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를 읽고
할매를 처음 만났을 때 적잖이 놀랐다. 스스로 할머니라고 소개하는데, 얼굴은 마흔 언저리로 보였다. 나보다 여섯 살쯤 아래인데 무슨 할머니인가 싶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결혼도 안 한 몸이었고, 손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모할머니’를 줄여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십이 년 전의 일이다.
엉뚱한 데가 있는 그녀는 지금도 여전하다. 키도 몸집도 아담하고, 여기저기 아픈 데도 많은 그녀다. 그 나이에 다시 산티아고에 간다기에 나는 다시 한번 그러려니 했다. 그저 좀 엉뚱한 일을 벌이는 줄 알았다. 책 제목마저 『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였으니 더 그랬다.
오산이었다. 그 길은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고, 이 글은 쓸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 몇 페이지 넘기자마자 그걸 깨달았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무작정 나서 내내 엄마를 그리며 걸었다.”
프롤로그의 이 한 줄이 내 가슴에 새겨졌다. 십여 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를 꼭 만나게 해달라고 빌던 그녀가, 다시 십 년의 세월을 건너 엄마를 그리며 그 길 위에 섰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었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다시 나선 늦은 순례의 기록이었다.
몸은 그 순례를 감당하기에 넉넉하지 않았다. 발목뼈 골절, 차마고도에서 다쳐 끊어진 인대, 발가락 염증, 발뒤꿈치 아킬레스건염, 이십 년 동안 괴롭힌 위염과 심해진 식도염, 십이지장염까지. 의사는 순례길에서 혈변이 나오면 지체 없이 귀국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몸으로 홀로 길을 나섰다니, 책을 읽는 내내 그것만으로도 조마조마했다.
그렇지만 그 몸이었기에 더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부딪히고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에는 그래서 느린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때로는 좌충우돌 여행기 같기도 하다. 이층침대에서 떨어지고, 외진 숲길에서 집시를 만나고, 낯선 사람들과 얽히며 긴장하다 웃는다. 까칠한 듯하면서도 잔정 많은 그의 성정도 그런 장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드러난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녀의 눈길이었다. 첫날 마주한 교회를 보고, 흔한 조각상 하나 없지만 지금껏 유럽에서 본 숱한 교회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오래 남았다. 이름난 성당들이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위압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는 말에도 공감이 갔다. 화려함보다 소박함에 먼저 마음이 가는 눈, 그 눈이 이 여행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글도 생생하다. 곁에서 조용히 속삭이듯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로써 함께 걷는 기분이 든다.
엄마를 잃은 뒤 십육 년, 십 년 전 그 길에서처럼 이번에도 혹시 바람에 실린 엄마 냄새라도 맡을 수 있을까 바라며 걸었다.
이 대목에 이르면, 이 여행이 단지 먼 길을 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몸은 순례길을 걷고 있었지만, 마음은 오래된 그리움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이 책은 여행의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다. 사진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거리와 비용 같은 정보도 꼼꼼하다. 각주를 달아 설명해 주는 자상함에서도 저자의 성품이 묻어난다. 준비를 제대로 했고, 여행 내내 성실하게 메모했구나 하는 믿음이 간다. 그래서 이 책은 감상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로 길 위에 서 있는 듯한 구체성을 준다.
이 책의 더 큰 미덕은 따로 있다. 산티아고의 정취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홀로 삼십 일이 넘는 길을 걸으며 이생에서 만난 인연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 곁을 스쳐 간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혈육과 친구, 가까웠던 사람과 스쳐 지나간 사람들까지,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그녀를 알고 지낸 십여 년의 세월이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따뜻하게 되살아났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섣부른지, 또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새삼 느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그 사람의 한 면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이윤 명예교수가 저자다. 산티아고 여행기 『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는 출판사 푸른 향기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읽을 만한 여행기를 만났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아직 가보지 못한 이에게는 길을 나서게 하는 설레임을, 그리고 누구에게나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울림을 줄 책이다.
이 작은 행복을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