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시간은 새벽 다섯 시를 지나고 있었고 새벽 여명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나는 택시 조수석에, 엄마와 큰이모 그리고 큰이모의 딸 동희 언니가 뒷좌석에 앉았다. 택시는 승객의 정적을 싣고 목적지를 향해 탁 트인 서산 시내의 한갓진 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엄마와 큰이모의 기색을 살폈다. 엄마는 시내 풍경이 휙휙 지나가는 창밖으로, 큰이모는 먼지만 가득한 택시 발판에 시선을 내던지고 있었다. 택시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멈춘다. 서울에서 야간 시외버스를 타고 달려온 우리의 목적지, 큼지막한 간판이 보였다.
‘우리 요양병원’ 그리고 그 옆의 ‘우리 장례식장’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는데 그 뒤로 택시 한 대가 더 들어와 멈춰 섰다. 여수에 살고 있는 둘째 이모 내외가 내린다. 엄마가 얼른 가서 택시에서 내리는 이모를 부축했고 반대편 문을 열고 이모부도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둘째 이모를 거의 십 년 만에 보는 거였지만 반갑게 인사할 분위기는 아니어서 그저 건강이 좋지 않은 둘째 이모의 손을 꾹 잡는 걸로 알은체했다. 겨울 초입의 어느 새벽, 충남 서산 시내의 요양병원 앞에서 만난 중년의 자매들은 병원 입구가 아닌 그 옆 장례식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의 엄마가 요양병원 침대에서 치매를 앓다 홀로 영면에 드셨다. 병원 근처에 막내 외삼촌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어 자주 오갔지만, 한밤중에 일어난 일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간의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나에게는 외할머니이지만 얼굴 본 적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손가락 하나 꼽을 기억도 없으니, 부고 소식을 듣고도 솔직히 말하면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다만 내가 급하게 차편을 알아보는 중에 지척에 사는 큰이모가 간단한 짐을 챙겨 우리 집으로 왔는데 상복을 입지 않겠다는 큰이모와 그럴 작정이면 자식이 장례식장에 뭐 하러 가느냐고 엄마가 목소리를 높여 일어난 소란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을 뿐이다. 큰이모는 목청이 아주 커서 그냥 하는 말인데도 꼭 화를 내는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 일들이 왕왕 있다. 그런 이모에게 평시에는 큰소리 내는 법 없는 엄마가 목청을 더 높였으니, 생떼를 놓는 이모의 그 까닭이 무엇이건 간에 상복을 입느냐 마느냐로 벌어진 두 자매간의 입씨름이 내 관점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과히 볼만장만했다. 두 자매의 입씨름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동희 언니가 왔고 때마침 내가 부른 콜택시가 대문 앞에 도착했다기에 출발을 서둘러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산에 도착해 잡아탄 택시가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두 자매는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차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에 영정 사진만 덩그러니 놓인 분향실에 외할머니의 딸들이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엎드려 꺽꺽 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큰이모는 바닥에 앉아 영정 사진만 올려볼 뿐, 울지 않았다. 외숙모는 상조회사 직원들과 함께 조문객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오가면서 흘끔댔다. 다리가 불편한 둘째 이모부는 영정 사진을 보다가 나지막한 숨을 내쉬고 고개를 떨궜다. 상주 자리에 선 막내 외삼촌은 통곡하는 누나들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만 있다. 엄마와 이모들의 울음이 잦아들 때쯤 동희 언니와 내가 예를 갖춰 절을 했다. 큰이모부가 병환으로 몇 년 전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곤 조문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생소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긴 장례 관련 업자 말고 죽음과 가까운 이런 공간을 친숙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번 절을 하고 허리를 숙여 반절까지 하고 나서 막내 외삼촌에게 갔다. 내가 좋아하는, 곰돌이 푸를 닮은, 일찍부터 정수리가 벗겨져 반쯤 대머리가 된, 작고 동그란 눈이 귀여운, 오밀조밀한 생김새와 다르게 조폭이 형님이라 부를만한 다부진 풍채를 가진 막내 외삼촌. 십여 년 전 오십이 다 되어서야 딸 둘 가진 외숙모와 연을 맺어 결혼할 때 보고 처음이니 막내 외삼촌과도 실로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어른들 모시고 오느라 고생했다.”
서른이 넘은 다 큰 조카가 어린애 모양 품에 안기자, 솥뚜껑 같은 손으로 내 등을 다독거렸다.
어른들의 아주 자세한 속사정까지 알 길은 없지만 창졸간에 모이게 된 외할머니 자식들 사이에 흐르는 냉담한 분위기를 읽어내고 있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형제들의 소통 교차로 역할을 하는 엄마에게도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그네들의 사연을 듣는 이는 자연스레 엄마의 딸인 내가 당첨되었다. 그래서 엄마의 형제들 사이에 오간 이야기는 그날그날 라디오 방송처럼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유일한 청취자인 나는, 어느 날은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흥감스럽게, 어느 날은 한쪽 귀로 흘려들었다. 그래서 들은 이야기들이 조각조각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대충 붙여보았을 때, 모친 장례식장에 모인 자식들은 서로에 대한 각자의 엉킨 실타래들을 머리에 이고서 마주한 상태일 것이다. 큰이모보다 두 살 위였고 베트남전에 참전해 전사자가 되었다는 삼촌을 빼면 엄마의 형제는 총 다섯이다. 둘째 이모와 엄마 사이에 있는 큰외삼촌만 도착하면 엄마의 형제들이 다 모이게 되는 셈인데 나는 어쩐지 그가 온다면 끝내는 형제들끼리 척을 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약간 걱정되었다.
- 다음 주 2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