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귀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운인가, 불행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행운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이 그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뒷걸음질 쳤을 때 닿는 곳이 없는 사람은 최선을 다 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이번에 다룰 <귀로(1967)>의 주인공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뒷걸음질 쳐 집으로 돌아온다.
긴장하는 관객
이만희와 동시대에 한국 영화를 대표했던 김기영의 작품에서처럼, <귀로> 속에도 시종일관 긴장감이 맴돈다. 멜로드라마인 영화의 장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보는 관객은 연인 사이의 떨림보다는 인물 간의 갈등에 의한 긴장감에 심장을 졸이게 된다. 이만희는 전작 <마의 계단(1964)>에서 보여준 스릴과 공포가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듯, 관객을 끊임없는 긴장 속에 빠트려놓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약을 가지고 계단을 오르는 아내, 계단 소리 그리고 자는 체하고 있는 남편이 등장하는 쇼트는 계속해서 되풀이되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난 뒤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주는 처음에는 일어나 담배를 피우는 남편의 모습으로, 그다음에는 시누이가 방 안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이 아내에서 가정부로 바뀌기도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점차 상황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상황이 변화됨에 따라 아내와 강욱의 사랑도 과감해져 가는데 이러한 반복과 변주를 관객들은 자연스레 인식하고 변화가 올 때마다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또 이 작품은 조금은 과한 형식적 면모가 두드러지는데, 그 과잉이 영화의 분위기와 썩 어울린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격정적인 군가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거침없는 앙각, 더치 앵글로 인해 예의 그 과잉에서 비롯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격앙된다. 이러한 표현주의적인 촬영은 관객이 느끼는 무언의 긴장감으로 귀결되고 극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는 한편, 군사 문화와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러티브적인 기능도 한다.
스타일뿐만 아니라 내용 속에서도 긴장감은 존재한다. 소설 작가인 남자가 만들어낸 창작물은 미장아빔을 통해 영화와 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순환을 만들어낸다. 이때 관객의 불안감은 영화 속 상황과 소설의 일관된 서사에서 비롯된다. 이만희가 만들어낸 영화와 그 영화 속 소설, 두 개의 작품의 상호 연결은 한편으로는 진부한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욕망과 프레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층 집은 넓고 세련된 중산층의 집을 토대로 하고 있으나 프레임 안의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로 인해 답답하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간을 수직 프레임에 가두는 장면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이는 아내의 절제된 욕망과 상통한다. 강욱을 향한 사랑과 남편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도피의 욕망은 벽과 기둥, 전신주 따위에 갇혀 해소할 수 없음을 영화 안에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도입부에 아내와 남편을 나눈 기둥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마치 유리된 공간에 있는 독립된 두 개의 피사체인 듯한 느낌을 준다.
강욱의 쪽지를 버린 뒤 올라선 육교에서도 그렇다. 이때 그녀의 상황을 나타냄과 동시에 자유롭게 오가는 인파 속에서 그녀 홀로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직, 수평적 이미지와 더불어 더치 앵글을 이용한다. 이석기 촬영감독의 노련함 또한 엿보이는 연출이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프레임이 등장한다. 약을 먹고 쓰러진 그녀의 좌우로 문에 인한 수직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 이는 그녀가 마지막까지 사회와 가정의 틀에 갇혀 종말을 맞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수직, 수평 이미지를 통해 욕망의 억압, 권위와 계급 구조 등 다양한 의미가 효과적으로 창출되었다. 이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이미지를 통해 많은 것을 담아낸 영리한 연출이다.
결국 돌아오는 여성
“꼭 가요. 다음 차는 싫어요.” 극의 마지막에 주인공인 아내가 내뱉은 단말마다. 아내는 죽기 직전까지도 강욱과 멀리 떠나고자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영화는 아내가 왜 떠날 수 없었는지, 어째서 다시 돌아와야만 했는지에 관해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서울역은 만남과 이별의 매개체이자 자유와 낭만의 상징이다. 이와 대비되는 인천 집은 억압과 통제, 그리고 고통-남편에게는 전쟁, 아내에게는 가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서울역에서의 아내는 자신을 억압하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집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활기찬 공간을 활보하는 여성으로 전이된다. 이를 보면 여성 해방의 여지를 주는 것도 같지만, 종국에는 전복되고 만다.
영화의 개봉 시기인 1967년에는 집 안에만 갇혀있는 남성이라 할지라도 집 밖으로 자유롭게 나도는 여성보다 우위에 있었다. 남편은 물리적으로는 정지해있지만 사회적, 심리적으로는 유동적이며 권력의 중심에 있다. 이것이 아내가 무의식적으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자 하고, 강욱에게는 성적 매력을 느끼면서도 끝에는 항상 인천으로 돌아왔던 결정적인 이유다.
1960년대 한국의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이 답에 대한 해답은 마지막 장면에 담겨 있다. 영화 속 여성이 찾은 유일하고도 강력한 탈출구는 바로 죽음이다. 그렇다. 당시의 여성은 가정을 버리느니 죽음을 택해야 했다. 가부장적 질서 아래서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이처럼 아내가 결국 남편을 떠나지 못하고 음독자살을 하는 것은 영화의 몇 안 되는 아쉬운 점이며 시대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덧붙여 강욱의 이름은 언급되지만 정작 주인공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부인’이나 ‘아주머니’로 호명되는 것도 영화의 한계라고 볼 수 있겠다.
이만희의 <귀로>는 현대적인 영화이다. 짐짓 과하게 형식적인 면모를 보이면서도 그 과한 점이 관객의 시청각을 자극한다. 이와 더불어 반복과 변주, 극적인 미장센과 촬영, 수직의 이미지, 여성의 욕망 등을 활용해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의 전작 <휴일>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절망이고, 유작인 <삼포 가는 길> 속 감정이 상실이라면 <귀로>의 그것은 단념이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이 사회와 가정에 굴복하는 것으로부터 따뜻한 연민보다는 냉철한 비판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이만희의 <귀로>는 하릴없이 되돌아오는 이들의 박약한 걸음걸이에 보내는 건조한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