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④
미영순 한국저시력인협회 회장과 합정역 부근에서 점심하기로 했다. 나는 운전을 못하게 되어서 모시고 갈 수 없다고 미안해했더니 미 회장이 웃으며 말한다.
"지하철 타고 가면 돼요. 1577-1234로 전화하면, 안내원이 역입구에 나와 기다렸다가 안내해 줘요."
몇 해 전에, 일본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런 서비스한다는 말을 듣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시각장애인 이동도우미 복지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언젠가 미 회장에게 주말에 무엇했나고 물었더니, 등산 다녀왔다고 했다. 놀란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봉사자들이 도와주세요."
과천 대공원 뒷산에서 맹인들과 정안인들이 흰 끈으로 서로 잡고 등산하는 행사를 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도와주면 장애인들도 등산을 즐길 수 있음을 그때 내 눈으로 보았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늘 하던 말이 있어요. 나도 학생 여러분처럼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배워야 할지를 압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거예요. "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정보접근성이다. 그도 시각장애인이지만, 어떻게 시각장애인으로 잘 살 수 있는지 남보더 더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저시력인협회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나는 그의 삶 전체를 알지는 못한다. 다만 지난 10여 년 동안 저시력인들 활동 현장에서 그와 같은 공간에 있었고, 같은 무대를 지켜봤다. 인터넷에 올라온 미 회장 관련 신문기사에는 그의 삶 일부만을 보여주는데도, 보는 내내 고개가 숙여졌다.
그는 경기여고 다니던 시절 망막염으로 시력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학업을 멈춰야 했다. 방황하던 그에게 화계사 숭산스님이 "지혜로 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마음을 다잡고 경기여고를 마쳤다. 그 후 10여 년 동안 가야금, 장고, 단소, 시조, 한국무용, 요리, 꽃꽂이, 영어회화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 보았다. 그 뒤에야,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다시 시작했고, 국민대학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장학금으로 대만 중국정치대학 석사, 중국문화대학 정치학 박사를 받고, 1989년 돌아와 북방연구소, 세종연구소에서 일했다.
그런 그를 '한국의 헬렌 켈러'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그는 그의 삶을 수필집 <눈물 고인 가슴에 눈물 대신 품은 뜻>, <새벽 산사에 가보세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여자>, <내가 그리는 동그라미>에 담아냈다.
1999년, 그는 저시력인협회를 만들었고, 지금은 건양의대 김안과병원에서 마련해 준 사무실에서 저시력인들을 상담하며 재활을 돕고 있다.
"장애인이라고 의식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해요. "
그의 말처럼 그와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고 즐겁다. 재치가 넘치며 박학다식하다. 그가 신년 축하 모임이나 장애인 음악회같은 모임에서 인사말 할 때마다 나는 늘 귀 기울인다. 그의 말은 늘 짧고 재밌으며 행사 목적에 닿아 있다.
새해 첫날에 맞추어 그가 '좋아하는 말'을 물었다.
" '공' 空입니다. 무소유, '무 無도 좋아합니다. 비워야 새로운 것도 채울 수 있으니까요."
불교신자인 그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며 자신을 내세우는 태도를 경계했다. 그런 태도도 '공'이나 '무' 아닐까.
그는 저시력인들이 누릴 수 있는 제도와 권리를 알려주는데 힘쓰면서도, 권리만을 앞세우는 자세를 조심스러워했다.
"권리만 주장하다 보면 다툼이 이어지지요. 그건 서양적인 사고입니다."
그는 동양적인 사고의 핵심인 공자의 '인'仁 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자리를 아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분수에 맞는 삶에 힘주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 그는 저시력인의 삶을 주목했다. 보도블록의 개선책을 제안했고, 저시력제품 가격을 낮추기 위하여 세금 0% 적용을 주장해 뜻을 이루었다.
시각장애인들도 문화를 즐기는 길을 살폈다. 나들이는 물론 글쓰기 대회, 음악회도 마련했다.
매년 4월 19일, 장애인의 날이 되면,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가 열린다. 시각장애인 음악인들의 공연이다.
"시각장애인은 설 수 있는 무대가 거의 없어요. 이런 기회가 감사합니다."
그 무대에 섰던 한 성악가의 말이다.
미 회장은 한 번의 무대 경험이 음악인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음악 하는 사람에게는 경력이 중요합니다. 장애인에게는 무대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감동을 주는 공연이면서도 경력을 남기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 하는 그다.
2026년 올해는 시각장애인들이 작곡한 노래로 꾸미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 공연 뒷자리에서 작은 정성을 모아, 경남 고성 산불 피해 이웃을 도왔다. 성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기지회(회장 권인욱)에 전달했다. 남의 도움받으며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남을 도우며 살겠다는 마음에서다.
요즘도 그는 '저시력인의 이웃사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베트남의 시각장애인을 위해 보조기를 지원하기도 했고,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며 발품을 팔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양로원은 꼭 짓고 싶어요. 시각장애인은 큰 시설이 필요하지 않아요. 작은 도움만 있으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습니다."
지난가을, 양로원 자금 마련을 위한 사업을 제안하다 거절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그는 다시 다른 길을 찾고 있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보이지 않는 이 사람의 꾸준함을 보았다.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히 보았다.
제2회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 공연 동영상입니다.
https://youtu.be/_eqihzfMJIk? si=e8 TfcbATktbpPaNT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