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①
1.5미터 앞에 마주 않아 있던 송승환 감독이 내게 말했다.
"김 PD 얼굴이 안 보여요, 얼굴 형체하고 모자 쓰고 안경 끼었다는 것만 보여요."
어느 정도 보이냐고 물었더니, 안갯속처럼 뿌옇다고 하면서 내게 한 말이다. 환하게 웃는 표정이 그처럼 안 보인다는 말을 믿기지 않게 했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그리 안 보이는데도 연극을 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우린 소년 가장 출신이지요."
2003년쯤이었다. MBC 라디오 '양희은 송승환의 여성시대' 제작팀들과 점심을 했었다. 당시 나는 담당 부서의 부장으로 그분들을 모셨다. 그 자리에서 송승환 씨는 웃으며 양희은 씨와 자신은 소년 소녀 가장 출신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역 탈랜트로 활동하면서 어려운 가정 살림을 재정적으로 보탰단다. 누구보다 일찍 삶의 무게를 맛본 셈이다.
1980년대 그는 KBS라디오에서 '밤을 잊은 그대를' DJ 했었다. 나는 MBC 라디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PD였다. 경쟁 프로그램의 DJ 인 그를 남다르게 봤고, 그의 깔끔하고 반듯한 멘트, 세심한 진행, 성실한 태도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의 삶도 방송도 그러했다. 훗날 그가 연극 난타를 기획하고, 평창올림픽 전야제 총감독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역량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와의 다시 만남은 2020년 들어서다. 그가 시력 장애로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나는 MBC 정년퇴직 후에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고, 딸은 저시력인들을 위한 저시력보조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딸은 세계 각국의 최첨단 저시력 보조기정보를 수집하고, 좋은 제품을 찾아서 수입해 왔다. 국내에서도 저시력 보조기 생산 업체를 찾아다녔다.
그때 한 회사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일본 후지쯔 자회사의 특수한 저시력보조기였다. 담당자는 이 제품의 홍보를 위해서 송승환 씨가 직접 활용하기를 바랐다. 송승환 씨에게 오랜만에 연락했고, 그는 동숭동 사무실로 우리를 불렀다. 혹시라도 했지만 역시 송승환 회장 다웠다. 그가 맡은 단체의 회장실은 20여 평의 넓은 공간이었다. 그는 환한 얼굴로 거침없이 악수를 청했다.
"김 PD 얼굴이 안 보여요. 윤곽만 보여요. "
그 한마디가 그의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세계각국의 최신 저시력 보조기를 써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눈에 확 뜨이는 제품은 아직 없었단다. 성공은 그만큼 힘들다. 수많은 실패를 거치기 마련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넷플릭스로 드라마 본다고 했다. 자막이 보이냐고 물었다.
"넷플릭스에는 자막을 소리로 읽어주는 기능이 있어요, 영어는 그 기능이 있는데, 한국어에는 그 기능이 없어서, 그 기능을 넣어달라고 넷플릭스에 제안했어요, "
탤런트출신에다 영화배우, 연극인이니 새로운 영화에 얼마나 목마를까.
일반 저시력인들이라면, "안 보이니까 못 본다"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한적인 문화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다르게 적응하는 길을 찾았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에센바흐 갈릴레이 안경부착형 미니 망원경 때문이다. 딸의 사업체인 아이루페에서 독점 수입하고 있는 독일 에센바흐사의 갈릴레이를 스타안경원 대표 김동원 안경사가 접이식 이중 안경테에 부착하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이를 저시력인들에게 제공하여 효과를 봤다. 이 새로운 제품을 송감독에게도 권하고 싶었다.
"무겁지만, 연극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네요."
몇 주간 활용한 뒤 그가 한 말이다. 그는 연극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다시 무대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정체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보이는 길을 찾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송승환이기에 연극무대에 다시 섰고, 파리올림픽 전야제 해설도 담당했다. 유뷰브 <원더풀 라이프>도 진행하고 있다. 2026년 1월부터 공연되는 연극 <더 드레서>에서 새로운 역도 맡았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그가 한 말이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 쟎아요, 적응할 수 있어요."
그 말은 결코 가벼운 위로의 말이 아니다. 그의 삶 전체에서 증명해 준 말이다.
사람마다 장애의 정도는 다르지만,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어떤 이들은 길을 찾아낸다.
어떤 학생은 돋보기 하나 들고 공부해서 연세대학교에 입학했고, 어떤 음악인은 악보를 외워서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안 되는 이유" 보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삶의 의지 아닐까.
저시력은 단지 보이는 것을 가릴 뿐, 삶의 길까지 막지는 못한다.
송승환 감독은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삶을 잃지 않았다.
그의 적응 방식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창조적인 노력이다.
이 글을 시작으로, 저시력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지를 브런치북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에 소개하려고 한다.
그분들의 이야기는 분명,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이 되어 줄 것이다.
나 또한 나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브런치북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송승환 감독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어집니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