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창업일지 ep.5 - 창업 아이템 선정

아이템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by 상남

아이템은 어느 날 떠오르기보다, 오래 붙잡고 있던 질문에서 시작됐다

지금의 이 아이템을 어렴풋이 생각하게 된 건 창업하기 4년 전, 2018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본업으로 약 15년 동안 공연 제작 프로듀서로 일했다. 제작 PD로 현장을 오래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가지 한계와 자주 마주하게 됐다.

하나는 공공예산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제작 환경의 구조였고, 또 하나는 유통의 지속 가능성이 늘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좋은 기획을 만들고 좋은 결과물을 내도, 그것이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거나 더 넓은 확장으로 연결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벽을 반복해서 마주할수록, 단지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작업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 역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점점 그 지점에 더 마음이 갔다.

예술이 사회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기업과도 건강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으려면 그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 언어를 번역하고, 서로 다른 목적과 결을 조율하며, 접점을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 창업 아이템에 대한 생각은 그 무렵부터 아주 조금씩 시작됐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기업의 문화복지와 사회공헌 영역을 기획할 수 있는 포지션에서 몇 년간 일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영역을 경험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이전부터 품고 있던 질문들이 예상보다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 2년쯤 그 일을 하면서 알게 됐다. 내가 계속 고민해 왔던 것은 결국 예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예술의 확장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파트너십의 구조였다는 것을.

예술은 예술 안에만 머물러 있을 때보다 사회와 접속하고, 기업과 연결되고, 사람들의 일상 안으로 스며들 때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단순한 협업 이상의 기획이 필요했다. 서로 다른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고, 목적을 조율하고, 함께 설계해 가는 사람. 그 역할이 내게는 꽤 중요하게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를 더 오래 고민했던 것 같다. 공연을 만들어온 시간이 길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개별 결과물보다도 그 결과물이 어떤 구조 안에서 지속될 수 있는지, 누구와 연결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갔다.

기업의 문화복지와 사회공헌 영역 안에서 예술과 사회문제를 함께 바라보며 기획을 더해가던 시간은, 내게 그런 역할 정립의 동력을 불어넣어 준 시기이기도 했다. 막연했던 생각이 조금씩 구체적인 방향을 갖기 시작했고, 그 흐름이 결국 지금의 사업모델로 이어졌다.

그래서 지금의 아이템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번뜩이는 생각이라기보다, 오래 현장에서 부딪히며 쌓인 질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에 가깝다.

공연 제작 현장에서 느꼈던 구조적 한계, 기업의 문화복지와 사회공헌 영역에서 발견한 가능성, 그리고 예술과 사회, 기업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의 필요성. 그 조각들이 처음부터 선명했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창업 아이템은 대단한 통찰이나 특별한 재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는 오히려 오래 일하면서 반복해서 마주친 문제,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의문, 자꾸만 마음에 남던 장면들이 쌓인 끝에 지금의 아이템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창업 아이템이란 결국,
내가 가장 오래 지나치지 못했던 질문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20대와 30대의 창업이 속도와 가능성의 언어로 시작된다면, 40대의 창업은 조금 다른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결국 더 오래 남는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어떤 문제를 오래 외면하지 못했는가.
어떤 장면 앞에서 계속 마음이 걸렸는가.
앞으로의 시간을 써도 아깝지 않을 만큼, 오래 붙들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40대의 창업은 적어도 내게는,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 이미 오래 내 안에 쌓여 있던 질문의 방향을 인정하는 일에 가까웠다. 조금 늦게 보였을 뿐, 어쩌면 그 질문은 훨씬 전부터 나를 이쪽으로 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18년에 막연하게 시작된 고민은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앞으로의 사업 역시 완전히 새로운 답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그 질문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더 설득력 있게 구현해 가는 과정이 될 것 같다.

창업 아이템을 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엇을 팔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오래 믿고 싶은 문제를 선택하는 일에 더 가깝다.

그래서 누군가 40대에 창업을 고민하며 아이템은 어떻게 정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정답 같은 말 대신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낼 것 같다.

당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래 놓이지 않는 질문이 무엇인지부터 돌아보라고.

사업은 생각보다 길고, 마음은 생각보다 자주 흔들린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하는 건 화려한 아이디어보다, 결국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오래된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이템을 정한다는 건 멋진 답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질문 하나를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성공담도 실패담도 아닌 40대 창업가의 진행담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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