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치 않아
만만함.
부담스럽거나 무서울 것이 없어 쉽게 다루거나 대할 만할 때 ‘만만하다’고 한다. 내 손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 참 만만하지 않다. 연하고 보드랍게 진행하고 싶은데 글의 완성도가 마음에 걸리고 낯선 포토샵과 인디자인 프로그램은 절망의 벽이다.
집안 물건마다 제자리가 있듯이 책 만들기 과정도 정리가 필요하다.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나에게 책은 글이 중요하다. 글을 책이라는 형태로 묶는 만큼 읽을 때 눈이 피곤하지 않아야 하고 손으로 잡았을 때 편안한 느낌이어야 한다. 책의 표지와 내지 구성은 사람이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무리 벽이 높아도 낯선 포토샵과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
우선 글을 정리한다.
뉘앙스가 흩어진 글을 다른 글과 비슷한 톤으로 바꾼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한 편의 글을 두 편으로 나누어 차례를 정리한다. 글마다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한다. 여행하며 느낀 단상을 쓴 만큼 여행지의 역사 및 문화와 관련해서 조심스럽다. 자료를 명확히 찾을 수 없는 부분은 아쉬워도 글에서 뺀다.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오래 만지작거린다.
첫 번째 책을 낼 때는 인생 숙제라 글마다 당시의 상황과 아픔이 올라와서 울고 또 울었다. 눈물로 녹이며 음지에서 양지로 한 걸음씩 내디뎠다. 도서관에 소장할 한 권과 내가 가질 책 한 권을 만드는 두 번째 책은 글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15일 동안 잘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하며 잘 자고, 잘 먹고, 많이 웃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하늘과 땅 사이에 거하며 순간마다 지어지는 인연에 감사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났을 때 긴장하지 않고 매 순간과 인연 지으려던 여행. 매사에 긴장하던 나의 습관을 내려놓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의도하는 내 삶의 방향이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여행.
여행은 꽤 괜찮았다.
걸으니까 길이 나는 느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도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다 보면 해결되면서 어떤 순간에도 행복할 자유가 있다는 경험과 깨달음, 제대로 쉬고 한껏 여유롭게 평화로 물든 시간.
책 제목과 부제를 확정한다. 목차를 정하고 글을 교정 교열하면서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확인한다. 수시로 사전을 찾아보고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없애려고 글을 매만진다. 나의 매만짐이 윤이 나고 고와지는 과정이면 좋겠다.
표지와 내지 작업하기 전에 서체를 검색한다. 허용 범위가 상업적 이용 가능한 저작권 무료 서체인지 확인하고 내 책에 사용하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조선일보명조, 독립서체 백범 김구 GS 등 여러 서체를 다운로드한다.
책 내지에 들어갈 사진을 선택한다.
글의 배경이 되는 장소의 사진을 선택해서 포토샵 인쇄용 파일로 변환한다. 사진 이미지 넣을 때는 반드시 해상도 300 dpi, CMYK 양식인지 확인해야 한다. 포토샵을 열고 이미지에 들어가서 모드를 CMYK로 클릭하고, 파일 형식 psd, 파일 이름은 어떤 글에 들어갈 사진인지 입력하여 저장한다. 파일 이름을 보고 어느 글에 들어갈 사진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내지에 들어가는 글과 사진을 인디자인 파일에 앉힌다.
인디자인 프로그램 열고 새 문서를 만든다. 기본 설정에서 폭과 넓이를 입력하고 페이지는 4의 배수로 설정하고 마주 보기를 클릭한다. 책에 이미지를 삽입하여 출판할 때 종이가 잘려 나가는 여백이 있다. 그래서 깔끔하게 나오게 하려고 도련은 사슬 연결한 채로 3mm 설정한다. 미리 보기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는지 확인 후 여백을 직접 확인하며 조정하는데, 아래쪽에 쪽 번호를 삽입할 예정이라 여백을 넉넉하게 설정한다.
오른쪽의 페이지 창에서 페이지를 우선 10장 정도 만들고 작업 시작한다. 서지 정보를 맨 뒤에 넣기로 하고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빈 종이, 책 제목이 다시 한번 들어가야 할 페이지, 목차가 들어갈 부분 등을 계산하고 본문을 앉히기 시작한다.
이미지를 책의 왼쪽에 삽입하기 위해 인디자인 왼쪽 도구 창에서 사각 프레임을 선택하고 psd 파일로 저장한 이미지를 가져온다. 단축키는 ctrl+d이다. 원하는 이미지 크기를 만들기 위해 상단의 컨트롤 창에서 개체를 선택하고 맞춤에서 비율에 맞게 프레임 채우기나 비율에 맞게 내용 맞추기를 해본다.
왼쪽의 선택 툴을 클릭하고 이미지를 옮기면서 책을 펼쳤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본다. 이미지마다 다른 크기로 하기에는 나의 인디자인 실력이 턱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깔끔하고 통일성 있게 작업해야겠다.
이미지의 위치와 크기를 결정하고 저장한다. 이미지를 더블클릭하면 파란색 선은 프레임의 크기이고 주황색 선은 실제 이미지의 크기이다. 프레임 안에서 이미지 크기를 줄일 수 있는데 키보드에서 ctrl+shift를 누른 상태에서 줄여야 원래 비율 그대로 유지된다.
이미지가 깨져 보이면 실제 깨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상단의 보기에서 화면 표시 성능을 고품질 성능으로 보면 된다.
오른쪽에 글을 삽입한다. 글 상자를 만들고 첫 번째 글을 복사해서 붙여 넣는다. 문자창에 들어가서 원하는 서체와 크기, 자간, 행간을 조절한다. 글 한 편씩 작업하는 이유는 전체를 선택하고 붙여 넣기 진행할 경우 추후 수정할 때 밀릴 수 있어서다. 글 상자에 복사된 글이 넘치면 빨간색으로 ‘+’가 표시되는데 이것을 선택하면 마우스에 글이 붙는다. 다음 페이지 글 상자 안에 클릭하면 자동으로 글이 삽입된다. 글마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을 똑같은 위치에 두기 위해 한편을 작업할 때마다 복사해서 붙여 넣고 내용 지운 후에 다른 글을 앉힌다.
문자스타일을 만들어서 소제목 작업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하나를 만들고 일일이 복사해서 붙여 넣고 소제목을 다시 입력한다. 잘 모를 때는 미련스럽게 작업하며 하나씩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니까.
염려했던 만큼 내지 작업이 만만하지 않다.
기본 틀을 만들기가 어렵다. 단순한 통일성을 구성하여 본문과 이미지를 삽입하고 페이지를 넣기가 막막해서 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작업한 것을 다 삭제한 후 다시 작업하기도 했다.
컴퓨터의 새로운 기능 익히는 것에 겁이 많은 나를 위해 새벽 3시까지 함께 해준 딸에게 고맙다. 만만치 않을 때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낸다.
책 만들기 세 번째 수업은 1:1 피드백이다. 선생님에게 표지와 내지 만든 것에 칭찬받는다. 페이지 삽입 위치를 약간 조절할 것과 이미지 들어간 페이지의 쪽 번호는 빼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종이를 선택한다. 즉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