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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Nov 27. 2023

雜(잡)

-  김네잎 시인 심리 탐구 에세이 『상처받은 ‘나’들에게』 출간


* [시와 콜콜한 증후군]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충남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미디어 시in 입력 2023.10.31 22:00

― 상처받은 ‘나’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특별한 책 




















하종기 기자


2016년 영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 시집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를 출간한 김네잎 시인이 에세이 『상처받은 ‘나’들에게』를 펴냈다. 인간의 뇌 작용과 심리에 관심이 많아 주로 심리서나 뇌신경과 관련된 책을 좋아한다는 시인이, 어느 날 각종 증후군 Syndrome의 징후들이 쓰고 있는 시의 화자에게 발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겪는 50가지 증후군과 시와 사진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다.


책을 열면 고슴도치 딜레마 증후군 Hedgehog's Dilemma Syndrome’, ‘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 Walking Corpse Syndrome’, ‘자동 양조 증후군 Auto-Brewery Syndrome’, ‘잠자는 숲속의 공주 증후군 Sleeping Beauty Syndrome’, ‘삶은 개구리 증후군 Boiled Frog Syndrome’ 등 흥미로운 ‘증후군’과 만날 것이다. ‘증후군 Syndrome’이란, 몇 가지 증후가 함께 나타나지만 그 원인이 불명이거나, 또는 단일이 아닌 것에 대하여 병명에 준하여 붙이는 명칭이라서, 심리적, 신경∙정신 병리학적 그리고 현대의 문화∙사회적 현상 등 다양한 요인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시 속 화자의 상황은 매우 흥미롭게 증후군의 상황을 대변한다. 그런 비유적 맞물림을 통해 증후군을 조금 더 쉽게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


에세이 본문은 총 6개의 장으로 전개된다. 제1장 ‘고독이라는 괴물’은 사람이 고독과 고립에 함몰되어 나타나는 증후군으로 엮었다. 제2장 ‘결핍이라는 광장’은 사랑과 관심의 결핍이 크면 클수록 내면에 생채기를 심하게 남긴다. 그 후유증으로 발현된 증후군으로 구성했다. 제3장은 ‘슬픔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제4장 ‘불안이라는 날개’는 불안의 날갯짓이 생성한 아주 미세한 바람이 ‘나’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다룬다. 제5장은 ‘몽환의 환승역’이다. 사람들은 뇌의 작용에 매우 놀란다. 이 장에서는 그런 뇌의 작용 때문에 나타난 증후군을 다룬다. 제6장 ‘불시착한 행성’은 내면보다는 육체적으로 발현한 증후군을 모았다.


시인은 이 책이 의학서나 학술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정신적 혹은 심리적 아픔에서 지난한 치유의 과정을 거치고도 재생에 성공하지 못한 ‘나’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증후군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나’들. 그들에게 건네는 시인의 작은 위로가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책 속 문장 맛보기>


당신의 심장은 안녕한가요?


연인이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 두 사람의 심장박동이 같은 박자로 뛰게 된다고 한다. 심장박동의 리듬까지 공유하던 관계였으니… 이별 후에 찾아오는 상실감과 슬픔, 마음의 고통은 신체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 심장근육이 병적으로 변이하여 질병으로 나타나는데 이른바 ‘상심 증후군Broken Heart Syndrome’. ‘상심 증후군’을 앓는 환자는 좌심실 끝이 일시적으로 부푸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 증후군에 의한 극심한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 등의 증상은 심근경색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심장 쇼크, 불규칙적인 빈맥, 더 나아가 심장의 아래쪽 방인 심실의 근육섬유가 불규칙적이고 조화되지 않게 수축한다.


나와 당신은 다른 주파수를 가졌다 지지직 서성인 것은 이명이 아니라 악몽이다


귓바퀴를 따라 걷던 당신이 부르던 내 이름들이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음계를 벗어난 음정과 엇갈린 박자들이 쓸려와 앓는 곳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귓속에 쌓이는 소리의 무덤을 당신은 알까


달팽이관 앞에서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


당신 집 앞을 다녀간 건 빗소리가 아니다 끝없이 범람하는 것은 내 눈물이다

- 시 「착란」부문.


연인들은 “다른 주파수를 가졌”기 때문에 이별을 했다. 헤어짐은 “악몽”이 되었고 서로를 부르던 “이름이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집 앞을 다녀간 건 빗소리가 아니다 끝없이 범람하는” “눈물”이다.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한 이 연인들은 과연 상심증후군을 잘 극복했을까? 그러길 바란다.

— 상심 증후군 Broken Heart Syndrome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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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보고 만지고 느끼는 이 모든 것이 혹시 가짜는 아닐까’ 의심해 본 적 있나요? 누군가가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묻는다면 보통은 이상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정말로 자신은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 Walking Corpse Syndrome’은 매우 희귀한 정신 질환이다. 이 증후군 환자는 자신의 중요한 장기가 사라졌다거나, 몸의 일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거나, 혹은 부패 중이거나, 심지어 죽었다고 인식한다. 1880년 프랑스의 신경학자 쥘스 코타르 Jules cotard에 의해 ‘부정 망상증 le délire de négation’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의 이름을 따와 ‘코타르 증후군 Cotard's Syndrome’이라고도 부른다.

— 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 Walking Corpse Syndrome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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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이 단추를 잠그면 오른손이 풀어버리고, 오른손이 모자를 쓰면 왼손이 모자를 빼앗는 상황을 목격한다면? 아마 당신은 ‘에이! 장난치는 걸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장난이 아니다. 한쪽 손이 한 행위를 반대쪽 손으로 그 행위를 되돌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이렇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의 조절이 불가능한 현상을 ‘외계인 손 증후군 Alien Hand Syndrome’이라 한다.


이 증후군을 앓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통제 불능 손을 ‘작은 도깨비’나 ‘악마’라 일컫고, 어떻게든 그 장난기를 통제하려고 매질까지 한다. 어떤 환자는 손을 꼼짝달싹 못하게 가구와 벽 사이에 집어넣기도 하고,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오븐용 장갑에 집어넣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실패로 돌아갈 때가 많아 늘 자기 손이 다음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는데….


내 안에 넌 누구니?

— 외계인 손 증후군 Alien Hand Syndrome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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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페이스 a poker face란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얼굴 표정을 무표정하게 가장假裝하는 것을 말한다. 포커를 할 때 카드의 좋고 나쁨을 상대편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표정을 바꾸지 않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사람은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인지하니까. 그러나 매우 드문 신경 이상 증후군인 ‘뫼비우스 증후군 Möebius Syndrome’을 앓는 환자는 일부러 가장假裝하지 않아도 감정을 얼굴에 드러낼 수 없다.


어떤 기분도 파동을 만들어낼 수 없다

감각을 증폭시키려는 시도는 매번 헛수고

모든 감정이 와해된 얼굴에

불가피하게 남은 무표정

너라면 미세하게 떨리는 살갗의 감촉만으로

슬픔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을 거다

보이지 않는 웃음을 만질 수 있을 거다

예측 불가능은 고립을 가져온다

고립 뒤에는 들키고 싶은 무수한 순간들


누가 변할 수 없는 안색을 건넨 걸까

– 시 「뫼비우스 증후군Möbius Syndrome」부문.


“어떤 기분도 파동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내 감정을 타인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나에겐 “모든 감정이 와해된 얼굴에” “불가피하게 남은 무표정”뿐인데. 하지만 사랑하는 “너라면 미세하게 떨리는 살갗의 감촉만으로” “슬픔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웃음을 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사랑은 “바깥은 삭막하”지만 “안에서 끊임없이 휘몰아치며 변주되는 빛”으로 “안은 환하다”

— 뫼비우스 증후군 Möebius Syndrome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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