 얼굴 떨림과 주름 하나하나까지도 제어하는 듯한 섬세함을 내비친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상세한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엔딩에 가까워질수록 두 캐릭터의 케미는 극에 달한다. 사실 이들을 한 화면에서 보는 것이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이를 관전하는 것만으로도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기회임은 틀림없다.



배우 한석규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미 세종 캐릭터를 연기했던 적이 있다. 당시 그의 연기를 좋아했던 팬으로서 이번 작품은 일종의 스핀오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하게 닮아있는 구석이 있다. 다만 드라마와는 달리 장영실을 믿고 의지하는 벗으로 만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친구에게 인생을 상담하는 인간적인 세종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캐릭터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극 초반 줄곧 노쇠한 모습으로 등장하던 세종이 후반부에서 본인의 카리스마를 폭발시키는 장면은 배우 한석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영리하게 활용한 장면이기도 하다. 연기판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인 그가 완급 조절을 훌륭하게 해내면서, 다소 예측되는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힘을 십분 발휘했다.



또 다른 주연인 최민식의 연기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영화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온 최민식이 이번 영화에서는 어린아이같은 천진함을 지닌 천재의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 그가 표현한 장영실은 마치 알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새끼새가 어미새를 따르듯, 세종의 모든 행보와 결정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독특한 캐릭터다. 그의 이런 연기가 두 배우간의 케미를 단단하게 다지는 역할을 하면서, 극 후반부 장영실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낸 모든 상황을 납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한석규와 최민식 외에도 신구, 김홍파, 허준호, 김태우, 김원해, 임원희, 오광록, 박성훈, 전여빈 등 다양한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해 영화 전반을 빈틈 없이 메운다. 웬만한 영화에서 주연을 맡을 법한 배우들이 극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등장하니 후반쯤 되면 누가 등장해도 놀랍지 않을 판. 심지어 유명 배우들임에도 출연 분량이 많지 않은 경우가 있기도 해서 더 놀랍다. 각자의 역할에서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완벽한 완급 조절을 하고 있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이토록 수많은 명품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만큼 연기의 교과서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완벽한 작품이라고 칭하긴 어렵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스토리를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끌어가다 보니 전반적으로 사건들이 평이하고 늘어져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역사 기반 영화들이 남성 중심의 서사를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 인정하는 바이지만, 작품 전체를 통틀어 등장하는 여배우가 전여빈 하나 뿐이고, 그것도 5분 가량 등장하고 굳이 여배우일 필요도 없었던 역할이라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다. 이러한 남성 중심의 서사는 세종과 장영실이라는 두 남성 캐릭터 간의 진한 우정과 꿈에 대한 스토리로 이어지는데, 이 두 캐릭터의 케미 이외에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가 2020년을 앞둔 이 시점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영화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현재의 관객들이 단순히 두 배우의 연기력 이외에 이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이 시점에 세종과 장영실인지, 과연 이 영화가 어떤 영화로 남고 싶었던 것인지가 여전한 물음표로 남아있는 것이 다소 아쉽다.


한석규와 최민식의 연기 대결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


다소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를 비롯한 수많은 배우들의 연기력을 관람하기에 충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마치 한 편의 예술을 감상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세종과 장영실의 마지막이 이 영화와 같았을 가능성은 사실 없다고 하니,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로만 즐긴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서는 안 되겠다. 12월 26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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