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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Dec 20. 2023

재미와 실망감이 뒤섞인 피날레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리뷰 

앰버 허드 출연 논란, 테스트 시사회 혹평 등 안 좋은 루머와 논란으로 흔들렸던 <아쿠아맨 2>가 드디어 개봉했다. 상기한 잡음 외에도 개봉일이 2022년 12월에서 올해로 1년 가까이 밀리는 등, 공개되기까지 어려움을 겪은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DC와 워너 브라더스의 경영진과 리더쉽 교체, <블랙 아담>부터 <플래시> 등 영화들의 실패, 제임스 건의 리부트 결정 등 우여곡절 끝에 의도치 않게 DCEU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해온 작품인데, <아쿠아맨> 1편을 재미있게 봤을 뿐 아니라, 제임스 완을 감독으로서 좋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극과 판타지가 취향에 잘 맞을 뿐 아니라, 제이슨 모모아를 아쿠아맨으로 캐스팅 한 것은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모아가 아닌 아쿠아맨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작품 자체는 과연 어떠한가? 스포일러와 함께 이야기해 보자. 


일단 공포 영화에서 시작해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연출해온 제임스 완의 향기를 아예 느낄 수 없는 영화는 아니다. 밋밋한 색감의 다른 히어로물들과 비교해서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눈에 들어오고, 영화 중간중간에 참신하거나 역동적인 카메라워크를 느낄 수도 있다. 장르 영화에 잔뼈와 조애가 깊은 완 감독인 만큼 캐릭터와 소품, 공간 디자인부터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들까지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들을 섞은 모습이 보인다. 


블랙 만타의 전함 내부와 병사들의 복장은 고전 SF를, ‘로스트 킹덤’의 모습에서는 다크 판타지나 호러물의 색채를, 그 외에 바닷속 생명체들의 모습은 기존 미디어에 등장한 수많은 외계인이나 판타지 생물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완 감독의 색채가 아예 없는 작품은 아니기에, 실제 전체적인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이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빙하와 눈, 얼음으로 빚어낸 후반부 결전의 미학과 영상미는 12월 겨울의 분위기에 딱 알맞은 블록버스터를 선보이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말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나쁜 의미로는 <토르: 러브 앤 썬더>를 조금 연상시키기도 했다. <아쿠아맨 2>의 전반부는 전개 속도가 느릿한 것도 아니고 적당히 볼만하다고도 할 수 있는 퀄리티지만, 분위기가 아주 가벼울 뿐 아니라 유머가 굉장히 많고 긴장감이 없어 그다지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위기감이 높지도 않고, 머릿속에 남는 인상, 임팩트나 감정적 동요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아예 재미없는 것은 아니라 굉장히 애매한 수준이다. 앞서 말했듯이 역동적인 카메라워크가 동반된 좋은 액션씬과 화려한 아틀란티스의 배경은 볼만하지만, 그 역시 1편에 비해서는 부족한 수준이다. 특히 CG의 경우 그린스크린이 굉장히 두드러지는 숏이 몇몇 보이는데, <플래시>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대급 영상미를 보여준 1편과 비교하면 시각적 임팩트가 너무 적다.


허나 중반부 그리고 후반부부터는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다. 이야기상 중요한 사건 하나가 발생하면서 위기감도 올라가고, 유머도 싹 빠진다. 이때부터 화려한 비주얼과 액션씬이 휘몰아치면서 이제야 제대로 된 <아쿠아맨> 속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로스트 킹덤’의 시각적인 디자인 역시 마음에 들었으며, 전반부보다는 확실히 몰입도 더 잘 된 상태에서 재미있게 본 것 같다. 


앰버 허드는 ‘예상보다는’ 비중이 꽤 많아서, 초반부 그리고 후반 결전 때 등장한다. 논란이 많은 사람인 것은 알고 있지만 비주얼이나 존재감은 역시 대단했다. 빨간 머리와 초록색 옷의 조합은 인어공주의 에리얼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특히 2023년판 실사회의 에리얼이 이런 모습이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게 된다. 본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아쿠아맨과 옴의 형재애도 유머가 빠지고서야 진정성을 갖춘다. 네레우스나 브라인 킹 등 1편에서 조연이었던 캐릭터들의 복귀도 눈여겨볼 수 있다. 


본작의 플롯이나 메세지를 두고 설교적이라는 평을 인스타그램에서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개봉 전부터 제이슨 모모아가 본작의 스토리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어느정도 지구온난화 메타포나 플롯이 들어갈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어떻게 등장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블랙 만타가 사용하는 로스트 킹덤의 무기와 에너지 연료가 기후를 변화시키고 왕국과 국왕을 타락시켰다는 플롯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나쁘지 않은 메타포라고 생각한다. 


이런 메세지는 여기서 엔딩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마침내 육지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아틀란티스와 아쿠아맨이 지구의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육지와 바다의 화합, 서로의 다름이나 문화 등등에 관한 연설이었는데, 1편 엔딩에서의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인상깊었던 장면이다. 1편 엔딩에서의 그 유치하지만 진정성 있기에 감동적이었던 그 느낌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육지와 바다의 대립은 본작 뿐 아니라 전편에서도 중요한 소재였기에. 


그러나 연설 끝에 가서는.. 배경음을 끊고 농담을 통해 영화를 마무리하다. 이 선택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1편에서처럼 '나는 아쿠아맨이다'라는 아서의 독백으로 끝맺은 것처럼, 유치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만화스럽고 개성 있는, 그럼으로서 기억에 남고 뭉클한 느낌을 줄 수 있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유머를 지나치게 사용하던 전반부의 분위기가 잠깐 동안 돌아와 버린 것 같았다. 


왼쪽 인물이 패트릭 윌렘스. 유튜브에 Gonzo Blockbuster 검색하면 그의 영상을 볼 수 있다. (강추하는 영상)

이런 엔딩씬을 보고 나서, 본작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다. 단지 엔딩 뿐 아니라 영화 전체적으로 해당하는 것이다. 바로 '유치한 진정성'이 없어졌다는 것. 아쿠아맨 관련해서 유튜버 패트릭 윌렘스(Patrick Willems, 영화 유튜버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는 사람이다) 가 한 말이 있다. 그는 다른 블록버스터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하고 거대한 스케일과 상상력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들을 '곤조 블록버스터'라 분류하고, 그 카테고리에 아쿠아맨 1편을 포함시켰다. 


마블 같은 블록버스터들은 조금 독특하거나 괴상한 아이디어/장면들이 나오면 농담이나 유머를 넣어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곤조 블록버스터'들은 유치해지는 경향이 있더라도 그런 괴상하고 독특한 창의성에 100% 몰입을 하기 때문에, 보고 나면 기억에도 오래가고 임팩트가 있다는 것이다. 


<아쿠아맨> 1편은 아틀란티스 뿐 아니라 제벨, 피셔맨, 트렌치, 브라인 등 수많은 바다 왕국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뛰어난 스케일과 상상력으로 표현된다. 1편에서 메라와 아서가 아틀란티스에 처음 도착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웅장한 음악이 깔리고, 아서는 아틀란티스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영화가 표현해낸 세계와 그 상상력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물론 아쿠아맨 1편도 부족한 점이 있고 유머가 많지만, 이렇게 진정성 있는 장면들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반면 <로스트 킹덤>은 그런 면에서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로스트 킹덤이나 '데블스 딥' 등 신비로운 세계가 많이 등장하지만 1편에서 아틀란티스를 처음 방문하던 것과 같은 순간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워낙 가벼운 분위기 때문에 만화같은,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진정성이나 경이로움, 무게감이 씻겨 나간 것 같다.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는데, 전반부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임팩트나 긴장감의 부재, 설렁설렁함이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영화관을 떠나면서는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은 작품이다. 계속 생각할수록 휘발성의 재미가 다 날아가고, 텅 빈 느낌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가도 영화 장면들을 곱씹어 보며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이 사이클이 반복된다. 역시 전반부의 밋밋하고 설렁설렁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제임스 완의 연출력, 상상력이 돋보이는 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워너의 압박이 있었던 건지, 제임스 완이 이번에는 흥미나 열정을 잃었던 것인지 그것도 1편보다 부족하다. 쏟아져 나오는 히어로물,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조금은 상위권에 속하지만, 비슷한 문제점들로부터 완전히 차별화하지는 못했다. 물론 퀀텀매니아, 플래시 같은 것보다는 나았지만, 결국 올해 히어로물 승자는 스파이더버스랑 가디언즈 뿐. 


북미 박스오피스 오프닝 예상치가 <블루 비틀>이나 <더 마블스>보다 낮게 나오면서 2023년 슈퍼히어로 영화 중 또 다른 실패작이 탄생할 것이란 예상이 강하다. 2018년에 나온 1편이 모든 DC 영화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이란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DCU로 리부트를 앞두고 있는 DCEU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기도 하는 영화인데, 안 그래도 우여곡절과 실패를 수없이 겪은 DCEU인데 마지막 작품마저 망해 버린다면 DC 코믹스 미디어나 영화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게 될 듯하다. 


그렇게 될 것으로 점점 드러나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북미에서 개봉 당일까지 엠바고를 안 풀고, 레드 카펫 행사까지 진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개봉 후 평도 안 좋을 것 같다. 확실히 워너도 DC도 빨리 DCEU를 끝내 버리고 DCU로 넘어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아무래도 본작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도 없는 것 같고....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렇게 애매하게만 재미있어 버리면 완전히 호평/응원할 수도 없고, 막 깔 수도 없는 위치라 애매하다. 예고편은 정말 잘 만들었는데 본작은 기대에 못 미치게 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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