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시in 기사
http://www.msi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9
김네잎 기자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고광식 평론가가 등단한 지 12년 만에 첫 번째 평론집 『착란』을 파란에서 펴냈다. 그는 일찍이 1990년 《민족과 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여 오랫동안 시와 밀착하여 시를 쓰고 시집 『외계 행성 사과밭』을 출간한 한 바 있다. 그래서 그의 시적 경험은 평론가의 해석적 시각에 영향을 주어 시를 정밀하게, 밀도있게 해석하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착란』은 그런 자질을 가진 고광식이 썼던 평론들 중에서 삶의 에피파니를 경험한 문학과 예술 작품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글 22편을 선택해 묶은 책이다.
제1부에서는 문학장 안을 톺아보는 글로 채웠다. 시와 비평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통해 2020년대 시와 비평의 좌표는 어디인가를 짚는다. 또한 다양한 경로로 등단한 시인들의 헤게모니 투쟁과 신춘문예 제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문단의 구조적 문제 개선을 촉구한다. 특히 「ChatGPT, 시인으로서의 (불)가능성」에서는 지금 우리가 예술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연적인 ChatGPT 시대에 살고 있고,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이 필요함을 언술한다.
제2부에서는 고립의 사회학적 상상을 다룬 글로 엮었다. 기술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사회에서 인간은 파편화와 고립의 공간에 갇힐 위험이 커진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현대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성찰과 함께 시에 투영된 페미와 퀴어의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되묻는다. 건강한 실존을 위협하는 남녀 불평등을 담론화하고,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미성숙한 현실을 지적한다.
폭력에 관한 붉고 긴 질문으로 시작하는 제3부에서는 상처 입은 현상을 치유하는 착란의 시편들을 다룬다. 끊임없이 확장하는 시의 원초적 공간에서 조각난 사유의 인간이 ‘나’를 찾아 서성일 수밖에 없는 현상을 가시화한 시들을 불러내어 조망한다. 압축된 형식으로 발화된 아포리즘의 시편 분석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제4부에서는 파편화된 주체의 고백을 통해 한국시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는 시인들을 조명한다. 현대인의 내면적 분열과 고립, 그리고 혼돈 속의 질서의 상실을 구현한 시를 탐색하고, 자본주의 현상 안쪽에 굳게 닫혀 있는 아포리아의 문을 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제5부에서는 영화 비평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사도」는 대화 단절의 문제를, 「무뢰한」에서는 페르소나의 자의식 문제를, 「마돈나」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를 포착하여 영화가 던지는 상처적 질문을 통해 우리의 상처를 돌아보게 한다.
고광식 평론가는 ‘책머리에-질문들’에서 “문학은 세계에 던지는 질문이며 그것에 스스로 답하는 것”이라며 “시로 감성적 질문을 던지고, 평론으로 이성적 질문을 던진다.”고 피력한다. 『착란』에 실린 평론들은 이렇게 스스로 던진 예리한 질문에 독창적인 시각으로 답을 찾아낸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로 우리에게 문학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과 예술적 영감을 건네준다.
<책 속 구절 맛보기>
자크 랑시에르는 자신의 저서 [감성의 분할]에서 “기계 예술들은 ‘기계’ 예술들로서 결국 예술 패러다임의 변화, 그리고 예술과 그 주제들의 새로운 관계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한다. 랑시에르가 대화형 인공지능인 ChatGPT를 예견한 듯한 발언이다. ChatGPT가 출시되고 우리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예술가 세계에선 ‘AI가 예술가를 대체할 것이다’라는 우려가 크다. ChatGPT가 시를 쓴다. 요구하는 대로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시를 쓴다. 어떤 주제의 시이든 물어보면 한 편의 시를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이제 문학작품집의 판매가 급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주제와 키워드를 입력값으로 ChatGPT가 생성한 작품을 감상하면 되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창작자인 동시에 독자인 이들은 위축된 예술계를 더욱더 벼랑 끝으로 몰아갈 수 있다.(61~62쪽)
-----
오래된 젠더적 악몽을 극복하고자 천성적인 상태로의 회복을 노래하는 두 명의 시인이 있다. 거침없이 쏟아 내는 페미의 시적 전개에서 이소호와 권박은 특유의 풍경을 만든다. 새로운 기록을 하는 과정에서 이소호([캣콜링], 2018)의 시는 억압된 조형적 섹슈얼리티의 표정을 짓는다. 반면에 권박([이해할 차례이다], 2019)의 시는 ‘젠더’로 길든 육체에 대한 강박을 재현한다. 두 시인은 가장 최적화되어 있는 시로 성의 구분이 잘못된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밝히는 데 열중이다. 이소호는 2020년 이후 더욱더 첨예해지는 페미 논쟁을 예견하는 듯 억압된 섹슈얼리티의 표정들을 발화하고, 권박은 최근의 증폭되는 생존 논리를 뒷받침하는 듯 육체에 대한 심리적 상태를 자신의 시집에 담아냈다. 시가 가지고 있는 주술적 힘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두 명의 시인은 증명한다. 이소호와 권박의 시가 발화하는 지점에서 두 줄기 강렬한 토네이도가 일기 시작한다. 젠더적 악몽에서 깨어나고자 강력한 시의 기둥이 만들어지는 중이다.(147쪽)
-----
역광의 세계는 금지된 것들로 가득하다. 흑과 백의 분명한 대비 때문에 버려져야 할 것들이 많다. 시적 화자는 어둠 속에 버려진 것들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누추로 시달린다. 희망의 초월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역광의 세계에 있을 때이다. 그렇기에 “버려진 페이지들을 주워 책을 만들” 수 있다. 버려진 것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 일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역광의 세계에 있어도 ‘나’는 ‘나’로 남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역광 안의 ‘나’는 ‘나’를 유지하며 “밤마다 책장을 펼쳐 버려진 행성으로” 갈 수 있는 존재이다. 이 순간은 원초적 의미를 찾아 삶의 이면을 탐구하는 시간이다. 시적 화자는 중심이 되지 못한 주변의 삶에 촉수를 댄다. 그곳에 삶의 무게에 눌린 슬픔이 있다. 강렬한 햇볕 때문에 짙어진 어둠은 “언덕을 함께 오르는 마음”을 갖게 한다. 안희연은 시적 화자를 통해 사물에 부여된 의미를 지운다. 그러자 “불탄 나무 아래서 깜빡 낮잠을” 자는 여유가 생긴다. 금지된 것들 사이에 감각적 주체가 된 화자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이해하게” 되는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 이렇듯 역광의 세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곳이다.(267쪽)
-----
하린 시인은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 외로운 은폐를 시도한다. 구체적인 세상의 압박 앞에 주체가 전체로 환원당하지 않으려면 존재론적 방어기재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호색을 필요로 한다. 세계는 파편화된 존재의 조각들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세계화는 전체로 환원하고자 하는 폭력성을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헤게모니를 가진 자들은 현실을 힘겹게 견디는 ‘나’에게까지 다가와 설득한다. 거대한 명분은 저인망식 그물로 세상의 ‘나’를 훑는다. ‘나’는 전체주의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 그들로부터 달아나야 한다. 세상의 제도 안에서 내던져진 ‘내’가 세상과 맞서려면 ‘나’는 기꺼이 파편화되어야 한다. (306쪽)
-----
가면의 자의식에 있어서 오승욱의 「무뢰한」은 투사된 파토스(pathos)로 자아를 드러내기도 하고,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고 타자와 동일시하는 아비투스(habitus) 속으로 잠입하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특수한 환경으로 주체를 밀어 넣을 때, 우리는 운명처럼 주어진 구조와 자신을 연결해 특별한 성향을 만들어 낸다. 오승욱의 영화 속 주체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적 위상에 맞는 기질로 형사 정재곤과 마담 김혜경처럼 가면을 쓰고 감정을 촉발하여 진짜 자아를 은폐시킨다. 그들은 가슴속에서 뭉게구름처럼 생성되는 연민을 억누른다. 그리고 가면은 자아를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다는 환각에 빠져 주체를 사회적 요구에 충실히 따르게 한다. 형사 정재곤이 범인을 잡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칼 융이 언급한 ‘가면을 쓴 인격’인 페르소나는 영화 「무뢰한」에 성실하게 녹아든다. (342~343쪽)
출처 : 미디어 시in(http://www.msi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