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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TE Apr 11. 2021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임순례, <와이키키 브라더스>


 저번 달 19일, 밴드 '도마'의 보컬 김도마는 향년 28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부고를 접하고 나서야 그녀가 SNS에 올렸던 글을 읽게 되었다.


김도마 SNS


 오래되어 눅눅해진 꿈에는 곰팡이가 슬었고, 낡아 닳아버린 그것은 더 이상의 낭만이나 행복을 줄 순 없는 것이었다. 꿈이라는 녹록지 않은 희망과 행복이라는 허망한 감정의 결합은 당최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고, 결국에 남은 것이라곤 부박한 체념 그리고 현실이라는 벽뿐이었다. 꿈꾸는 사람은 빛난다고들 하는데, 당사자는 그 빛을 당최 볼 수가 없다. 아니면 너무 밝아 볼 수가 없는 것인가?






<와이키키 브라더스> 스틸 컷


 임순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주인공 '성우'를 중심으로 초라한 현실에 의해 와해되는 밴드와 꿈을 담고 있다. 


 보컬인 성우를 주축으로 하는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한때 잘 나가는 밴드였지만 계속되는 불경기로 인해 음악을 그만두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마지막 무대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우울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고, 영화의 시간은 밴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으로 돌아간다. 지역 행사 무대를 끝내고 쥐꼬리만 한 돈을 받은 밴드는 논밭에 앉아 술을 마신다. 그때 드러머 강수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형,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음악 하나 해보겠다고 온갖 더러운 걸 다 견뎌내면서 여기까지 버텨왔는데 7인조에서 하나둘씩 다 떨어져 나가고 도대체 이 시골 바닥에서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 진절머리 나는 가난과 무명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란 것을. 밴드를 포기하고 떠난 3명이 옳은 선택을 한 걸지도 모른다는 것을. 급기야 밴드의 색소폰 연주자 현구는 밴드 생활에 한계를 느끼고 가족들이 있는 부산으로 떠난다. 남아있는 이들은 하릴없이 성우의 고향 수안보에 있는 '와이키키 호텔'에서 밤무대를 하기 위해 출장을 가게 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스틸 컷


 수안보에 도착한 성우는 학창 시절 같이 밴드를 했던 친구들과 재회한다. 약사가 된 '민수'는 돈만 좇으며 살고 있고, 시청에서 일하는 '수철'은 환경운동가 '인기'와 데모 때마다 마찰을 빚는다. 성우의 음악 스승이었던 학원 원장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출장 밴드를 전전하고 있다. 또 성우의 첫사랑이었던 '인희'는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 야채 장사를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고 있다. 고향 친구들 중 성우 혼자만이 여전히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그도 그리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모습은 아니다. 

 

  변한 친구들의 모습에 슬퍼함도 잠시, 밴드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만 같던 강수조차 오르간 연주자인 정석과 싸운 채 밴드를 나가버린다. 그러자 성우는 급하게 알코올 중독인 학원 원장을 투입시키지만, 이들을 데리고 공연하는 것도 순탄치 않다. 이때 친구 수철은 술에 취해 성우에게 묻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스틸 컷


성우야,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성우는 대답하지 못한 채 수철을 쳐다볼 뿐이다. 이후 성우는 유흥업소에서 홀로 기타를 치며 멍하니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 화면에는 그와 친구들이 어린 시절, 해변을 뛰어노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저 행복하게 음악을 하며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그는 그리워한다.


 영화의 끝에 다다라서 성우는 정석, 인희와 함께 여수 밤무대 공연을 한다.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는 인희는 고교시절 'I Love Rock'n Roll'을 열창하던 그때만큼 빛난다. 그들도 자신들이 빛난다는 것을 아는지, 무대 위의 그들은 퍽 만족스러워 보인다. 카메라는 무대 위를 보여주다가 점차 뒤로 빠지며, 무대 아래 관객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것을 보여주곤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친구들은 내게 자주 부럽다고 한다. 하고 싶은 영화를 배우면서 꿈을 키우는 게 멋있다고들 한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현실에 부딪혀 전혀 무관한 학문을 배우거나, 하고 싶은 게 마땅히 없어 그저 누군가가 정해준 길로만 가는 인생이 재미없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지만, 한편으로는 멋쩍은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나를 치켜세워줬던 친구들의 전망이 나의 그것보다 밝다. 지금이야 꼴에 예술을 한다고 젠체하며 뭐라도 된 듯 살지만, 내가 장차 영화로 유명세를 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을 보고 듣고 체감하다 보면 새삼 내 꿈은 막연하다. 젊음과 패기로 덤벼들고는 있다만 10년 뒤, 20년 뒤에도 내가 예술을 하고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지기 어렵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내가 만약 끝까지 예술의 길을 걷고 있다 해도 나는 과연 행복할까? 성공하기 전까지-혹은 성공하고 난 뒤에도-종종 찾아오는 무력감과 좌절감은 내게 포기하라 다그칠 것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결말 또한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마지막 무대 위의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영화가 끝나고 그들은 다시 일거리를 찾지 못해 배를 곯을 것이고 또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초라하고 지겨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억척스럽게도, 그들은 꿈을 꾸며 살아갈 것이다. 어찌 보면 영화 속 인물들은 참 미련하다. 힘들 걸 알면서도 그 힘든 길을 굳이 선택한다. 그리곤 그 거지 같은 삶에 나름 만족한다. 이를 보는 나도, 그 거지 같은 삶에 동참하리란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뮤지션 김도마 또한 사망 당일 새벽까지도 음악 작업에 열중했다고 한다. 이렇듯 꿈은 삶을 갉아먹는 와중에도 항상 몇 가닥의 뿌리는 남겨두었고, 비록 그 뿌리가 위태롭더라도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준다. 나 또한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오늘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조금 미련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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