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지요_ 작곡가 진동주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②

by 김승월

어둠을 비추는 노래


샴쌍둥이로 태어난 자매가 있었다. 둘 중 한 아이는 세상을 떠났고, 살아남은 아이는 몸도 마음도 약했다. 6학년이 되었어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고, 수업 따라가기도 벅차했다. 그 어린아이에게 합창을 시키고, 노래로 사람들 속에 서게 한 선생님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약한 어린이, 세상과 어울리는 일이 버거운 아이들에게, 노래는 통로가 된다.

음악으로 어둠을 밝혀 길을 비처준 사람, 작곡가 진동주 선생님이다.

“그때는 몰랐죠. 장애 어린이도 가르쳐 보았지만, 제가 시각 장애인이 될 줄을.....”


작곡가의 문을 열어준 MBC창작동요제


진동주의 본격적인 작곡 활동은 MBC창작동요제에서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초등 음악교육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하며, 단국대학교 음악 교육대학원에서 작곡가 정세문의 가르침을 받았다.


1991년 그가 작곡한 ‘하나가 되자’가 MBC창작동요제에서 입상하며 작곡가로 등단했다.


그해 나는 창작동요제 담당 라디오 PD였다. 창작동요제는 라디오 부문에서 행사를 진행했고, TV 부문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나는 여섯 차례에 걸쳐서, 창작동요제 AD, PD, CP를 맡았기에, 창작동요제 수상자들이 간 길을 지켜보았다.


진동주는 MBC창작동요제에서 네 차례 수상했고, KBS 창작동요제에서 두 차례 수상하는 등, 전국 규모 창작동요제에서 모두 열한 번 입상했고, 심사위원으로 활동을 넓혔다. 그가 작곡한 동요 중에서, MBC창작동요제 수상곡인 ‘하나가 되자’, ’ 푸른 산 푸른들’ , 노래하는 숲 속‘ 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200여 곡을 작곡했고, 작곡가 이수인의 사사를 받으며 가곡도 썼다. 베이스 바리톤 길병민이 초연한 ‘부디’와 ‘별꽃 피는 밤’ 등 스무 편 남짓한 가곡이 그의 작품이다.

KakaoTalk_20251211_173812499.jpg 왼쪽부터 진동주 작곡가, 스승 이수인 작곡가 2015년

빛을 잃어가던 시간


음악활동과 함께 그는 초등학교에서 교감, 교장을 거쳐 학교 행정을 책임졌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와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녹내장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그는 2015년 명예퇴직으로 스스로 물러났다.


“시력 수치가 안 나옵니다. 2, 3미터 앞 가족 얼굴도 구분이 안되기도 해요. 환한 곳에서는 거의 안 보여요."

밝은 날 외출 할 때는 물론 등이 켜진 환한 실내에 들어설 때도 그는 짙은 검정안경을 껴야만 했다.


"지하철 타고 갈게요"


2023년 YTN 사이언스에서 시니어들이 어떤 도구를 사용하여 어떻게 장애를 극복하는가 를 소개하는 TV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때였다. 내가 몸담고 있던 아이루페에서 시각장애인용 AI 카메라 저시력보조기를 수입 판매하고 있었다. 그에게 인터뷰하도록 사무실로 초대했다.

“지하철 타고 가겠습니다.”

역으로 마중 나가겠다고 했지만, 그는 사양했다. 지도를 미리 보고 동선을 익히면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다. 30 분쯤 지나서야 다리를 절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지하철 출구에서 인도로 내려서는 순간, 차도와 인도의 경계를 잘못 디뎠다고 했다.

"땅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면서 앞으로 고꾸라졌어요."

벗겨지고 피가난 무릎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고 나서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분에게 길을 세세히 알려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악보를 볼 수 없어도 노래하는 법


그는 지금도 대중교통을 고집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만큼 혼자 힘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목적지가 생기면 지도를 보고, 머릿속으로 동선을 여러 번 그린 뒤에 길을 나선다.

그렇게 조심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땅이 꺼지는 경험'을 겪는단다.


요즘 그는 매주 서울교대 출신으로 구성된 '사향가인합창단'에서 연습한다. 시력이 괜찮을 때는 서울초등교원합창단 등 여러 합창단의 지휘자였다. 이제는 악보를 볼 수 없어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합창단원으로 노래 부른다.

“악보가 보이지 않으니까, 가사도 악보도 외워서 불러요. 남보다 열 배, 백 배 더 노력하죠."


외워서 부르는 노래는 다르다.

내가 라디오드라마 연출할 때다, 의욕적인 성우 이병식(탤런트 이우신)은 대사를 외웠다. 라디오니까 대본을 보고할 수 있지만, 그는 외워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우둔한 열정을 고집한 그가 요즘 탤런트로, 영화배우로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개가 숙여진다.

외워하다 보면 몰입의 깊이가 달라진다. 진동주의 노래 또한 그렇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삶


그의 시력은 여전히 나빠지고 있다.

의사는 앞으로 눈이 더 나빠질 거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파랑새창작동요회, 한국동요작곡가협회, 한국동요문화협회와 같은 음악단체 다섯 곳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작곡도 계속한다. 그가 개발한 대형 오선지에 곡을 쓰고, 사보교정은 75인치 대형 모니터에 악보를 띄워 아내의 도움을 받는다.


속도는 느리고, 과정은 힘겹다.

그래도 그는 좌절에 빠져있지 않으려고 애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한다. 여행도 다닌다.

서울교대 동기이며 음악 친구인 김종덕이 그의 여행에서 손발이 되어준다.

지난해에는 코카서스, 조지아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진동주의 말이다. 장애인의 고통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고.


"고통과 친해져야 해요. '내 친구다. 평생 함께 가야 할 존재다.'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고통을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고통의 한복판, '태풍의 눈'에 들어가야 해요.『생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말처럼 "


그가 두 번 읽었다는 루이제 린저의『생의 한가운데』의 메시지다.

"고통을 피하려 할수록 오히려 고통이 커지며, 고통의 중심을 통과할 때 비로소 자유에 이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마음이 휘청거릴 때마다 나는 그를 떠올린다.

지하철을 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


그가 늘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내 가슴속에서 오래 울리던 그 말.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어요.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지요.”


https://youtu.be/RmSIdZ2 S3 MU? si=6 UlNa7 lTsdeX90 Gn

작곡가 진동주_YTN 다큐프라임_2023년

브런친북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다음 주 목요일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의 순수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립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