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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Oct 09. 2023

"야-너, 애가 참 어둡구나...!"

젊은 양반이 민화를 그리게 된 이유 1

친부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줬다.

나와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하니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단다.

친부와, 그 친구 - 아저씨 2명과 나란히 힙한 카페에 앉으니 어색하기도 했다.


내 친부는 나보다 더 생기발랄한 소녀와 같았다.

친구라는 그 아저씨는 아빠와는 달리 50대 후반 특유의 점잖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참을 말씀하시더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로 끝맺음을 하셨다.


그런 끝맺음은 소위 성공한 어른들로부터 왕왕 듣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네. 저, 그러고 있어요."

"그래? 뭘 어떻게 하고 있는데?"

아저씨는 몸을 쭉 빼더니 흥미를 보였다.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서 그림 그리고 있어요."

"그래- 야가 이번에 상을 몇 개나 탔는데-"

아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랑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바다 건너 독일에서 전시를 했다느니, 올해 상을 몇 개나 받았다느니-


본인 자식 자랑하는 걸 꺼릴 부모는 없지만

다른 자식 자랑 듣는 걸 좋아할 부모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저씨는 눈을 반짝이면서 그걸 다 들어주었다.


"나도 그림 좀 볼 수 있나?"

본인도 그림을 참 좋아한단다. 인스타그램 그림계정에 올려놓은 유화와 아크릴 화 등을 보여드렸더니 정말 그림 좋아하는 태가 났다. 작은 휴대폰 화면을 확대하면서 그림을 샅샅이 보던 아저씨는 별안간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야- 너, 애가 참 어둡구나...!"

50대 남성의 눈물은 쉬이 그치지 않았고, 우리 테이블에는 슬픔과 당황으로 정적만 가득했다.

아빠와 마주친 내 눈은 데구루루 굴러 테이블 끝으로 시선을 자리했다.


"그래, 네가 얼마나 힘들게 커 왔는지- 다 안다. 이렇게 밝게 웃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아저씨는 아빠의 오랜 친우답게 아빠를 잘 안다고 했다. 뜻하지 않게 너무 젊은 시절 얻은 자녀. 

이렇다할 준비 없이 부모가 되다 보니 겪은 아빠의 방황,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즐긴 도박 노름. 

가장 없이 자란 자녀들의 들풀 같은 시절을 안다는 말이었다. 


"네. 저 좀 힘들었어요."

환경은 나를 지독하게 만들었다.


가난으로부터 도저히 도망갈 수가 없었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괴롭힘, 놀림, 폭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다들 머리가 어느 정도 컸다고- 학교폭력이니 일진이니 하는 것들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된 내 주위에는 발로 차고 주먹질을 하고 목을 조르던 남자애들 대신 

사랑스럽게 조잘대는 여자애들이 가득했다. 


그 사랑스러움과 대조적으로 내 안에서는 못나빠진 질투가 들끓어 올랐다.

밝은 친구를 보면 그 나이대 특권인 밝음이 질투가 났다. 

친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대부분의 친구들,

그리고 그 부모 사이에서만 낳아진 형제자매들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친구가 가진 그 사랑스러움이 내 것이었으면 했다.

화목한 가정에서만 기를 수 있는 그 사랑스러움은

도저히 내가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이었다. 

본인은 잘 알아차리지 못할 향기 같은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쁜 호기심이 일었다.

'너의 부모가 이혼하면 어땠을까? 그리고 곧장 재혼했다면? 갑자기 집에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친다면? 그때도 네가 이렇게 밝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너의 사랑스러움은 너의 것일까, 너의 부모의 것일까'


예쁘게 웃는 친구를 보며 이런 못된 생각을 한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도무지 매듭지어지질 않았다.



.


고등학생 시절, 반에는 화장을 진하게 하는 키가 큰 애가 하나 있었다. 공부보다는 춤을 추고 노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키만 한 악기를 들고 다니다가 몇 달 후에는 화구통으로 바꾸어 매고 다녔다. 


못난 질투심이 크게 들끓을 것이 자명하여 나는 눈길을 끊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미술로 대학교를 갔는지, 음악으로 대학교를 갔는지는 모른다.


참 이상했다.

공부를 하면, 그래서

성적이 더 좋아지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갈 수 있단다.


선생님의 응원은 내게 와닿질 않았다.

애초에 전제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재능이 있어도 꿈에 가까워질 도리가 없어 느낀 절망감이 어느새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어 폭발했다.

내 안에서, 오로지 안에서만. 무수히 무수히 많은 폭발이 있었다.



그리고 그 폭발의 잔해는 그림에 다 남겨졌다. 부끄러웠다.


나는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 안에 무엇을 담고, 그걸 보는 타인이 무엇을 느끼거나 얻을지 고려할 단계는 아니었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 폭발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좋은 브랜드의 물감은 넉넉했고, 장인이 만든 붓은 탄력이 좋았다.

화실 원장님은 친절했고, 나는 그를 바라볼 때 원비를 결제하지 못할까 봐 초조하거나 죄스러운 마음 따위 없었다.

내가 번 돈으로 당당하고 넉넉하게 배우는 미술은 그러했다.



평생을 꿈을 그리면서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실현하면서 나는 한 없이 가라앉고 부끄러움에 내려앉았다.


여전히 내게는 나 자신의 어두움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하고

그 비뚜룸한 것들을 그림에 담아 사람들을 마주칠 마음은 더욱이 없다.


그래서 나는 민화로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내게 민화는 낙원과 비슷하게 따스하고 빛이 가득했다.


민화는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길상의 그림이며, 각 도상마다 심미적인 가치보다 더 큰

선조들의 아름답게 온화한 마음이 담겨있다. 


내가 민화를 통해 조금씩 밝아졌듯

앞으로도 그 빛이 누군가의 마음속 부스러기들을 비추기를 소망한다.





* 필묘작화접도 : 오래도록 건강하고 평안한 삶을 기원


- 양귀비의 꽃말 ' 평안 '

- 나비와 고양이는 중국어 발음으로 '노인'과 흡사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도상으로 역할을 함

- 바위는 십장생 중 하나로 영원불멸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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