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연재소설

by 해반

인절미 두어 개가 목구멍에 쑤셔 박힌 듯한 뻑뻑함이 느껴지는 동희 언니를 뒤로하고 먼저 분향실로 들어서는데 상주 휴게실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슬쩍 들여다보니 똬리를 틀고 앉은 큰이모의 등에 대고 외숙모가 작대기로 때려 맞은 개구리 모양 납작 엎드려 읍소를 하고 있었다. 큰이모는 외숙모를 등지고 앉아 입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형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그 옆에서 엄마와 둘째 이모가 세모눈을 장착하고 미운 시누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건 자네가 잘못했지. 막내가 안 간다 고집 피우면 자네라도 형부 장례식장에 다녀가는 게 사람 도리 아닌가.”

엄마는 차분히 나무랐지만 둘째 이모는 할 말을 마음에 묻어두는 성격이 안 되었다.

“서울서 여수서 다들 먼 길 왔는데, 얼마나 시가 쪽을 우습게 봤으면 그따위로 행동해? 딸들이 엄마하고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자네가 막은 거야!”

돌연한 상황에 나는 잠깐 당황했지만 둘째 이모의 날 선 대사의 사연이 대충 짐작되는 바가 있어 슬그머니 휴게실 문을 닫았다.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에서 하루 모셔 와 근처 막내 외삼촌 집에서 자매들이 하룻밤 보낼 요량으로 어느 날 모였는데 두 내외가 달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두어 시간 지나자 어서 가시라고 등을 떠밀더라는 것이다. 하는 짓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아 택시를 불러 타고 천안역에 도착해, 만난 지 여섯 시간 만에 서울로 여수로 다시 헤어졌다는 뭐 대충 그런 사연이다. 엄마와 이모들은 외숙모를 괘씸하게 여겼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날 두 내외의 태도가 갈렸다면 모를 일이지만 엄마의 표현을 잠깐 빌리면 ‘등을 떠민’ 행위의 주체에는 자매들의 동생인 막내 외삼촌도 포함된 것이므로 외숙모에게 그날의 사건에 대한 모든 힐난을 퍼붓는 것은 좀 편향된 태도가 아닌가 싶다. 큰이모부의 장례식 때 외삼촌이 조문하지 않은 일도 같은 맥락이다. 형제들끼리 엉킨 실타래를 안고 있으면서 그 일로 파생되는 모든 일에 뭇매를 맞는 사람이 외숙모가 되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앞으로는 꺼내지도 못하면서 뒤로는 뒷말에 뒷말을 보태 오해와 어긋난 감정을 눈덩이처럼 키우는 소통의 방식이 어느 모로 보나 득이 될 일은 없다는 것을,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른들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어쩐지 작대기로 때려 맞은 개구리 모양으로 큰이모에게 읍소를 해야 할 사람은 막내 외삼촌이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둘째 이모부와 마주 앉아 두런거리고만 있었다. 영혼이 있다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외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나는 씀벅거리는 눈으로 한참 보았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조문객들의 발길은 북적였고 여덟 시쯤 동주 오빠가 퇴근해 왔다. 그즈음 휴게실에서 큰이모도 나왔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외숙모가 읍소하는 동안 벽만 보고 앉았던 큰이모가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 후회밖에 남는 게 없네.’라는 한마디 말과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한다. 어조가 어땠느냐에 따라 그 말의 근원이 다르게 해석되겠지만 엄마에게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이모가 안쓰러웠다. 이모는 다시 자신의 감정을 굽힌 것이다.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모를지언정 과거의 일을 가지고 모친의 장례식장에서 형제들의 맏이가 계속 꼿꼿하게 버틴다면 못내 이모에게 불리한 형국이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물론 이모가 그런 계산까지 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다.

동주 오빠는 조문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있었고 큰이모는 그 맞은편에 앉아 아들의 식사를 챙겼다. 엄마와 내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오빠는 갓 스무 살이었는데 어느새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마흔 넘은 중년이 되었다. 큰이모부가 몇 년 전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오빠는 몸이 약한 큰이모와 없는 돈도 까먹고 있는 누나의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딸은 대학 공부시킬 형편은 안 되지만 아들은 대학에 보낼 작정이었던 큰이모부의 생각과 다르게 오빠는 공부에 뜻이 없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갔다. 큰이모부의 교육관에서 드러난 은근한 남아선호사상에 대해서는 엄마와 둘째 이모 사이에서 두고두고 가십거리가 되었다. 군대 제대 후에는 직장을 구해 제 앞가림했고, 뒤늦게 야간 전문대에 입학해 일하며 본인의 힘으로 졸업까지 했다. 늦은 나이까지 미혼인 것만 빼면, 큰이모에겐 착하고 애달픈 아들이었다.

단지 큰이모는 오빠가 말수가 적고 물어보는 말에 겨우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부분에 불만이 적잖았는데, 그것은 정말 이모만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오빠는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축에 속한다. 오빠와 나는 나이 터울이 있는 편이라 크게 접점은 없었지만, 언젠가 큰이모부 병문안을 갔다가 지하철을 타고 오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눈 대화가 꽤 즐거웠던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큰이모가 문제 삼는 오빠의 과묵함과 단답형 대답은 오빠의 문제가 아니라 큰이모의 화법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큰이모는 상대의 말에 습관적으로 면박을 주면서 상대의 입을 닫게 하는 일방적인 대화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나도 솔직히 큰이모가 안쓰러우면서도 불편하다.

그 뒤에도 오빠와 나는 아주 드물게 만나 커피 한 잔씩 하는 사이였는데 그 만남의 주 화제가 되는 인물은 동희 언니였다. 얼마 전 언니가 억 단위의 금액을 해 먹은 날, 나는 오빠의 전화를 받았다. 오빠는 속사포로 속마음을 쏟아내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뚝 끊었다. 나에게 전화했던 걸 기억할지나 모를 만큼 그의 발음은 술에 취한 혓바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엉터리였다. 대충 알아들은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이랬다.

친구 관계면 인연 끊고 안 보면 돼. 근데 이건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다 같이 죽자는 건지. 아직은 어머니가 계시니까 그렇지, 어머니 돌아가시면 누나하고는 그날로 끝이야.

그랬기 때문에 동희 언니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는 터럭만큼도 거짓이 없다. 오빠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당장 적극적으로 대항하기보다 훗날로 미룸으로써 현실을 회피하고 언젠가는 닥칠 혈연관계의 구심점인 큰이모의 죽음을 절연의 수단으로 선택한 모양이었다.

나는 각자 제 앞가림만 잘하고 살면 인생사 그렇게 고달플 일도 없을 텐데, 하다가 아무리 형제지간이라도 누군가가 실어준 짐을 당연히 져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눈은 마주치지 않는 두 모자를 보면서 문득 이런 것도 세습되는 건가 싶었다.


-다음 주 4화에 계속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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