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찬울이의 크리스마스' _채울림단장 김광석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③

by 김승월

③③

산타할아버지는 어디 있을까?.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던 어린 시절이 저 멀리 갔다. 내게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마음엔 산타 할아버지가 여전히 살아있지 않을까.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을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순수한 마음의 소리를 담아내고 싶었다.


진솔한 목소리의 생생한 울림을 전해주는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고 싶어 안달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게 행운처럼 나타난 사람이 김광석이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삶을 찾아보려고 MBC 자료실 클리핑 자료를 뒤지다 그를 만났다. 연세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논문을 마치던 중에 중도 실명한 김광석. 그는 아마추어 무선사 햄 동호회 활동을 활발히 하며 정안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좌절과 극복을 담아 '어둠을 비추는 소리'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1994년에 방송했다. 그 프로그램은 그해 한국방송대상 라디오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그의 집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녹음테이프장에서 아들의 목소리를 녹음한 자료를 들었다. 사진 찍을 수 없는 그였기에 녹음을 했다. 신생아의 울음부터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아낸 테이프를 들으며, 아들의 맑고 순수한 소리에 전율했다. 나는 김광석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프로그램으로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다. 아빠가 녹음해야 아들의 목소리를 가장 자연스럽게 녹음할 수 있다고.


그의 녹음기기 다루는 기술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무선 햄도 하며, 음성편지도 멋지게 만들던 그다. 아날로그 시대였던 그때, 그는 디지털 녹음기를 구입했고, 방송사는 디지털 녹음테이프를 댔다. 그가 녹음을 하고, 내가 편집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청취자와 PD가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소리로 기록한 아빠의 사랑이다.


첫 프로그램으로 아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을 잡았다.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아들이 백일 전, 석 달 전, 한 달 전, 열흘 전, 하루 전, 그리고 성탄절 아침까지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을 녹음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를 지나 그의 집을 찾아서 장시간 녹음한 테이프를 받아왔다. 방송사에서 듣고 들은 그의 녹음테이프는 내용도 음질도 놀라웠다. 백일 전, 석 달 전, 한 달 전, 하루 전,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아빠와 나누는 아들의 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성탄절 아침에 아들이 일어나 산타할아버지가 두고 간 선물을 뒤적이는 소리, 선물을 받고 기다리던 선물이 아니어서 아쉬워하던 모습,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크리스마스캐럴을 부르던 장면을 속마음까지 그대로 담아냈다. 어느 작가가 그보다 생생한 대본을 쓸 수 있을까. 아들과 아빠의 이야기 자체가 그대로 방송대본이었다. 아빠가 녹음한 생생한 소리에는 찬울이네의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편집과 구성을 거쳐 박윤아 성우의 해설을 보태어 '찬울이의 크리스마스'란 제목을 붙여 만들었고, 이듬해 성탄절 특집으로 방송되었다. 어떤 아나운서가 차를 타고 가다 듣고는 멈출 수 없어서 다 듣고 난 뒤에야 차에서 내렸다는 말도 내게 전해주었다.


이듬해 베를린에서 열렸던 국제 라디오다큐멘터리 회의인 '국제피처회의'에 참가해서 발표했다. 체코에서 온한 여성 PD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라며 행복한 표정으로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넸었다.


올해 1월, 김광석의 아들 찬울이가 결혼했다. 그리 기뻐하던 아빠 표정을 보니 나도 흐뭇했다.

현재 찬울이는 SK이노베이션 해외주재원으로 유럽에서 근무하고 있다. 매주 한 시간씩 아빠와 통화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단다. 그렇게 공들여 키운 아들이, 아버지의 소망대로 잘 자라주었다.


아들에게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던 아빠였다. 다시 대학원 다니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했던 그다. 가톨릭 아마추어 무선사회인 '마르코니회' 회장을 오래 했던 그는 아직도 그 단체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매일 오후 7시부터 하는 'KDE햄 클럽'에서는 '화이널 멘트'를 담당하고 있다. 주말에는 DX 원거리교신으로 독일, 네덜란드 등 세게 여러 나라 햄들과 교신한다.

KakaoTalk_20251217_141921273.jpg 김광석 무선사

음악 재능이 남다른 그는 풍물장구를 8년 동안 쳤다. 2009년부터는 대북을 치면서, '채울림'단장으로 팀을 이끌며, 구리문화원에서 난타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채울림은 18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난타 공연팀으로 동구릉문화제, 다산문화제와 같은 지자체 행사, 경로잔치, 장애인들을 위한 공연도 다닌다.


나이가 비슷한 우리는 만난 지 삼십 년이 넘었다. 어떻게 그리 잘 살아냈냐고 물어봤다.

"장애라는 큰 산, 어둠의 터널을 어떻게 넘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강의 때나 글 쓸 때나 늘 말합니다.

'첫째, 자기가 갖고 있는 고통과 장애를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는 핸디캡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세 번째는 감사다.' 지난 간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지지만,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 달 전 며느리가 한국에 왔을 때, 김광석은 녹음했던 찬울이 소리들을 USB에 담아 주었다. 훗날, 찬울이 아이가 자라서, 크리스마스 때 아빠와 함께 그때의 소리를 듣는 모습을 그려본다. 볼 수 없어서, 사진 찍을 수 없었기에 녹음해서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아낸 할아버지다. 그의 사랑이 그대로 손주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산타할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요?

1997년 MBC 라디오 성탄특집으로 방송된 <찬울이의 크리스마스>를 8분으로 편집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세요,

앞을 볼 수 없는 아빠가, 아들 찬울이의 산타할아버지 기다림을 녹음해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KakaoTalk_20251217_141553852.jpg 난타공연팀 '채울림'


브런치북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다음 주에는 한국저시력인협회 회장 미영순 박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립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