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하나를 내려놓고, 불안 하나를 덜어냈다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 지갑 속에 오래 넣어 두었던 작은 자존심 하나를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운전하기에 부족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운전할 수 있는 권리를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쓰렸다.
일흔이 가까워지면서부터 그 생각을 했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움찔했다.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고 길 위에서 젊은 여성 운전자의 핀잔을 들었을 때의 수모감도 오래 남아 있었다.
가족에게 면허를 반납하겠다는 말을 넌지시 꺼낸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사위가 영등포 소식지에서 읽었다며 알려주었다. 칠십 세가 넘은 사람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20만 원이 충전된 복지카드를 준다고 했다. 구실이 생겼다. 그날로 마음을 정했다.
나이가 들면서 소소한 사고가 잇달았다. 몸은 굼떠지고 시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주차할 때마다 여기저기를 긁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신호였는지 모른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뺑소니 차량으로 신고되었으니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경찰서에 갔다. 친절한 경찰관이 영상을 틀었다.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이었다. 후진으로 주차하는 내 차가 화면에 잡혔다. 차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던 경찰관이 화면을 멈췄다.
“보셨지요?”
“뭘요?”
나는 뭐가 이상하냐는 듯 되물었다. 경찰관은 다시 영상을 보여주었다. 내가 여전히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슬로모션으로 돌리며 설명했다.
“옆 차가 움직이잖아요. 살짝 건드리셨습니다.”
그제야 보였다. 기가 막힌 것은 신고가 아니라, 나는 정말 그것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내 운전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남이 아니라 내 눈으로 확인했다.
지난해 3월에는 낙상 사고로 외상성 뇌출혈까지 겪었다. 한동안 의식을 잃었고, 한 달 넘게 입원했다. 정밀검사 뒤에는 공간 감지 능력이 손상되었을 수 있고, 시신경에도 경미한 손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중이의 이소골이 탈골되어 왼쪽 귀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 뒤로는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사실상 그때 이미 면허를 내놓은 셈이었다.
그래도 반납을 주저했다. 면허증 없는 나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제구실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자율주행차가 개발되고 있지 않은가. 친구도 말렸다.
“일단 기다려. 자율주행차가 나올 테니까.”
나도 그 말에 기대고 싶었다. 딸에게 자율주행차가 나올 때까지만 면허증을 가지고 있겠다고 했다. 그런데 딸은 자율주행 관련 회사에 다니는 사위 친구에게 들은 말을 전했다.
“2030년까지는 어림없대요.”
여의도동 주민센터에 가서 면허 반납을 신청했다. 창구에서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주민센터에서 사무실 안에 모셔져 서류작성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상실감을 느낄까 봐 배려한 걸까. 창구에서 썼다면 처량했을 수도 있었겠다. 세심한 배려가 작은 위로가 되었다.
면허취소 신청서를 쓰고, 면허취소 통지서를 받았다. 20만 원 상당의 복지카드도 받았다. 버스와 기차는 물론 편의점에서도 쓸 수 있다고 했다. 사용자 양도도 가능하다고 해서, 앞으로 운전을 부탁할 일도 있을 사위에게 주라고 딸에게 일렀다.
나도 이제 하나를 완전히 접었다. 포기했다. 남들이 가진 것을 더는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앞으로 나올 멋진 차를 더 이상 몰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문 하나가 닫히는 기분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자유 하나를 내려놓는 기분도 들었다. 나는 그만큼 작아진 듯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령 운전자 사고 뉴스를 보며, 나 역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사고를 낼지 모른다는 불안에서도 벗어났다. 자잘한 사고를 내고 수리비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법정스님의 글 『무소유』가 떠올랐다. 난초를 아끼던 스님이 그 난초에 얽매인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썼다.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 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글을 이렇게 맺는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운전면허증을 내놓고 돌아오는 길, 나는 조금 작아진 듯했고 조금 홀가분했다. 잃은 것도 있었지만, 내려놓고서야 비로소 얻는 평안도 있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내속마음, 그래도 자율주행차 나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