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훈장

연재 소설

by 해반

시간은 틈을 주지 않고 흘러간다. 다녀갈 사람은 대부분 다녀가고 장례식장 안은 한산해졌는데 잠깐 사이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다시 부산스러워졌다. 광주에서, 태안에서 둘째 이모의 자식들과 사위,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이 온 것이다. 둘째 이모의 자식들은 딱 알맞게 각각 딸과 아들 한 명씩을 두고 4인 가정을 이루었다. 엄마는 반색하며 조카들과 그의 가족들을 반겼다. 아이들이 북적이니 어른들의 피곤한 기색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미수 언니의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고, 재식 오빠의 아이들은 여자 쌍둥이로 미취학 아동이었다. 나이를 물어봤던 거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특히 쌍둥이들은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일란성 쌍둥이라더니 정말 똑같이 생겨서 신기하긴 했다. 다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결혼식 때 보고 임신과 출산 소식만 듣고 지내다 상면하니 솔직히 좀 어색했다. 아이들 학교 문제로 늦게 와 죄송하다며 어른들에게 미수 언니가 위로의 말을 전했다.

번듯하게 일가를 이룬 조카들을 보는 큰이모의 입술은 온화한 미소를 만들어 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의 성정으로 짐작하자면 큰이모는 지금 상충하는 모호한 감정들로 분명 속마음이 어지러운 상태일 것이다. 어른들의 훈장은 장성한 자식들이 한자리하는 법인데, 제 자식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동생네 자식들의 번듯한 모습에 큰이모의 뾰족한 자존심이 건드려졌음이 분명했다. 둘째 이모의 확고히 펴진 어깨와 살짝 들린 턱 끝도 큰이모의 심사를 꼬이게 만드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내 감각 신경은 쓸데없이 예민해서 상대의 감정 변화를 쉽게 알아채 곤란할 때가 많다. 하필 그 모습을 읽어낼 게 뭐람!


“오랜만이네. 곧 결혼한다면서?”

나에게는 결혼식 때 딱 한 번 본 이종사촌 형부가 되는 미수 언니의 남편과 눈이 마주쳐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데 언니가 알은체했다. 소프라노 음역을 가진 듯 나보다 곱절은 높은 목소리 톤에 통통 튀는 발성을 가진 언니가 생글거리며 물었다. 나와는 가진 에너지도 기질도 너무 다른, 사회에서 만났다면 절대 개인적인 인연으로 두지 않을 인간 유형이다. 말투에 묻어나는 천진난만함이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

“응. 가을쯤. 얘들이 많이 컸네. 언니가 고생이 많았겠다.”

언니의 시선을 피해 주위를 휙 둘러보는데 저쪽에서 큰이모가 아이들이 포개 모아 내민 조그만 손바닥마다 오만 원짜리 두 장씩을 턱턱 얹어 놓고 있었다. 세상에나, 나는 속으로 사십 만원, 했다. 전기세 나가는 게 아까워 한낮에는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도 불을 켜지 않는 큰이모에게 그 돈은 한 달 찬거리를 살 값일 것이다.

“언니, 조그만 얘들한테 뭔 돈을 그렇게 많이 주는가. 하이고, 참.”

옆에서 둘째 이모가 얼굴을 찌푸린 채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큰이모가 아들에게 생활비를 받아 쓰는 형편임을 알고 있기에 둘째 이모는 큰이모의 지갑에서 나오는 오만 원짜리 행렬을 만류하는 중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한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동주 오빠의 기색을 살폈는데, 다 듣고 있었을 테지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모도 참. 얘들 버릇 나빠지는데.”

미수 언니가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말끝에 웃음을 달았다. 하지만 큰이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지하려 들진 않았다. 나는 안다. 큰이모가 지금 형편에 아주 큰 돈임에도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를 척척 뽑아내는 그 행위를 보란 듯이 하는 것은―물론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조카 손주들에게 베푸는 마음도 있겠지만―자꾸만 초라해지는 자신의 훈장을 지켜내기 위한 수단임을. 엄마는 쓸데없는 자존심 내세워 가며 형제지간에 그렇게 과시할 일이 무어냐고 혀를 찼지만 말이다.

“남편 될 사람은 어떤 일 해?”

언니가 내 주위를 환기하며 물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당사자에게 제일 처음 던지는 물음―무슨 일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의 질문 패턴은 대부분 일정한데 그것은 엇비슷한 사고와 궁금증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이 타인을 겉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 어떤 ‘사람’인지 보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 습득이다.

“증권회사에서 일해.”

미수 언니의 눈이 갑자기 확 커졌다. 그녀의 눈이 커진 데는 ‘증권회사’라는 단어의 영향이 있음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그다음 말은 좀 거슬렸다.

“어머, 정말? 괜찮네. 좀 데리고 오지 그랬어. 얼굴도 좀 보게.”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거지? 만나보지도 않은 그 사람이?, 아니면 증권회사가?

언니는 별다른 뜻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나도 물론 이 장소가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이 아니었다면 그냥 듣고 넘겼을 말이지만, 사람은 자기 입에서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좀 까칠하고 냉소적인 편이다. 조용조용한 말투로 상대의 빈틈을 노려 퍽하고 찌르는 검투사 같달까.

“언니, 여기가 무슨 상견례 자리는 아니잖아.”

나는 추호도 상대를 면구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지만 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언니에게 투박스럽게 내뱉은 말을 정정하거나 사과할 마음은 없었다. 단 한 번도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보지 않은 그녀에게, 마냥 천진난만한 순수함에서 비롯된 의도 없는 말과 행동일지라도 때론 상대에게 뜻하지 않은 생채기를 낼 수 있음을 단지 알려 준 것뿐이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사무적인 내 말투에 한 방 맞은 듯 언니는 두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지르퉁한 표정이었다. 언니 옆에 앉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의 남편은 나와 언니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동생이라고 해서 먼저 굽힐 생각은 없었으므로.


나는 주관이 뚜렷해 한 번 굳힌 생각을 좀처럼 바꾸는 법이 없고 말을 함부로 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말이 내 입을 통과했다면 반박해 올 말이 없을 정도로 혀를 놀려 상대를 한 번에 구부리는 편이다. 내 결혼 상대자는 나의 이런 면을 흥미로워했다. 보통 드센 여자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말이다. 결혼한 여자의 인생이 깨지는 과정을 너무 가까이 지켜봤던 나는 비혼주의자였지만 그 신념을 깰 만큼 그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같은 교양 수업을 한 학기 내내, 옆자리에 앉아 들었다는데 학기의 마지막 수업 날 그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도 나는 내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 나한테 시간 내줄 수 있으면 같이 점심 먹을래요?”

종강을 알리고 교수가 수업을 마무리 짓자 빠르게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 나를 잡아 세운 그는 단번에 거절하는 나를 보고 참 따뜻하게도 웃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만이 가진 여유롭고 편안한 미소에서 발현되는 그런 특유의 분위가 그의 웃음에 묻어났다. 그는 나보다 네 살 많은 복학생이었고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밀어내는 내 옆을 맴돌면서 머물렀다. 적당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아래로 쳐진 눈꼬리가 순한 눈매를 더 도드라지게 했고 누가 봐도 얼굴에 ‘모범생’이라고 쓰여 있는, 모난 심성 없이 차분한 남자였다. 수시로 돌변하는 날씨처럼 감정 기복이 심한 내가 내면 깊숙이 잠재된 우울감에 괴로워할 때면 적당히 나에게 스며들어 잠재울 줄 아는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나의 냉소적인 이면에 있는 방어기제를 읽어낸 그는 결혼하자는 말을 이렇게 대신했다.

“당신 마음 한 귀퉁이에 평생 내가 들어가 살 수 있는 방을 만들어 줘요. 당신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내가 함께하고 싶어요.”

그렇게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고 올해 가을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재식 오빠 부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쌍둥이 때문에 한참 진땀을 뺐다. 장례식장 안이 아이들 수선 때문에 소란스러워지자 둘째 이모가 서둘러 언니와 오빠의 단란한 가족들의 귀가를 재촉했다. 미수 언니는 차에 타기 전까지도 구겨진 얼굴을 펴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아이들에게 만 원짜리 세 장씩을 건네며 책을 사보라는 말을 해 주었다. 책을 두어 권 사보기에 적당한 금액이었고―내 기준에 초등학생에게 줄 수 있는 합리적인 금액의 용돈이었다―살면서 자주 볼 사이도 아니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그 아이들의 인생에 여러모로 득이 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발인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하는 재식 오빠에게는 결혼식 때 보자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둘째 이모의 자식들이 탄 차 두 대가 저녁노을이 사위어 가는 그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주 6화에 계속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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