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한바탕 눈물 바람을 끝낸 엄마와 이모들에게 상조회사 직원이 상복 사이즈를 물어왔는데 나는 큰이모 때문에 조마조마했다. 엄마의 표정은 여전히 불편한 기색이었고 큰이모는 고집스럽게 오므린 입을 삐죽거렸지만, 다행히 별다른 심통 없이 결국 상복을 입었다. 그리고 분향실 옆 상주 휴게실 한쪽에 똬리를 틀고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엄마와 둘째 이모는 식당 한쪽에서 작당 모의하듯 무언가에 대해 속닥였다. 미루어 짐작건대 필시 큰이모에 관한 뒷담화일 것이다. 집에서 일어난 소란이 뒷담화의 주 화제일 터.
조사나 어미, 그리고 조금씩 더하고 빼는 내용들을 감안하고 큰이모에 대한 엄마의 라디오 방송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네 이모가 남동생들 때문에 속 많이 끓였어. 성질머리들이 또 좋기나 해? 마음고생, 몸 고생시키는 것도 모자라 툭하면 싸움질해서 돈 문제까지 일으키면 그거 다 수습하러 다닌 게 다 큰이모야. 네 삼촌들 그 성질머리가 누구한테서 나왔겠니. 외할아버지 알면 집안 시끄러워지니까 큰이모가 몰래 삼촌들 뒤치다꺼리 다 했지. 결혼해서 친정 일에, 동생들 일에 그렇게 쫓아다니는데 오죽하면 이모부가 술만 먹으면 이혼하자 그랬겠니. 큰외삼촌은 툭하면 맡겨 놓은 거 모양 돈 달라고 패악질이지, 막내 삼촌은 싸움판에서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때려서 교도소에 들어가 있으니 그거 옥바라지하러 다녀야지. 그때만 해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고 연락 한번 하기 힘들 때니까 나는 나중에 전해 들은 얘기지만, 그렇게 큰이모가 해 준 건 입 싹 닦아 먹고 이모부 돌아가셨을 때 봐라. 즈이들이 뭐 서운할 일이 있다고 큰 매형 돌아가셨다는데 코빼기도 안 보여? 인간 안 되는 것들이 네 삼촌들이야. 이모가 목청만 크지, 마음은 약해 빠져서 동생들한테 다 뺏기고 헛똑똑이야. 삼촌들 밑으로 들어간 돈만 가지고 있었어도 지금 서울에 아파트 세 채는 가지고 있을 거다. 그렇게까지 동생들한테 했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고, 아니 뜯어간 돈은 차치하고라도 빌려달란 명목으로 가져간 돈은 갚아야 하는 거 아니냐?
나도 네 아빠랑 갈라서고 너 데리고 여수에서 올라와 이모 신세 졌으니 큰소리칠 입장은 아니지만 요즘 큰이모가 툭하면 동생들이 맏이 대접을 하긴 하느냐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기막힐 노릇이라니까.
그리고 요즘은 네 둘째 이모한테 질투하는 거 같은데 체면 내세우느라 겉으로 티는 못 내고 혼자 끙끙 앓더라. 왜긴 왜야, 동희하고 동주는 사십이 넘어서 내일모레 곧 오십인데 결혼도 안 하고 있고, 이제 못 하지 뭐. 그런데 미수하고 재식이는 다 결혼해서 집 장만했지, 얘들까지 둘씩 턱턱 낳았지, 둘째 이모는 손주까지 보고 편안하게 사는데 큰이모는 동희 그년까지 속을 썩이니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잖아. 아무튼 요즘 네 이모들 사이가 삐그덕 해. 얼마 전에도 둘이 통화하다가 무슨 말끝에 감정이 상했는지 큰소리가 오갔다는데 도대체 우리 형제들 사이가 자꾸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둘째 이모한테 질투할 일이 무어냐고 내가 묻는 바람에 최근 엄마의 라디오 방송은 조금 더 길어졌었다. 동희와 동주는 큰이모의 자식들이고 미수와 재식이는 둘째 이모의 자식들이다. 내게는 이종사촌인데 동희 언니와 동주 오빠는 십 년 안팎으로, 미수 언니와 재식 오빠는 오 년 안팎으로 나와 터울이 진다. 엄마가 아빠와 갈라서기 전까지는 여수에서 살아서 둘째 이모네와 왕래를 했고 부모의 관계가 깨진 뒤에는 큰이모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살아서 이종사촌들과 두루 알고는 지내지만 딱히 가깝다고 선뜻 말이 나오는 건 아닌 그런 관계다.
정오를 지나자, 막내 외삼촌의 동네 사람들부터 외가 쪽 친척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엄마와 둘째 이모는 오랜만에 보는 외가 친척과 해후하거나 지인들의 조문을 맞느라 바빴고 큰이모는 여전히 휴게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상조회사 직원들이 조문객의 식사 준비를 했기 때문에 내가 손을 보탤 일은 없었다. 나는 분위기를 슬쩍 보고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얼굴을 살짝 스치는 바람에 찬 기운이 있었지만, 확실히 서울과는 다른 상쾌함이 공기에 서려 있었다. 주머니에 밀어 넣은 손끝에 담뱃갑이 만져졌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가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장례식장 맞은편에 있는 요양병원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동희 언니가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꼰 다리 한 짝을 흔들며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들어 내는 꼴이 영락없이 동네에서 껌 좀 씹는 노는 언니 행세였다.
“너도 담배 피워?”
언니가 나를 보고 손을 까딱여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처음 보기도 했지만, 뻐금대는 언니의 입 모양이 왠지 모르게 볼썽사납게 느껴져 니코틴에 대한 욕구가 싹 사라졌다.
“아니, 바람 좀 쐬러 나왔어.”
언니와 간격을 두고 멀찍이 앉았다. 언니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동희 언니는 인문고에 진학해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딸자식 대학 공부까지 시킬 형편은 아니라며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큰이모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취업했고, IMF 때 실직해서 오랜 백수 생활을 하다가 어렵게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도 얼마 못 버티고 나와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겨우 제 앞가림 정도만 하는 정도였으나 무엇보다 큰일은, 큰이모부가 평생 공사장 인부로 막노동하며 모아 유산으로 남긴 일억 남짓한 돈을 얼마 전에 홀랑 해 먹었다는 것이다. 그 일억 전에도 사천, 육천, 이천만 원, 적게는 몇백만 원씩 동생인 동주 오빠한테 앓는 소리를 해가며 융통해 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으니 어림잡아 이억 원이나 되는 돈을 허공에 날린 위인이었다. 큰이모는 나사 빠진 년, 미친년 해가며 노발대발 성을 냈지만 결국 자식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걸 보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 피눈물을 쏟으며 돈을 내놓았다고 했다. 더 경악할 일은, 그 많은 돈의 사용처를 쓴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언니는 내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엄마의 라디오 방송 덕분에 그녀의 치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던 터라, 얼굴을 쳐들고 붕어처럼 입을 뻐끔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낯짝 두껍다는 말이 절로 나올 거 같았다.
“요즘 일하는 건 어때?”
또다시 백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체 하고 물었다.
“세상 사는 게 간단치가 않아.”
마흔다섯의 나이에 딱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는 언니의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을지 궁금했다. 엄마 말대로 똥이 가득 차 있으려나.
“만나는 사람은 없어?”
남의 집 귀한 아들 신세 망치는 것보다야 언니 같은 사람은 그냥 혼자 사는 게 낫다는 편이 내 평소의 가치관이지만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물었다.
“지금 만나는 사람 있으면 결혼 얘기 나오고 골치 아프지. 혼자가 속 편해.”
언니는 담뱃불을 발로 비벼끄더니, 한 개비를 새로 꺼내 불을 붙여 볼이 움푹 패도록 연신 목구멍으로 니코틴을 빨아들였다가 입으로 후하고 연기를 뿜어냈다.
“그럼,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야?”
언니는 비식비식 웃으며 빈정댔다.
“결혼해서 법적으로 얽혀봐라. 남자 쪽으로 생긴 관계들이 복잡하잖아. ‘시’자 붙은 사람들 말이야. 신경 쓰고 눈치 보고 생각만 해도 머리통 쪼개지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어. 우리 엄마나 너희 엄마 봐라. 사는 게 다 거지 같아. 살다가 남자 필요하면 적당히 만나 놀면 될 일이고.”
진짜 거지같이 사는 게 뭔지 언니는 진짜 모르는 모양이다. 인간은 정말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존재다. 그럴 작정이면 제 앞가림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라고 응수하고 싶었지만 떫은 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 다음 주 3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