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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점 책방지기 May 12. 2021

오늘은 일요일

휴무일이라 쓰고 근무일이라 읽는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화창한 5월. 차로 45분 거리 집에서 달려오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왜 이리 청명한지. 차를 돌려 그대로 금강변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느라 한참을 고민했다.


"인터체인지 지났잖아. 왜 톨비를 더 내려고 그래? 딴생각했어?"


정말 모처럼 운전대를 잡은 나에게 옆지기의 핀잔이 들려온다. 


"날 좋잖아. 톨비 덜 내고 시내 주행하면 지하도로 가야 하니까."


"톨비 600원이면 책을 몇 권 더 팔아야 하는데!"


아뿔싸. 그렇다. 톨비 600원을 책을 팔아 벌려면 5200원짜리 수능특강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최소한 3권은 팔아야 남는 장사가 된다. 출퇴근하는 기름값도 못 건지는 일요일은 보통 집에서 뒹굴거리는 게 나은데 오늘은 그래도 출근길에 올랐으니 본전 치기라도 하길 바라는 걸까. 


"톨비 600원이 맑은 하늘 더 보는 거보다 비싸진 않은걸?"


옆지기에게 애교 있게 한마디를 더 던져보았다.


"어이 아들들. 들었지? 이렇게 남자랑 여자랑 생각이 다르단다. 미리 배워놔라. 아빠처럼 핀잔먹지 말고"


웬일로 더 이상 투덜거리지 않고 뒷자리에 앉아 핸드폰 삼매경인 아들들에게 알려준다.


남자 여자가 다르다기보다 출근길 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 보낼 여유를 생각하는 단순한 책방지기인 나와 옆지기가 다른 게 아닐까 싶다. 출근을 하면 최소한 본전이라도 뽑는 게 당연하다는. 노동을 했으니 대가가 따르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아직 옆지기에게는 다분한 모양이다.


어버이날 짙은 미세먼지 탓이었는지 길거리에 사람도 없이 한산하던 날이었다. 옆 가게 호프집 사장님이 오늘도 출근하셨네요. 파이팅이라는 문구와 전해준 음료 두 개, 과자 한 봉지.


하나 건너 하나씩 문 닫아 가는 주변 상점들 속에서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끼리의 위안이다.


코로나 19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지 만 일 년 하고도 자그마치 5개월. 그 기간을 같이 보낸 살아남은 상점끼리의 우정이라면 우정이 생겨났다. 서로 문 연 것만 보아도 왜인지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말이다. 


토요일이던 어제의 매출이 그다지이다 보니, 오늘은 욕심이 날 수도 있겠지. 그렇다한들 휴무일로 떡하니 정해놓고 불규칙하게 열곤 하는 일요일 매출이 높을 리는 없음을 우리 둘 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오늘의 출근은 영업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던 산골 단칸방의 이사 마무리가 필요해서였다. 잠시가 1년을 꼬박 채울 줄은 그 집을 계약할 당시에는 정말 알지 못했었다. 하긴. 내가 서점을 자그마치 6년 동안이나 운영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서점이 주 생업이 될 줄 6년 전의 나도 몰랐었으니까 말이다.


산골 살이 첫 경험을 하게 해 준 단칸방 하나에 좁은 주방, 그리고 넓은 욕실. 큰 마당과 텃밭. 그 안에서 우리는 사춘기 아들들과 참 많은 시간 공유를 이루어냈다. 4 식구가 그리도 좁은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잘 수 있다는 걸 우리 아들들은 처음 알았을 것이다. 


농막 붐이 일어서일까. 아니면 본가로 주 거주지를 옮긴 우리가 방치하는 집 꼴이 도저히 마음에 차지 않아서였을까. 겨울부터 보일러며 말썽을 부리던 그 집에서 나가주기를. 집주인이 요청해왔다. 지금의 서점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 바로 이 집이다. 핸드폰 삼매경으로 온갖 속을 다 썪이던 사춘기 아들 둘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아빠와 함께 산골살이로 보내버릴 셋집을 찾던 나의 눈에 당첨!!! 된 곳. 말이다. 


지난 1년 간의 추억을 뒤로 한채 우리는 욱여넣었던 짐들을 정리하고, 마당에 만들어놓았던 닭장 겸 창고도 철거하고 이사를 진행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우리 손으로 하는 이사. 손목이며 허리며, 건강이며. 뭐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는 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사실. 게다가 앉아 있을 곳도 마땅치 않은 그곳에 굳이 나까지 따라가서 짐 실을 곳을 줄일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 덕에 손님도 없는 날 좋은 일요일. 책장으로 가로막힌 계산대이자, 내 작업실에 앉아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이 책상에 앉으면 장점은 책으로 둘러싸여 집중이 잘된다는 것, 단점은 문을 열어놔야해서 차소음에 시달리는 다는 것이다. 


손님이다. 후다닥 자판을 멈추고 마스크를 쓴다. 이넘의 코로나. 마스크 쓰고 자판을 두들기다보면 어느틈에 숨쉬는 걸 까먹고 헉헉거리기 일쑤다. 그래서 잠깐 벗고 있으면 그때를 어찌알고 들어오는 손님. 실내에서 마스크 벗고 있으면 벌금이다. 잊지말자. 스스로 다짐하다가도 무심결에 마스크를 자꾸 벗는다. 대신 앞뒤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니 괜찮겠지. 라며 셀프 위안을 보내보지만 그래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마스크쓰기이다. 


이번엔 전화다.


"일요일도 열어요?"


나름 단골이신 분의 전화. 


"잠깐 일있어서 나왔어요."


"금방 닫겠네. 그럼"


"그래도 한 3-4시간은 열거에요."


"그래요? 그럼 이따 들를 수도 있어요. 꼭 간다는건 아니고"


"네. 그리 하세요."


나도 역시 덤덤히 전화를 받고 끊는다. 


차소음이 몹시 거슬린다. 일요일이라 그럴까. 영업을 하지 않는 덤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지 자꾸만 길의 소음이 신경을 긁어댄다. 닫을까 말까. 열려진 대로변 출입구를 두고 머릿속에서 다툼아닌 다툼이 일어난다. 

결국 일요일은 휴일이라는 내 머릿속 이기심이 이겼다. 하루라도 귀가 조용하길. 


우와. 세상이 다 조용하다. 얇은 유리문 하나의 존재가 이토록 클 수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낀다. 일요일 출근이 시작된 건 4월부터 거의 매주였다. 이유는 아들넘들의 첫 중간고사. 중학교 입학 후 처음 보는 중간고사다 보니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학교앞 서점을 운영하는 옆지기 입장에서 보자면, 학부모들이 줄기차게 와서 사들이는 문제집의 홍수에  우리 아이들만 뒤처질까 싶은. 아니 우리아이들의 처참한 성적에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이기심이 절로 나올 것이다.


집에서는 절대 공부하지 않겠다는 아들들. 


하... 한숨이 나온다. 학원을 보낼 수도 없는 우리집. 학원비도 학원비지만 전직 입시 학원강사 출신 엄마아빠 둘이서 전과목 코칭이 가능한 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학원도 성에 찰리가 없다는 걸 우리 부부도 우리 아이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도대체 왜! 집에서는 공부를 안하는 건데!!!


나의 한탄은 공부를 시키고야말겠다는 아빠의 집념과 어떻게든 공부하는 시간을 줄여보겠다는 아들들의 합의점 도출로 인해 일요일 출근으로 이어졌다. 출근과 공부가 뭔 상관이겠냐고 물을 지도 모르지만, 그건 우리가족의 특수성 때문이다.


옆지기가 서점을 운영하는 건 순전히. 정말 순전히. 맹부삼천지교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들들의 이탈을 막고자하는 그 집념! 하교 후 아이들과 함께 있겠다는 그 집념이 바로 옆지기의 서점 운영 이유이다. 물론 그에 따른 수입이 쏠쏠하다보니. 흠흠. 나도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그 덕분에 덤으로 나도 본의 아니게 아이들 학습시간만큼 서점을 열고 있게 된 것이 일요일 불규칙한 영업의 시작이 될 줄이야. 자영업자라서 좋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힘들다고 해야할지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만나 뵌 모 대형서점의 점장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니 사장님이 나보다 더 높아요. 나는 여기 직원이지만 사장님은 사장님이시잖아요!"


참고로 우리 서점이 대단해서 대형서점의 점장님을 만나는게 아니다. 원서나 주 거래처에서 취급하지 않는 도서 주문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찾아야 하는 곳이 바로 대형 서점이다. 다른 지역 서점들도 종종 대형서점과 거래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대형 서점에서 우리 고객을 만나면 서로 얼마나 민망할까 싶은데, 아직은 만나본적이 없는 걸 보면 나의 소담서점은 너무나 작은 곳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도서 유통망이 전체적으로 요동치는 요즈음이다. 어쩔 수 없이 거래처 다변화가 필요하다. 그게 설마 나에게도 해당될 줄이야. 원 거래처와 의리도 지키고, 수금도 제때 해주려면 매출을 늘리는게 정답이다. 거래하는 유통망이 복잡해지면 당연히 일거리도 늘어난다. 업무량이 는다고 수입도 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말이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도 노동자에요. 노동자! 셀프고용하는 노동자요. 점장님은 월급 받으시잖아요. 전 셀프고용이라 월급도 셀프에요."


나의 우는 소리에 연세 지긋하신 점장님이 피식 웃으신다. 에고 점장님. 자영업자 절대 하지 마세요. 특히나 서점은 절대로 하시면 안되요. 나는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아무렴 대기업 점장님께서 퇴사후 서점을 하실리가. 서점이 얼마나 이윤남기기가 어려운 유통구조인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일텐데. 쓸데없는 오지랖을 속으로만 접으며 발걸음을 돌렸드랬다.


잠깐 연 서점을 때맞춰 방문하는 손님들. 


문앞에 진열된 화려한 장난감 같은 스티커북이나 사운드북에 눈이 팔린 어린아이가 제 부모의 손을 끌고 들어왔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대에 놀라 다시 나가기도 했다. 도시 전체의 직업군이 단조로운 세종의 특성상 급여일 근처나 복지지원금조로 지급되는 상품권등이 있을때 등 매출이 확연히 달라지는 시기가 있곤하다. 그때는 같은 금액도 역시나 저렴해 보이고, 5월 어린이 날이 지나고 어버이날이 다가올 수록 도서가격이 비싸게 느껴지는 듯 하다.


책방지기가 하는 일은 역시나 도서가 제 값을 다 하고 있다는 홍보가 가장 주력이 되곤 한다. 이 책은 소장해도 손해가 나지 않을 만큼의 가치를 할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역시 진열도서 선정에 고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자칫 한번 잘못 추천한 책으로 인해 흥미가 떨어지면 우리서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네서점의 1인 책방지기는 때로는 마케터로, 때로는 운영자로, 때로는 동네 아줌마로, 때로는 입시컨설팅 강사로 돌변한다. 그런 변화무쌍함이 바로 내가 책방지기로 사는 삶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주요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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