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향기
어느 순간, 아무 예고 없이 모든 것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이틀 동안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다. 술 취해 필름이 끊겼던 적은 있지만, 이번엔 훨씬 셌다. 마치 내 인생에서 이틀이 뚝 잘려 나간 것처럼, 단 한 장면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첫 장면은 의료진이 “여기가 어디인지 아세요?” 하고 묻고, 손전등으로 눈동자 반응을 살피고, 손과 발을 들어보라고 시키던 순간이다. 사고 직후부터 여의도성모병원 검사 때까지의 이틀은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지워졌다.
사고가 난 지 한 달. 몸은 회복되어 가지만, 마음은 아직 어둠 속을 더듬는다. 친구가 웃으며 물었다.
“야, 그럼 너 하늘나라 가봤냐? 어둠 속에서 빛이 나타나진 않디? 빛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은 없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 빛도 없었어.”
천국의 문도, 터널의 끝도 없었다. 그저 모든 감각이 꺼진 어둠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죽음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머리에 충격이 조금 더 셌거나, 송 사장이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뇌출혈이 더 심했을 거다. 골든타임 안에 적절한 조치를 받았으니 이만큼 회복되었다. 하나라도 삐끗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삶은 생각보다 가늘고, 늘 벼랑 끝을 걷는다. 그때 알았다.
“하루하루 산다는 게 기적이야.”
그 말이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진실임을.
재활치료를 마친 날, 병원 5층 옥상 정원에 나와 앉았다. 봄바람이 살랑 불고, 라일락이 피어 있었다.
나는 코끝을 들이밀었다. 꽃향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친구 문자가 왔다.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며 살아, 하고 싶은 대로.”
그 말이 향기처럼 번졌다. 한방에 훅 갈 수 있으니 내 삶이 더욱 소중하다.
삶은 향기다.
사라지고 나면 향기가 남는다.
그리고 그 향기마저 사라진 자리엔, 무엇이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