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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Feb 08. 2017

나를 믿을 수 있습니까?

선입견과 진실에 대한 영화 '재심'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감상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입니다.


* 본 포스팅은 작가의 주관적 시선에 기반해 영화를 읽고 있습니다. 때문에 미흡한 점이 많겠지만, 너그럽게 읽어 주세요.


두 배우의 브로맨스(....)

늦은 밤 한적한 길거리.
그 길을 걷다 검은 마스크에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허름한 점퍼를 입은 사람과 마주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형형한 눈빛을 한 채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건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힐 것이다. 게다가 그 길에 아무도 없고, 그 사람은 왠지 수상해 보인다면?

아마도 너무 공포에 질린 나머지, 주머니 속에 든 내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쥐면서 112 번호를 누를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선입견이란 그런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기도 전에 우리는 다양한 정보로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린다.
그 사람이 입은 옷, 가지고 있는 시계나 구두의 값어치. 헤어스타일. 문득 내민 명함에 적혀 있는 직업. 다니는 회사. 출신 대학. 선량한 미소나 친절한 멘트.

정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섣부른 판단에 기초해 이 사람을 믿어도 될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게 늘 정답이라고 할 순 없다.

그 겉모습 아래 정말로 어떤 사람이 숨어있을지, 제대로 알기 전엔 알 수 없다.
그런 겉모습에 속아 쉽게 사람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다.


영화 '재심'은 바로 그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다.


119분 간의 눈호강


사실 영화의 결말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재심의 주된 내용은 실제 있었던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일부 각색된 부분이 있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그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에 대한 추측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2000년 8월에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여러차례 찔려 사망한 사건이다. 처음에는 최씨 성을 가진 소년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살인범으로 기소된다. 최군은 1심에서 범행을 부인해 징역 15년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범행을 시인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2003년 6월 진범이 잡히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게 된다.

이후 최군은 2016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 법적 보상을 받고 평범한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사건의 변호인이었던 박준영 변호사는 이후 여러 재심사건을 맡아 성공시키기도 했다.


실제 사건은 영화만큼이나 비극적이고, 또 비현실적으로 흘러갔다. 그 과정을 그려내는 것은 아마 법정물이 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떻게 무죄판결을 받아내느냐에 대한 법정영화가 아니다. 만일 법정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에 가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마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실제로 영화 상에서 법정 씬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이 둘은 닮은 듯 다른 캐릭터로 등장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던 약촌에서 어느 날 대한민국을 뒤흔든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10대 소년 현우는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한편, 돈도 빽도 없이 빚만 쌓인 벼랑 끝 변호사 준영은 거대 로펌 대표의 환심을 사기 위한 무료 변론 봉사 중 현우의 사건을 알게 되고 명예와 유명세를 얻기에 좋은 기회라는 본능적 직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현우를 만난 준영은 점점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강하늘 만세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내내 선입견에 사로잡힌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배우 정우가 연기하는 돈에 환장한 변호사 캐릭터는 최근 들어 많이 등장하는 속물적 캐릭터지만 여전히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고, 배우 강하늘이 보여주는 피해자 캐릭터도 그렇게 불쌍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알록달록 염색한 머리, 왼팔에 박힌 문신, 거친 말투와 행동은 우리에게 충분한 오해거리를 심어준다. 이 외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우리의 선입견을 끊임없이 시험한다. 그리고 과연 우리들이 정말로 사람 그 자체를 보고 있는지,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끝까지 믿어줄 단 한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 역시 스스로의 편견과 선입견을 끊임없이 시험당한다. 흔들리고 의심하는 것은 우리 뿐만이 아니라 그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쥐고 살아가는 그들은 이제 겉으로 보이는 것, 정황상의 근거들, 그 모든 것들을 건너뛰고 서로를 이해하고 믿을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겐 쉬운 길도 주어진다. 그저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선택하면, 마음은 불편하더라도 몸은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 앞에서 쉬운 길을 버리고, 대신 제대로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런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선입견을 무릅쓰고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행운인가 하는 생각을 보는 내내 했다. 물론 돈이 중요하고, 물론 물질적 가치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진짜로 존재할런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래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 사람 자체를 보고 제대로 믿어줄 수 있는지. 


역시 감초 역할은 이자를 따라올 사람이 없지

나는 이 영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약간의 신파와 함께 무리수도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이 매우 탄탄하다. 이제는 원로 배우가 된 김해숙과 이경영이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고 있고, 젊은 배우 정우와 강하늘, 이동휘의 연기는 무르익어 극과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진다. 그 외 조연들의 연기도 대체로 훌륭하다. (특히 형사 분 연기 완전.....)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으니 매끄럽게 소화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또 너무 극적인 대사를 적절히 자제한 것도 좋았다. 한국 영화 특성상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억지 눈물이라기 보다는 캐릭터의 상황이 찬찬히 쌓여 만들어지는 장면이라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두 주연배우들의 소회가 궁금해졌다. 두 배우는 작품을 찍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특히 극 중에서 갖은 고생을 하는 배우 강하늘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영화를 촬영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생겼다.


이 바닷가 배경이 너무 좋았다


영화 '재심'은 오는 1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좋은 배우들이 함께한 좋은 영화다. 

영화관에 걸린 후 꼭 한번 들러 그들의 이야기를 감상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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