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잡)

- 미디어 시in 기사

by 김네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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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추억과 부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연애의 기록물

-―양해기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내 가슴에 남은 별자리』(청어, 202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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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네잎 기자


200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양해기 시인이 두 번째 산문집 『내 가슴에 남은 별자리』를 청어산문선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내 가슴에 남은 별자리』는 몹시 가난한 곳, 또 다른 ‘행성’인 서울 변두리에 불시착한 양 씨 집안 셋째 아들의 맏손자인 시인에게 깊이 각인된, 장소와 시간에 대한 각별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도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을 수 있음을 메시지로 담고 있는데,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풍부하게 불러일으킨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삼양동’에선 약장수, 삼양동 채석장, 찹쌀떡 장수, 엿장수, 칼갈이 장수 등의 모티브가 나오는데,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2부 ‘흙에 그려진 그림’에선 여동생 친구 경애에게 도둑맞은 첫 키스의 연애담이 주축을 이루는데, 애련한 감정보다는 유쾌한 추억을 함께 공유하게 만든다. 3부 ‘넝마주의’에선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는 시인의 자기반성과 존재론적 물음이 깔려있는데, 가치관의 깊이와 넓이를 엿볼 수 있다. 4부 ‘숭인시장’에선 삶의 국면을 마주한 시인이 그때마다 느낀 생각과 행동이 담겨 있는데, 겸손하고 인간적인 시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책장을 열면 따뜻한 문체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문체와 함께 시인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서울의 옛 풍경이 어느새 풍정으로 다가온다. 독자들은 그곳에서 오래전의 ‘나’를 마주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어 흐뭇한 표정을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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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속 산문 맛보기>


할아버지의 펴지지 않던 오른손에는 여러 번 접힌 이만 원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아무도 몰래 내게 돈을 주고 있던 걸 모르던 친척들은

“이게 웬 돈이야?”

“장례비용에 보태면 되겠네.”

“노인네가 늙어서도 돈이 그렇게 좋은지 돌아가실 때까지도 돈을 손에 꼭 쥐고 돌아가셨네.”

저마다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인지라 일가친척들은 놀라면서도 뭔 일인가 싶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멍하니 서서 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차오르는 먹먹함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내 대학 등록금을 걱정한 것이다.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 돈은 나를 주려던 돈이니 내가 가져가겠다고 말을 할 수도 없으니,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받을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의 펴지지 않던 손」 부분, 『내 가슴에 남은 별자리』, 청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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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자랑할 업적이 즐비했던 교수는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계속해서 재촉했고, 학생들이 서로 눈치만 살피면서 아무 질문도 안 해서 너무 어색해진 시간이 흐르고 있어서 질문을 할까 말까 정말 많이 고민하다가 나로서는 정말 궁금했던 질문.

“저기 한라산 백록담에는 물고기가 사나요?”

―「백록담에 사는 물고기」 부분, 『내 가슴에 남은 별자리』, 청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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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되자 근처 계곡에 물이 많아서 그런지 자욱했던 안개는 한 겹 더 짙어졌다. 둘이 뜬눈으로 밤을 새운 새벽 네 시쯤이 되니 모닥불도 꺼지고 약간의 한기도 느껴져 수연과 나는 숙소로 올라왔다. 땅이 풀에 묻은 새벽안개로 미끄러워져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있었다.

―「내 가슴에 남은 별자리3」 부분, 『내 가슴에 남은 별자리』, 청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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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나는 얌전히 바다 표면으로만 탐조등을 비추기 시작했다.

인근 포구의 어부들이 찾아와 바다에 설치해 둔 자신들의 어망 쪽에 불빛을 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밤에도 자지 않는 물고기들이 불빛을 따라 움직이니, 어망 쪽에 불빛이 닿아 있으면 고기들이 그쪽으로 모여들어 생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우주를 향해 보내던 신호를 잠시 중단하고 밤마다 도화지에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변신했다. 아니 물고기 조련사가 된 것이다.


먼바다에서 빛으로 물고기 떼를 이끌고 정치 어망 쪽으로 슬슬 몰아넣었다. 물고기 떼들을 빙글빙글 돌리며 한번 물은 빛의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천천히 부드럽게 선회시키며 바다의 그물 속으로 고기들을 모조리 몰아넣었다.


다음날 중대본부에서 전화가 왔다.

“탐조병 아주 잘 바꿨다.”고

“그때 그 새끼 잘 짤랐다.”고

“이번 탐조병은 탐조등 돌리는 게 예술이라.”고

새벽에는 포구의 배 선장들이 고맙다며 잡은 물고기를 한 바께스씩 담아 우리 초소로 들고 왔다.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한다며, 바께스 안에서 퍼덕이며 몸을 뒤집어대는 고기들은 어젯밤 내가 빛으로 낚은 놈들이었다.

그렇게 내 탐조등은 포세이돈처럼 바다를 지배하고 길들여가다가도 캄캄한 망망대해 바다에 비가 오거나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까닭 없이 서러운 날이 되면, 감수성이 예민한 내 탐조등은 또다시 미쳐 허공으로 춤을 추곤 했다.

그런 날이면 중대본부에서 또 연락이 왔다.

“탐조등 휴가 갔냐?”

“그래서 저번에 그 새끼 또 근무 세웠냐?”

―「해안 경비병」 부분, 『내 가슴에 남은 별자리』, 청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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