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지 뭐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

by 김승월

아이루페 사무실로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서울 성모병원 안과에서 받아온 저시력 보조기 안내서를 손에 들고 오셨습니다. 그 안내서에는 아이루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여의도 사무실까지 찾아오신 거죠.


어머님은 양쪽 눈 시력이 아주 조금만 남아 있었습니다.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원래는 눈이 아주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백내장이 찾아왔고, 1년 전 강원도의 한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답니다.

한쪽 눈 수술 후, 이어서 다른 눈도 수술을 했는데…
붕대를 푸는 순간, 거울을 보며 깜짝 놀라셨다고 합니다.
“내 얼굴이 사라졌어…”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말하지 않아도 전해졌습니다.
그 후 여러 병원을 다니며 치료도 받아보셨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마음고생도 크셨답니다. 분노도 하고, 원망도 하셨다지요.


올해 85세인 어머니는 자식들 모두 훌륭히 키워내셨다고 하십니다.
목사가 된 자제분도 계시고, 손주 두 분은 의사라고 자랑도 하셨지요.
그렇게 한평생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말년에 이런 일을 겪으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담담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 남의 자식을 탓하겠어. 백내장 수술받고 눈이 이렇게 됐지만, 다 하나님 뜻이지…”

성모병원에서 처방해 주신 제품 중 하나인, 에센바흐 ‘맥스’라는 망원경형 보조 안경을 권해드렸습니다. TV를 보기에 좋은 보조기입니다. 안경처럼 쓰지만, 망원경처럼 두 개의 이중 렌즈를 조절해 화면을 크게 볼 수 있는 도구지요.

하지만 어머님은 고개를 젓습니다.
“겨우 보이긴 하는데, 오래 쓰고 있기가 힘들어. 그냥 소리만 듣지 뭐…”

옆에 계신 아드님은 자꾸 써보시라고 권하지만, 어머님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셨습니다.

max.jpg?type=w773 에센바흐맥스

이번엔 일본에서 들여온 ‘가부키 안경’을 보여드렸습니다.


원래는 오페라글라스처럼 공연장에서 쓰는 안경이지만, 저시력인이 TV 볼 때도 유용한 제품이지요. 화면이 크게 보인다며 감탄하시다가도, 이내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크게 보이긴 하네. 그래도 그냥 살지 뭐…”


근거리 작업용 루페와 에센바흐 ‘모빌룩스’ 확대경도 보여드렸습니다. 다양한 배율로 글자를 보실 수 있도록 설명드렸지요. 어머니는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문득 밝게 말씀하셨습니다.
“글자가 보여! 1년 만에 글자가 보인다!”

하지만 또다시 뒤따르는 말씀…
“근데… 힘들어. 그냥 살지 뭐…”

아드님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설득하셨고, 결국 6 배율의 모빌룩스 확대경을 구입하셨습니다. 눈앞에 아주 가까이 대고 봐야 하는 보조기기지만, 어머니처럼 시력이 극도로 낮은 분들에게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산업용이지만, 생활하는데 쓸모가 있지요.

%EB%AA%A8%EB%B9%8C%EB%A3%A9%EC%8A%A4.jpg?type=w773 에센바흐 모빌룩스



계산을 마치고 돌아가시려던 어머니는 아드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너 필요하면 네가 가져라.”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보잘것없는 물건 하나에도 자식 먼저 챙기는 그 마음.
어머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냥 사시면' 아드님 마음이 무거워질까봐 안타깝네요.


achim-ruhnau-P1QpDeKJfys-unsplash.jpg Achim Ruhnau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