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잡)

- 미디어 시in 기사

by 김네잎

http://www.msi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3


이별이라는 사건이 만들어낸 감정의 먼 지평을 탐색하는 시

―하두자의 다섯 번째 시집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 시인수첩 시인선으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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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네잎 기자


1998년 《심상》으로 등단한 하두자 시인이 『물수제비 뜨는 호수』 『물의 집에 들다』 『불안에게 들키다』 『프릴 원피스와 생쥐』에 이어 다섯 번째 시집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를 시인수첩 시인선으로 출간했다.


하두자 시인의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는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심연을 섬세한 언어로 그려낸다. 내 곁에 없는 당신을 기다리는 일을 천형으로 받아들인 시인은 고열과 갈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 특히 “국가 폭력의 그림자, 질병의 고통, 죽음의 예감 그리고 삶 속에서 반복되는 소멸의 장면들이 겹겹이 얽혀”(출판사 서평) 발생하는 통증을 견디며 성장하는 존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하두자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 발간을 기념하여 <미디어 시in>에서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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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녕하세요?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새 시집을 내신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 시집으로 묶고 보니, 맘에 차지 않는 시들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를 “시시하다!”로 부른답니다. 그렇지만 숙제를 하나 끝냈다는 홀가분한 기분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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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을 받아 들고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는데 먼 곳은 어디일까 생각했어요. 시 속에는 월남, 제3부두, 평강, 다락방, 안개극장, 엽서의 방, 오지리, 하와이, 바이칼 호수, 남향동 바다, 경주, 미황, 니스 등 다양한 물리적 장소가 등장해요. 만약 시인님께서 당장 떠날 수 있다면 어디에 있고 싶은가요? (시인님의 심연에 있는 심리적 먼 곳은 시를 읽으며 독자들이 탐색하도록 두겠습니다.)

답변: 혼자 혹은 함께 하는 여행을 다 즐기는 편입니다. 일상적인 것과 시적인 것이 함께 엉켜서 망설이고 기다리는 곳! 가슴이 뛰고 세상의 부름에 반응하고 뜨거운 숨결을 느끼고 하는 곳이면 언제 어디라도 좋습니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장소를 얘기하는 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군요. 떠난다는 것이 일상을 잠재우고 새날을 얻기 위한 힘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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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 뒤에 실린 산문 「가혹의 즐거움」을 통해 보리 숭어를 먹자는 약속에 즐거워하는 인간 하두자와 형광등 불빛에 머릴 들이밀고 깨도 깨도 깨지지 않는 말의 껍질을 망치질하는 시인 하두자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궁금합니다. 인간 하두자의 일상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시(詩)로 발화되나요?

답변: 나는 일상의 생활을 충실히 하는 편입니다. 나에게 주워진 책임을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내려고 하다가 슬픔도 아픔도 마주치는 그 순간이 멍울지기도, 체하기도 해서 어쩌면 그 상처가 나를 데리고 가는 일, 피 흘린 대가가 글로써 詩로써 발화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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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에서 시인님이 독자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 세 편만 꼽아 주신다면? 이유도 살짝 말씀해 주세요.

답변: 「폭설에 대한 감상」 「물의 노래」 「엎드리다」 겨우 세 편을 골랐는데요. 죽음을 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것 같은데 제 시에 나도 모르는 죽음들이 깔려 있더라구요. 「폭설에 대한 감상」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시공간으로 죽음은 폭설처럼 예기치 않게 들이닥치지만, 시인은 유리 파편을 치우듯 그 잔해 속에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부러진 것은 소나무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자각을 하죠. 그러면서 남겨진 이의 애도와 슬픔을 절제된 언어로 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물의 노래」는 삶은 결국 이별을 품고 먼 곳으로 떠나는 여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엎드리다」는 요양원의 쓸쓸한 풍경 속에서 죽음이 자리를 조용하게 옮긴다는 청운 요양원은 푸른 희망이 아닌 암묵적인 블랙홀로 변모합니다. 남겨진 이는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노인들의 꿈을 바라보며 생각해요. 죽음은 소란스럽지 않고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조용하게 스며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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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말의 껍질을 깨고 “말의 알맹이로, 그 말의 모국어로 첫 시를 쓸 것”(산문)이라 하셨는데 다음 시집이 기대됩니다. 앞으로의 창작 계획과 시집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앞으로의 시집 계획은 아직은 없습니다. 다만 바람처럼 떠돌다가 남겨진 말이 있다면 더 편안하게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나는 시인이라는 말에 어색하고 무겁고 쑥스러운데요. 요즘은 정말 詩를 읽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많은 시집과 문예지에 넘쳐나는 詩들이지만 그래도 어느 한 문장, 한 구절이 나를 감동시키고 순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 그 힘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순정한 삶을 꿈꾸는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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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폭설에 대한 감상

하두자

폭설이었다

앞집 소나무가 부러져 베란다를 치고

내게로 쳐들어왔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던 아버지 같았다

아버지의 어깨도 소나무처럼

우리 여섯 형제가 무거웠을까

앰뷸런스에 누운

아버지의 손이 호흡처럼 거칠었다

암 병동 일인용 병실

침대 밑 잘 닦은 아버지의 구두에서

분필 가루 냄새가 났다

초록 칠판과 교무 일지가

이름과 직책을 버리고 병실에 누워 있다

유리 파편을 치우며

유리처럼 쏟아진 아버지의 마음을 읽는다

병실의 오후

또 폭설이다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정원을 바라보면

어디선가 투명한 링거처럼

눈 녹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깨진 유리창 너머

소나무 속의 빈 교실을 들여다본다

아버지의 저녁기도도 저리 캄캄했을까

깨지고 긁힌 말들로 가득했던

알콜 냄새 나던 아버지의 병상 일기

미처 태우지 못했다

사람들이 소나무 행방을 물을 때

사진 속의 아버지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부러진 것은 나였다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 시인수첩,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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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노래


하두자


약속할 수 없어

쌀뜨물같이 고여 있는

나에게서 가장 멀리 띄우는 엽서의 방


한 사람을 찾아 헤매다

슬픔으로 무너져 내린 적도 있었지요


먼 데 있는 한 사람의 안부를 물어요

우체국 문을 나서며


기차역, 푸른 차밭, 단팥죽, 돌담 아래 백합, 물의 도서관

그리고 자클린의 눈물


엽서 한 장에다 다 쓸 수 있는 안녕이란 인사가

내게 넘쳐서


내게 몸의 노래를 들려주던 사람

물결의 파문으로 흩어져 버린 사람


창문이 열리고 닫히는 반복하는

슬픔의 노래는

물의 노래는 누가 연주하는지


내게 너무 멀어

소나기만 한차례 내리는 오후


귀를 닫아도 사방으로 들리는

물결치는 선율에 그리움 얹고 싶었던 걸까요

자클린의 눈물을


짐승처럼 듣습니다

소나기는 그치는데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 시인수첩,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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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다


하두자


나는 낮게 드리운 구름 아래에서 더 낮게 엎드려 있다


봄 하나가 북한산 자락을 헤집고 다녀도 당신의 몸속

봄은 턱없이 야위었고 맹목이 위험하다는 걸 아직 모른다


앰뷸런스가 다녀가느라 조용함이 깨진 청운 요양원


청운은 푸른 희망이었다가

별바라기 별이나 안개처럼 흩어지는 구름이었다가

서로에게 암묵적인 블랙홀이 되었다


누군가 실려 나가며

알 듯 모를 듯한 죽음 하나를 마당에 부려 놓았다


조용함이 싫었는지 가까운 데서

개가 허공을 향해 몇 번 짓다가 제 귀를 닫을 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하루가 무심하게 양달과 응달의 골라 앉는다


오늘의 당신은 순한 몸으로 햇살을 담뿍이다가

꽃이 피는 소릴 들으며 잠들었지만

백발의 꿈이 침대 끝에서 부스럭거린다


주름진 당신의 손은 의심도 없이 청운스럽게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나는 그 꿈의 행방을 찾다가 엎드린다


앰뷸런스가 다시 들어왔다 나간다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 시인수첩,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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