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학생미술초대전을 여는 김상옥 前PD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⑤

by 김승월

"천당 가야 해요, 이런 일 하는 분들."

내가 인터뷰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성우 김종성 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천당 가야 할' 그 일은 시각장애 학생들의 미술작품 전시회다. 햇수로 17년 동안 그 일을 해온 사람은 1990년대 초 <PD수첩>의 앵커였던 김상옥 전前PD다. 광흥창역 근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학생들이 작품 전시회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더 즐거워요. 그러니까 천당에는 이미 온 셈이지. 하하."


전시회 이름은 <시각장애학생 미술작품 초대전- 마음으로 봐주세요>. 전맹(全盲)에서부터 시각장애 6급에 이르는 학생들의 회화, 조소 같은 미술작품을 서울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한다. '전시회'가 아닌'초대전'이라고 이름 붙인 점에서 행사하는 분들의 장애인들을 대하는 자세가 느껴진다.


전시회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여 년간의 방송생활을 마치고 편히 쉬려는 그에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라디오동의보감'으로 날렸던 신재용 한의사다. 그는 신재용 한의사를 방송에 처음 등장시킨 PD였다.


신재용 한의사는 1992년에 ‘(사) 동의난달’이라는 순수 민간 의료봉사단체를 세워서, 중증 장애인들이나 소외계층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침 치료, 물리치료 같은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술에 재능이 있는 시각장애학생들을 만났고, 그들을 도울 동지(同志)를 찾던 참이었다.


김상옥 PD는 맹학교를 다니면서 학생들의 미술 수업도 직접 보고, 선생님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미술전시회를 하면 될 거 같았다. 맹학교에 설득하러 나섰다.


"어느 맹학교 교장선생님이, '돈만 주시면 안 되겠느냐. 지원해 주면 알아서 하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직접 해야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니까, 그냥 그 자리에서 나가버렸어요."

알고 보니, '그런 일 하겠다고 나섰다가 한 두해 지나면 다들 손 들더라'며 기대하지 않아서였단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현장 취재를 통해 방안을 마련했다.

미술에 재능이 있거나 관심이 많은 초, 중고생들 중에서 한 학교 당 세 명씩 장학생을 선발한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하고 해마다 전시회를 열어준다. 전시회가 끝나면 학교를 찾아가 발전기금을 전달한다.


그의 계획은 2009년에 한 독지가가 나서자 본격화되었다. 젊은 시절 교직에 있다가 은퇴한 후, 취미로 그림 그리던 한 할머니가 1억 원을 기부했다. 그 돈의 이자와 얼마간의 후원금을 합해 조촐한 전시회를 마련했다. 세 개 학교로 시작한 전시회는 이제 여섯 개 학교로, 9명이던 장학생은 18명으로 늘어났다. 전시회는 작년까지 열여섯 차례나 했다.


지원하는 장학금 총액은 연평균 650여만 원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후원자도 늘어났고 고정 관람객도 생겼다. 미술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미술을 취미로 하는 아이들도 늘었다.


나는 2년 전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 갔었다. 인천혜광학교, 강원명진학교, 대구광명학교, 전북맹아학교, 청주맹학교, 충주성모학교, 이들 6개 학교에서 보낸 70여 점의 그림과 조소를 전시했다.


그림들은 아동화와 추상화가 만난 듯 색채와 형태가 독특하고 강렬했다.

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갖고 싶어 하는 학생의 마음이 평화롭게 담겨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와 하얀 거품이 살색 해변을 부드럽게 적신다. 바다가 하늘처럼 보이고, 하얀 거품이 구름처럼도 보인다. 학생의 마음에는 바다가 하늘처럼 상상될지 모르겠다.


중학교 3학년, 중증장애를 가진 이규영학생이 그린 <바다와 나>다.

아크릴 물감을 나이프로 사용해 바다와 모래의 해변을 표현했다.

이규영학생이 그린 <바다와 나>

색을 구별 못하는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색을 물어보고 칠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빛깔을 상상으로 그리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의 작품은 선생님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선생님이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미술 세계가 달라진다. 판화도 하고, 아크릴화나 조소도 한다.


시각장애인의 작품은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단다. 일반인들은 의식적으로 감정을 조절해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있는 그대로 그려낸단다. 미술지도 선생님이나 색채심리학 하는 분들은 그림으로 학생들 심리를 분석해 낸다.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물어보았다.

"자기 손에 붕대를 감아서 석고로 떴어요. '내손을 한번 보세요'라고 말하는듯했어요."

대구광명학교 고교생이 만든 조소로, 작품 이름은 '나의 눈'이었다. 손으로 점자를 읽고, 촉감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손'은 '눈'이다.

나의 눈_ 대구광명학교 학생 작품

작품의 전시는 장애 학생들에게 소통의 기회가 된다.

"자기 그림에 액자 끼워 갤러리에 걸려있고, 사람들이 와서 보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스타가 된 기분이라고 해요."

전시장에 온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그림에서 배우고 다음 해 전시를 위해 준비한다


"작품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도와준다는 마음에서 소량이지만 사가는 분도 있어요."

작품 판매금 전액은 학교발전기금으로 전달한다.


미술에 소질이 있는 시각장애학생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한 학교에 많아야 서너 명. 하지만 최근에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도 생겼다.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은 안마사뿐’이라는 고정관념도 깨지게 됐다.

직업 화가가 안되더라도 그림 그리고 작품 만들며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먹고사는 데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 문화생활을 위한 기초 소양을 갖추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장애인을 돌보다 보니 달라진 건 없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뜻밖이다.

"황반변성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되었어요, 아이러니야. 시각장애인을 돕다가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되었어. "

몇 년 전 갑자기 시야가 달라져 병원에 갔더니 황반변성 습성이었다. 매달 한차례 눈에 주사를 맞는다.


"장애인들이 무슨 능력 있어. 눈이 성한 사람들, 정안인들이 도와주어야지. 가족도 이 불편한 걸 몰라요."

작은 글자가 안 보인다고 옆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하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서 확대해 보라고 한단다.

"사진 찍고 확대해 보다 보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요. 옆에서 그냥 읽어주면 되는 거잖아."

머리로만 이해하던 시각장애인의 불편한 세상살이를 지금은 몸으로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순간에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 들면 모두가 '늙음'이라는 장애를 겪게 되지요."

그의 말처럼 장애인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천당은 당겨서도 갈 수 있다.

비장애인들 누구나 장애인을 만나면 도와주는 세상, 장애인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큼 배려해 주는 세상,

그곳이 바로 '천당'이 아닐까.


브런치북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다음 주에는 시각장애인 사업가의 이야기입니다.

'안 보여도, 세계를 누비며 팔아요'를 함께 해주세요.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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