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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May 06. 2024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보인다

역지사지

아내와 나는 너무 다르다. 화장실에서 양치질하고 물컵을 사용하고 나면, 나는 으레 컵 입구를 위로 향하게 바로 놓는다. 반대로 아내는 엎어 놓는다. 먼지가 내려앉으면 지저분해질 까봐 그럴 게다. 하지만 나는 엎어놓은 컵을 볼 때마다, 입 닿는 컵 언저리에 바닥의 뭔가가 묻어나지 않을까 찜찜해한다. 내가 컵을 똑바로 세워놓으면, 아내는 엎어 놓고, 아내가 엎어 놓으면 나는 다시 세워 놓는다.  


살수록 부부는 닮아 간다는데, 모두가 그리 되는 건 아닌가 보다. 결혼생활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다른 게 많다. 


닭튀김 먹을 때, 나는 젓가락이나 포크를 쓴다. 손가락에 뭔가 묻는 게 싫어서다. 아내는 촉감을 즐기는지, 손가락으로 집어먹는다. 손가락으로 쌀밥을 집어먹는 서남아시아 출신이냐고 아내를 놀려 대면, 닭튀김을 포크로 찍어 먹으면 무슨 맛이 나냐고 맞선다. 하긴 김치도 손으로 쭈욱 찢어 먹어야 맛있다는 사람도 흔하긴 하다만.


다르니까 불편하기도 하다. 김치를 내올 때면, 아내는 국물 없이 배추, 무, 건더기만 건져서 깔끔하게 내온다. 모양새야 좋지만, 김치는 국물이 있어야 제 맛 아닐까.  아내에게 국물 좀 넣어달라고 잔소리도 해봤지만, 열에 아홉은 자기 식대로다. 언제부턴가 내가 김치 국물을 떠 넣거나, 그게 귀찮으면 주는 대로 그냥 먹는다. 


다른 걸로 치자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다르지 않을까. 일란성쌍둥이도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 달라진다는 설도 있는데, 꼭 같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유전자가 다르고,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랐는데 똑같아질 수 있을까? 

폴 세잔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1895

프랑스 화가 폴 세잔 Paul Cézanne 은 정물을 즐겨 그렸다. 그가 30여 개의 사과를 그린다면, 30여 개의 사과를 다 다르게 그렸다. 사과의 생김새가 다 다르겠지만,  놓인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고, 비추는 빛의 각도에 따라 그림자가 달리 드리운다. 세잔은 그런 생각으로 사과를 그려냈다고 한다.  


같은 것을 보여주어도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물 반 컵을 보여주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반 컵이나 남았으니 낙관적이냐, 반 컵밖에 없으니 비관적이냐고 했다. 80여 명 중 “반 컵이나 남았다”에 손드는 학생은 없었고, “반 컵밖에 없다”는 학생은 여럿 있었다. 순간, “반 컵밖에 없다”라고 생각한 학생은 비관적이 아니라 적극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손을 들어서 의사표시를 했으니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말을 해도 다르게 듣기도 한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자기 식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일하다가. “배 고프네”. 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은 “일 많이 했으니, 이제 쉬면서 밥 먹어야겠구나.” 즐거워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일 시키는 사람은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밥 먹을 시간이냐. 이러다 언제 일 마칠 수 있을까” 걱정할지도 모른다. 평소 곱게 보지 않은 사람은, “일하기 싫은가 보네. 먹는 생각이나 하고” 빈정거릴 수도 있다.


옳고 그름도 그렇지 않을까. 나와 다르면, 나는 맞으니 네가 틀렸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것은 내 중심으로 판단하는 독선일 수 있다.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분들은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 라고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보며, 각자 다른 창문으로 세상을 본다. 모두가 자기 식으로 생각한다. 소통의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역할을 바꾸어 생각해 보기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상대의 마음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성경 말씀도 그대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마 7: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Chat GP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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