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꼐하는 과정을 배우다
오늘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손에 잡는 날이다.
한 반을 보통 4~5개 팀으로 나누기 때문에,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교실팀과 외부촬영팀으로 나눠 운영한다.
나는 보통 교실 장면이 많은 팀을 먼저 교실에 배치하고,
외부 촬영이 많은 팀은 운동장이나 복도에서 촬영하도록 한다.
이때는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
혼자 모든 팀을 동시에 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첫 촬영은 ‘느리다’
첫 촬영날은 제작 속도가 정말 느리다.
아직 촬영 순서에도 익숙하지 않고, 연기도 처음이라 NG가 쏟아진다.
그래서 첫 주 목표는 3컷.
딱 3컷만 제대로 찍어도 성공이다.
3컷 정도 찍고 나면 아이들의 얼굴에 변화가 생긴다.
“아, 촬영이 이런 거구나.”
어떤 친구는 재미를 느끼고, 어떤 친구는 이미 피곤함을 느낀다.
준비가 잘 된 조는 스토리보드대로 차근차근 진행하지만,
준비가 부족한 조는 그 자리에서 막힘과 고민이 반복된다.
� 촬영이 ‘재밌는 조’ vs ‘힘든 조’
첫 촬영을 끝내면 반응은 둘로 나뉜다.
1) 너무 재밌다 — 팀워크가 좋은 조
설명 없이도 서로 도와주는 팀은 카메라가 돌 때마다 분위기가 살아난다.
“한 번 더 찍자!”
“이번엔 네 표정 조금 더 크게 해볼까?”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2) 너무 힘들다 — 협조가 안되는 조
반대로, 한 컷 찍기 전에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부딪히는 조도 있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한 명이 지치면 분위기가 금방 무너진다.
이때 교사의 역할은 ‘영화 만들기’보다 ‘사람 설득하기’에 가까워진다.
✨ 미디어 세대의 장점이 드러난 순간
촬영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있다.
공포영화를 찍는 팀이었는데, 화장실에서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자 아이들이 즉석에서 새로운 연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이거 점프컷으로 하면 더 무서울 것 같아요!”
내가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점프컷’ 느낌을 떠올린 것이다.
어딘가에서 본 영상의 기억, 빠른 편집과 장면 전환에 익숙한 감각이
자신들의 작품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영상 세대의 감각이 때때로 창작의 번뜩임으로 나타난다.
그걸 목격하는 건 교사로서 큰 즐거움이다.
두 번째 촬영주에는 변수가 찾아왔다.
학교에 독감이 퍼지면서 결석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문제는 대부분의 팀이 주연 배우가 빠졌다는 것.
주연이 없는 영화는 찍을 수 없다.
그래서 팀마다 주연이 나오지 않는 장면부터 촬영하기
출연 인원이 많이 필요한 조를 도와주기 같은 방식으로 조정하며 진행했다.
마지막 촬영주는 남은 컷을 어떻게든 완성하는 주다.
대부분의 팀이 분량이 남아 있고, 특히 준비가 부족한 조는 마지막까지 시간이 모자란다.
그래서 이 날은 선생님이 꼭 옆에서 붙어 있어야 한다.
옆에서 조율해주면 평소보다 2배는 빨리 촬영이 진행된다.
그래도 다 못 찍는 팀이 있다.
그럴 땐 다음 주 1교시에 10~20분 정도의 ‘보충 촬영 시간’을 준다.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번 촬영 3주는 아이들의 협업 능력을 가장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영상은 많이 소비하지만,
막상 서로 소통하고 역할을 나누며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일은 아직 서툴고 어색해한다.
촬영을 시작하면 그 모습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 친구는 지나치게 주도적이고, 다른 친구는 의견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어떤 팀은 의견이 부딪히고, 어떤 팀은 서로 눈치를 보며 움직인다.
그 작은 마찰과 오해가 하나의 컷을 찍는 데도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 서툴음이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함께하는 능력’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서로 말이 겹쳐 싸우던 친구들이
둘째 주에는 “그 장면은 네가 먼저 해볼래?”라고 물어보기 시작했고,
의견이 다르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팀도
마지막 주에는 “그냥 두 버전 다 찍어보자”라며 타협의 방법을 스스로 찾았다.
어떤 조는 컷마다 시간이 오래 걸려 모두 지쳐 있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이 장면은 순서를 바꿔보자”
“너 먼저 촬영했으니까 이번엔 내가 할게”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은 대화들이 모여 하나의 팀워크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결국 협업의 예술이고 아이들이 촬영을 통해 배운 건 카메라나 연출보다
‘서로에게 맞춰가기’라는 능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촬영 3주 동안 아이들의 대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고, 서로의 의견을 들어주는 태도가 생겼다.
이 변화는 스토리보드를 그릴 때나 로그라인을 쓸 때보다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촬영 기간은
아이들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든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무언가를 완성하는 방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다음 주 이 장면들이 편집을 통해 하나의 영화로 이어질 것이다.
서툴지만 성장한 협업의 결과가 어떤 모습일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