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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점 책방지기 Jun 03. 2021

애증의 대상. 문제집

코로나 19로 어수선했던 2020년. 


수많은 참고서 관련 출판사들이 많은 도서를 폐기해야했던 해이기도 하다. 거래처들도 시험철 문제집 특수를 누리지 못해 마지막에는 거의 체념의 수준으로 방문할 때마다 '여기만 그런거 아니에요.' 라고 했던 한해였다.

그나마 올해는 주변 학교들이 중간고사, 기말고사라도 치뤄가고 정상적인 학사일정을 보내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학교 수업을 들으며 투명 가림막으로 막힌 책상에서 진행되는 학사일정을 정상적이라고 애써 포장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작은 동네서점들의 주요 수입원이 문제집이라고들 한다. 예전 보았던 동네서점의 어려움 중에서 문제집을 팔고싶지만, 거래처에서 거래를 해주지 않아서 어렵다는 글을 본적이 있었다.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문제집. 그리고 수많은 수험서들. 


서점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서점이라면 당연히 문제집을 팔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나도 지금의 소담서점을 오픈하고 5개월만에 손들고 문제집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객주문분에 한해서 취급하려고 했으나 한권, 두권 주문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물류비가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매장의 책장을 일부 확장해서 문제집 매대를 만들었다.


문제집을 갖추어 놓으면 아무래도 방문하는 고객의 수가 늘어나긴 한다. 하지만 결국 구매로 이어지더라도 대형서점 수준의 할인율. 특히 당일배송 서비스를 갖춘, 전날 주문 익일 배송, 심지어 당일 배송을 하는 온라인몰과 같은 수준의 할인율, 또는 그 이상의 혜택을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눈으로 비교만 하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 문제집 주문은 넉넉잡아 3일 이후 도착한다고 사전 고지한다. 도서정가제 안에서 최대 적립율을 맞추고 있는 소담서점의 경우도, 선할인을 요구하는 고객 때문에 애먹은 적이 꽤나 많다. 특히나 문제집만을 구매할 목적으로 회원가입을 하는 경우. 이는 곧 매장의 손실로 이어지기 일쑤이다.


판매가 이루어지는데 손실이라니? 세상 어느 장사꾼이 손해나는 장사를 하느냐? 


바로 우리 매장의 문제집이 손해 또는 대부분 본전치기 수준으로 판매가 된다. 이윤이 남아도 미미하기 때문에 팔때 마다 가끔은 속이 쓰려온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서점을 운영할때만해도 대부분의 문제집 총판들이 배본서비스를 기본으로 제공해주었다. 아마 총판도 워낙 많고, 관행상 영업 마진을 포기하기 힘든 구조일 터. 게다가 땅값 비싼 수도권에서 도서를 잔뜩 쌓아놓는 물류창고를 운영하려면 외곽도 사뭇 멀리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원과 공부방에 직접 판매를 하는 총판의 입장에서는 서점의 파이를 빼앗아가는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서점이 있는 곳 주변으로는 대체로 거래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점에 사장인 내가 빤히 있는데도 책묶음을 들고 올라가는 거래처 직원들을 보면 사르르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심한 경우. 나도 사람인지라 지역권이 없는 도서의 경우, 또는 지역권을 무시하는 거래처의 경우. 조금더 저렴한 거래처를 선택할 때도 있었다. 


지방인 세종시로 내려온 지금. 충남에서 여기저기 찢어 만든 인위적인 도시 세종특별자치시. 이 특이한 상황으로 인해 세종시의 문제집 거래처들은 충남 공주, 충북 청주, 대전, 심지어 EBS의 경우 천안까지 이어져 있다. 물량이 많지 않은 작은 서점까지 이 거래처들이 배본을 했다가는 아마 그들도 이윤이 남기 어려운 구조일게 뻔했다. 전체 세종시를 따져도 서울 한 구의 인구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인구에 먼 거리. 당연히 문제집은 배송서비스보다 서점주인이 직접 가지러가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올해만해도 잘 배본해주던 거래처가 갑자기 가지러 오라는 통에. 가뜩이나 오전에 빡빡한 일정으로 운영되는 소담서점의 운영시간을 더 줄여야 하나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1인 책방지기인 나 같은 경우 들쭉날쭉 불규칙한 오픈 시간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곧 손님들의 불만사항이 될 수있다.


아~~~ 애증의 문제집이여.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학교들이 정상적인 학사과정을 보내지 못해서 그나마 덜 움직였지만, 올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는 지라. 부족한 책들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옆지기를 재촉하게 된다. 그러니 고객들이여. 문제집 말고도 세상에 널린게 책일지언데. 아이들에게 문제집 열권에 단행본 한권이라도 사주십시오!!!!


회원제 서점이다보니 구매기록을 보고 문제집으로 꽉찬 분들의 주문을 받으면, 가끔은 정말 이 문제집을 계속 팔아야하나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곧. 그래도 이거라도. 라는 심정이 동하게 되는 건. 역시 문제집 판매가 주는 홍보의 이점을 포기하기가 어렵기때문이 아닐까. 해를 거쳐거쳐 넘어가면서도 이 문제집은 늘 나의 애증거리이다. 


[서점이죠?]


[네. 어떤 책 문의실까요?]


[공부방인데 교사용 교재 모모출판사 수학교재 전시리즈 챙겨주실수 있으실까요?]


[저희는 교사용교재를 따로 준비해드리지는 않구요, 교재를 많이 구입하시면 거래처에 이야기해서 교사용이 나오는 책은 드릴 수 있어요, 수량은 얼마나 필요하실까요?]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아래와 같다.

1. [교사용만 필요한거라서요. 교재는 애들이 알아서 구입해 오거든요.] 

2. [ 처음 오픈하는 거라 학생이 늘거에요.]

3. [교사용은 지역서점에서 받으라고 해서요. 구입은 인터넷으로 할거거든요.]

4. [학년별로 1부요. 반품은 되는 거죠? 할인은 얼마나 해주시나요?]


보통 4가지 답중에 한가지로 귀결된다. 왜냐면... 진짜 수업을 잘하는 강사의 경우(내 경험상이니 주관적이다.) 교사용교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공부방이나 학원을 오래한 원장님들의 경우 동네서점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긴다(경기도 남양주의 경우). 우리 아이들이 그 학원을 다닐 수도 있고, 서점에 홍보물 비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책방지기의 소개로 원생이 늘기도 하니까. 왜인고 하니. 책방지기도 엄연히 그 동네의 주민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처음 공부방을 오픈하거나, 과외를 하거나, 오래전 학원이 아주 호황일때 총판에서 교사용 교재를 마구마구 쌓아줘서 아쉬운줄 모르고 막 쓸때 강사생활을 했던 분들이 위의 4가지 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서점이 지역공동체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상생의 소상공인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쉬운 위치라서가 아닐까 라고 감히 추측하곤 한다.


과거에는 학원에 책을 팔때, 총판들이 도서정가제 위반을 감수하고, 또는 출혈 경쟁을 위해서(영업실적이므로) 20~30% 이상 할인을 해주었다. 그러면 학원들은 그 도서를 학생들에게 정가를 받고 판매하는, 즉 도서에서 수업료 외의 이윤을 막대하게 얻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우리 같이 작은 동네서점에 그런 요구를 하면, 대략 난감일 수 밖에. 우리는 문제집 판매로 얻는 이익이 극히 미약하기 때문인데 원장님들이나 강사분들은 이해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계형성에 참 애를 먹곤한다.


[사장님! 이 동네 애들도 많은데 책 살데가 없어요. 문제집 왕창 가져다 놓으면 돈 많이 버실거 같은데 좀 가져다 놓으세요.]


[사장님! 이 지역 애들 책 사러 멀리 가는거 안타깝지 않으세요? 서점이면 당연히 문제집도 팔아야죠! 너무 한거 아녜요?]


정중한 부탁이든, 강압적인 요청이든 책방지기 입장에서는 둘다 부담스럽긴 매 한가지. 그렇다고 동네서점을 사랑하시는 고객이 전하는 말에 가타부타 말을 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이분들은 동네에 서점이 있다는 게 문화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오시는 분들이니까.


문제집에 이어서 대학교재도 역시 애를 먹이는 도서임에 분명하다. 대학교재들은 교수님들의 강의에 필수적인 선택이지 않는가. 그러니 출판사에서도 교수님들이 선정해주길 애타게 원한다. 그리고 교재로 채택이 되면 대체로 학과를 통한 공동구매가 이루어진다. 배송비도 절약하고, 학과의 친목도 다지고, 교재비도 좀 아끼고. 또한 교수님들은 해당 교재에서 강의자료를 위한 사진이나 통계자료등을 출판사에서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학교재들은 대학내 구내 서점 또는 학과 공동구매를 통해서 판매되는게 보통이다. 우리 같은 동네서점에는 출판사에서도 난색을 표한다. 대학교재들은 발행부수가 대부분 매우 작아서. 서점에 들어오는 매입율도 도서 정가의 80~90%인 경우가 많다. 


거기다가 배송비도 해당 서점이 부담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두권 판매를 위해 출판사가 배송비를 부담해줄리는 없다. 단골 고객의 경우 서비스 차원에서 대학교재도 준비해드리고 있는 소담서점의 경우, 물류비 절감을 위해 기존 거래처들을 통해 최대한 해당 도서를 확보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안되면 부득이 온라인 쇼핑몰의 할인 쿠폰을 총 동원해서 구입해서 고객에게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나 같은 경우는 책방지기가 되기전 도서 구매량이 워낙 헤비급이어서 온라인 서점 최고등급이었기 떄문에 배송비도 없을 뿐아니라, 대학교재 할인 쿠폰(도서정가제 한도내)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간신히 구한 도서를. 고객이 구매를 거부하거나 강의를 변경해서 교환 내지 환불을 요구할때면. 속으로 눈물깨나 흘린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서점을 운영하는 고로. 할인쿠폰을 이거저거 다 동원해도 이윤을 남기기는 어렵다. 그래서 고객분께 단호하게 말씀드린다. 교환, 환불 불가. 역마진(즉 손해보는)도서이므로 본인이 필요하신 책만 주문주십사 요청드린다. 우리 서점의 경우 매장내 판매되는 전도서의 적립금을 동일퍼센트로 지급하기 때문에 많이 팔면 절~대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들 교재까지 부탁받아 여러권을 그것도 여러차례(배송비때문에 출판사도 서점도 난감하다) 주문하는 고객이 계셨다. 처음에 아예 안된다고 해야했는데 거절을 못해서 결국 역마진을 감수하고 주문을 넣어 판매를 했다. 처음에는 일반 단행본도 같이 구입하시던 고개분이 어느 순간부터 대학교재만 주문하는 기 현상이 벌어졌다. 그래서. 큰맘먹고 해당 고객의 주문을 거절했다. 


"저희가 계속 손해를 보기 때문에 고객님 수업을 위한 교재 외에는 주문을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그 고객이 주문한 교재의 경우 매입율이 85%~90% 였기 때문에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안된다고 할것을. 된다고 했다가 안된다고 한다고 노발대발. 동네라 팔아줄려고 인터넷 아니라 소담서점에 주문하는 건데 그러냐고. 엄청 서운해 하셨다. 그러나. 동네라 팔아주시는 김에 저희도 좋고 고객님도 좋은 책만 구입해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간크게 말 못해서 뒤에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지금은 그래서. 아예. 대학교재의 경우 주문불가할 경우 확실히 말씀드린다. 그리고 전국유통망을 운영하는 거래처의 경우 도서 수급이 되기까지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간여유를 충분히 두고 주문하시란 말도 꼭 붙이고는 한다. 이만하면 책방지기 경력 5년차에 간도 더불어 많이 커진거 아닐까.  


그래도 대학교재의 경우 온라인을 통해 무료배송이라도 내걸면 다음학기에 판매가 되기도 하니 기다리면서 제발 팔려라 기도를 하곤한다. 문제집의 경우. 한해가 지나 반품기한을 자칫 넘기면. 온전히 정말 온전히. 특히 반품철에 주문한 고객이 주문취소라도 하는 날에는. 그날 내 일당이 몽땅 날아간다. 그래서 그때는 정말 정말 신중히 주문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주문할때 취소할지 모른다고 전제하고 책을 주문하시는 분은 없기때문에. 


오늘도 빗길을 뚫고 거래처를 다녀와 다발채 묶여있는 문제집 덩이들을 끌고오는 옆지기가 안쓰럽다. 그리고 그 문제집들을 사가면서 시험 걱정을 하는 아이들도 안쓰럽다. 아. 공부의 끝은 없는데, 안쓰러운 녀석들. 


"얘들아. 그거 다 풀고 100점 받아랏! 아줌마가 기운 팍팍 넣어줄게."


문제집을 사가는 예쁜친구들에게 내가 꼭 하는 말이다. 그러면 이 학생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다. 

학업 부담감에 짓눌렸던 표정이 조금 펴지며, 때로는 배시시 웃으며 "꼭 그럴게요." 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 말을 듣기위해 나는 오늘도 문제집 총판에 책을 가지러 가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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