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정해진 부모를 가졌다는 것

연재소설

by 해반

엄마의 동창생들이 무리를 지어 왔고 이곳이 장례식장이라는 조건만 빠진다면 정기 동창회 모임과 다를 것 없는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나는 엄마에게 불려 가 생전 처음 본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띠고 일일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무리 동창 딸이라고 해도 서른이 넘은 성인이고 피차 서로 처음 본 사이들이니 껍데기뿐인 헛말만 허공에 맴돌았다.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들을 난 무척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이다. 이야기 나누기 바쁜 엄마를 뒤로하고 슬그머니 그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조문객들이 먹고 마시는 소리에 머릿속까지 어지러울 지경이어서 휴게실에 좀 누워있을까 싶어 분향실로 갔다. 여긴 분향실을 거쳐야만 상주 휴게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라 쉬려면 외할머니 영정 사진 앞을 지나야 해서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상주 자리에 막내 외삼촌이 홀로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외할머니에겐 아들이 둘 있으니, 본래대로라면 큰외삼촌도 상주 자리에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 옛날 중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시절에 장남이라고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켜 내놓은 이 집안의 큰아들은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여태 기척이 없다. 부모 봉양하고 달마다 조상들 제사 모실 책임이 있어 모든 집안 재산을 장남 앞으로 해 주었더니 술, 도박, 여자에 빠져 하나씩 들어 먹다가 결국 조상들 묫자리가 있는 선산까지 팔아먹고 돈이 궁할 때만 연락해 오는 동기간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외삼촌은 나에게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들이다. 내 부모가 경찰서까지 오가며 떠들썩하게 관계를 깨부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그때까지만 해도 남아있던 형제애를 시전하며 동생이자 누나인 엄마의 아군으로 달려왔었다. 엄마의 아군과 망나니 술꾼 아빠의 대립 구도는 몸싸움과 육두문자가 첨가된 주말연속극에 나오는 비슷한 줄거리로 전개되었고 비 맞은 강아지 꼴을 하고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조카를 대하는 두 형제의 모습은 나의 머릿속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있다.

“새끼고 뭐고, 내비두고 당장 짐 싸라. 저 새끼 사람 안 된다.”

앞의 ‘새끼’는 나를, 뒤의 ‘새끼’는 아빠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른들의 난장에 떨고 있는 열 살 아이 앞에서 아무리 화가 난다고 자식을 떼어놓고 가자는 천박한 말을 내뱉은 작자는 큰외삼촌,

“새끼가 무슨 죄요. 지 애비가 미쳐 그런 거지. 책가방에 너 입을 옷 챙겨라. 삼촌이랑 가자.”

나를 한 번에 안아 올려 품에 앉고 등을 다독인 이는 막내 외삼촌이었다. 두툼한 그의 손이 만들어 낸 그 토닥임은 그때 그렇게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더랬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아무리 막내 외삼촌에 대한 불온 방송을 하더라도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끝까지 막내 외삼촌의 아군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리라 마음먹었다. 그만큼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다.

곰돌이 푸를 닮은 삼촌에게 다가가 나는 그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이 어릴 적 나에게 위안이 되었듯 엄마를 잃은 육십 줄의 아들인, 그의 등에 위로를 건넸다. 그는 퀭한 얼굴로 곰돌이 푸의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휴게실 한쪽에 웅크리고 누웠다. 온몸이 뻐근하고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 축 처졌다. 눈꺼풀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잠이 들락거렸다. 위장이 빈 채로 꿀렁거리는데 허기보다는 한없는 구토감만 감기는 눈 뒤로 가서 자리 잡았다.

일몰이 지난, 밤과 낮의 경계가 모호한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길을 걷는다. 주변에 건물이라곤 보이지 않는 드넓은 대지가 끝도 없이 펼쳐진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사악 소리를 더하고 내딛는 발걸음이 흙길에 섞여 있는 자갈들을 뭉개는 소리만 만들어 낼 뿐이다. 사위는 점점 더 어두워져 한 치 앞도 분간되지 않는다. 얼굴로, 어깨로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 마치 멈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계속 걷는다. 빗방울은 더 굵어지고 빗줄기는 억세졌다. 이제는 둔중한 비의 장막이 거대한 어둠을 감싸 옭아맨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발걸음이 느려졌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세찬 비를 뚫고 흐느끼던 울음은 이내 통곡으로 변했다. 믿을 수 없게도 칠흑 같은 밤 우중 속을 지척거리며 울고 있는 이는, 나였다. 형벌과 같은 걷기를 하면서 우는 이가 나라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 퉁퉁 부어오른 발을 옥죄어 다리가 곧 터질 듯한 통증을 일으키는 신발을 그만 찢어발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다리는 제멋대로 움직였고 멈추지도, 상체를 구부려 신발을 벗길 수도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나는 발목을 잘라내는 끔찍한 상상을 하며 계속 울었다. 갑자기 몸이 바람에 힘없이 나부끼는 종이 인형처럼 흐느적거렸다.


“너 여기 있었구나. 피곤하지. 내가 생각 없이 깨웠네. 눈 좀 더 붙여라.”

엄마였다. 엄마는 내 옆에 자리를 깔고 누웠고 저쪽에 다른 식구들도 드문드문 쪽잠을 자고 있었다. 벽에 붙은 전자시계는 붉은 네온사인을 뿜어냈다. 새벽 네 시였다. 꿈, 꿈이었나. 몽롱한 상태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가만히 발을 만지작거렸다. 꿈속의 감각이 이렇게 생생할 수 있다니 놀라웠지만, 오래된 습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보니 사실적이긴 했나 보다. 다리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내일 새벽에 발인이니 하루는 더 꼬박 있어야 했으므로 잠을 더 자두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어스름을 뚫고 붉은 빛무리가 선명해져 하늘이 밝아온다. 결국 다시 잠들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녘 기운이 꽤 쌀쌀했다. 자꾸 하품이 나와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이 순간에도 하나의 생이 끝나고 또 다른 생이 시작되는 연장선에 있을 이 적요한 시간이 불현듯 지리멸렬하게 느껴졌다. 염세적인 사고의 포자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이 꿈 때문인가, 잠깐 생각했다.

하루 사이에 다들 까칠해진 얼굴을 맞대고 이른 아침 식사를 했다. 입맛은 없는 듯했지만, 어른들은 꾸역꾸역 한 그릇씩 비워냈다. 나는 도저히 입안이 껄끄러워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아 먹는 시늉만 하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의 형제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고 음울했다. 발인만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 제 갈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장례지도사가 입관식 진행을 알려왔다.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막내 외삼촌이 입관실에 들어갔다. 나는 선뜻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손주들이 입관식에 참석해야 하는 법은 없는지, 장례지도사도 어른들도 딱히 권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입관실 밖으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그 찰나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할머니 얼굴이 편안해 보이시더라.”

퉁퉁 부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떨구며 입관실에서 나온 엄마가 한 말이었다. 나는 엄마를 힘껏 안아 주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오전부터 다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외조모의 장례식장에서 손주들이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조문객 대부분이 엄마의 형제들과 관계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동희 언니와 동주 오빠 그리고 나는 잠시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언니는 오빠 눈치를 살피더니 내게 검지와 중지를 입에 갖다대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면서 편의점에 잠깐 마실 거리를 사러 간다며 자리를 떴고 오빠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빠와 단둘이 남았지만 딱히 할 말도 없고 컨디션이 저조해 말할 기운도 없었다. 우린 둘 다 같은 상태인 모양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오빠에 대한 사실이 하나 있다. 언니가 그 큰돈을 꿀꺽한 며칠 뒤, 오빠는 삼 년을 사귀었고 결혼을 결심했던 여자에게 이별을 고했다. 정말 사랑했지만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단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대사다. 부양해야 할 칠순의 꼬장꼬장한 홀시어머니, 오십이 가까워도 제 앞가림도 못하는 노처녀 시누이 그리고 가진 거 하나 없는 자신의 처지에 그 여자까지 끌어들여 불구덩이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오빠가 이별을 선택했다는 것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불구덩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지금 처한 환경이 내가 봐도 답답하니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됐지만 자신이 불구덩이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여자는 거기서 밀어내면서, 왜 정작 자신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선택의 결과는 선택한 자의 몫, 그 선택이 안타깝고 후회될지라도. 흐릿한 눈동자를 둘 곳 없이 굴리는 오빠의 얼굴에 드리운 청회색 옅은 그늘이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삶의 전체 파이는 같다는데 어쩐지 오빠에겐 삶이 너무 한쪽으로 기운 느낌이다.


-다음주 5화에 계속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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