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데슈 Ardèche 그리고 지역공동체
산등성이 위에 평화롭게 풀을 뜯는 소들 위로 큰 고래 한 마리가 지나가는 듯하다. 나도 그 고래 그림자 아래로 소들과 함께 7월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숨을 돌린다. 저 멀리서 떨렁거리는 소 방울 소리가 들린다. 망을 보던 소가 나를 보더니 멈칫한다. 고개를 앞으로 뒤로 휘저으며 경고를 주는듯하다. 얼른 저리 비키시지?라는 메시지 인듯하다. 아이고 미안 내가 너희들 자리를 빼앗었구나. 다 그리지 못한 그림을 가지고 덤벙덤벙 그들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대장소가 당당하게 언덕을 내려온다 곧이어 그의 무리들이 내려온다. 체중을 이기지 못해 가파른 길에 우수수하고 먼지를 내며 쏟아지듯이 내려온다. 무-- 무-- 소리를 내면서 내려온 소들은 내가 그림 그리던 돌바위 주변에 자리 잡는다. 그리곤 잔 바람에 술렁이는 풀을 다시 뜯는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살다니... 이 사실은 슬프게도 21세기 소로써는 꽤나 행운인 셈이다.
고개 들어 바라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본다. 초록의 산세는 파랗게 멀어진다. 산 넘어 또 다른 산이다. 이 몽툭하고 아기자기한 풍경을 보기 위해 계곡을 따라 차로 40분을 올랐다. 끊임없는 밤나무의 향현, 푸른 잎들이 빽빽하게 뻗어있다. 7월의 뜨거운 햇살도 밤나무 잎사귀에 부딪혀 조각조각 부서진다. 그늘아래로 서늘한 바람이 분다. 11월쯤엔 밤송이 열매가 우수수 떨어지는 장관을 볼 수 있겠지? 엄마와 밤 주으러 가던 대관령옛길을 떠 올린다. 그 꼬부랑길의 시원한 색감과 향긋한 내음이 많이 닮은 곳이다.
나는 한국친구들에게 이 지역에 대해서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프랑스의 대관령이야.
밤과 소가 가득한 이곳은 프랑스의 남동쪽에 위치한 아르데슈(Ardèche)이다. 아르데슈엔 밤과 소말고도 유명한 게 아주 많다. 아르데슈는 1960년도부터 반전주의와 함께 유럽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휩쓸었던 히피들이 정착한 곳 중 하나이다. 아르데슈가 히피들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게 그만큼 속세와 먼 곳이라는 방증인듯하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히피의 추상적 이미지는 먼저 드래드 머리에 대마초를 피우는 베짱이가 먼저 떠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가내수공업에 있다. 그 당시 이곳에 정착한 히피들은 버려진 땅에 다시 일구고 사라진 전통농법을 되살리는 등, 도시화에 휩쓸려 버려진 산속마을에 다시 생기를 불어주었다.
진정으로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은 열매를 따먹고 계곡물로 목욕을 하는 삶뿐 만은 아니다. 자연의 것을 착취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동행이다. 태초 히피들의 노력은 근대화, 산업화 이전의 삶을 이어 살아가는 것이며, 잊혔던 전통을 이어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정신이 현대까지 계승되어 이어져 오는 곳이 바로 아르데슈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소작농민과 가내수공업자들이 어울려 살아간다.
Saint-Pierreville이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 'Ardelaine'이라는 지역공동체기업이 있다. 어원 'Art de laine'은 프랑스어로 '양털의 예술'이란 뜻이다. 시작은 이러하다, 1972년, 오랫동안 양털 방적공장으로도 사용되었던 무너진 터에 젊은 공동체가 들어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너진 벽을 세우고 버려진 방적기구를 되살리는 등 10년의 과정을 거쳐 생산시스템을 구축해 내었고 지금까지 40년에 걸쳐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모든 제품은 화학적 공정을 거치지 않으며 지역의 양들의 털로 만들어졌고 지역민의 손을 거쳐 생산 유통된다. 친환경 공정 경제체재 (Systeme économique équitable et écologique)의 삶이 그들의 지향점이다.
약 40여 명의 조합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는데, 제조공장을 제외하고도 서점, 레스토랑과 상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작은 마을 자체가 하나의 조합이 되어서 상부상조하고 있다. 이것은 혁신이 아니라 되살리기에 가깝다. 선조들이 이미 일궈놓은 텃밭을 다시 일구는 것이다. 하지만 때론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되살리는 게 더 어렵다. 이렇게 리부트 된 지역공동체는 새로운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보완되어 재탄생되었다. 그것은 수공예와 건강한 문화가 결합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드레그머리, 게바지, 문신이 가득한 팔과 다리, 커다란 피어싱... 그들의 개성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모습은 차별이 대상이 되기 쉽다. 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복지를 교활하게 이용한다며 비난이 쏟아지기도 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말만 앞세우고 절대적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한다며 선택적 행동가라고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삶에 방식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없다. 이방인으로서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한 바구니에 분류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오류인지 잘 알고 있다. 일단 내가 아르데슈에서 만난 사람들은 스스로를 히피라고 부르지도 않고 사회운동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마 그들은 스스로를 '원래 거기에 있었던 걸 이어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것이다. 첩첩산중에 이렇게 활발한 공동체라니... 참으로 이상한 감동이다. 도시의 찌듦에 피해온 자연 속에서 마주친 또 다른 공동체에게서 어떤 물음에 답을 찾으려 한다. 어느 애니메이션 감독처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이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해져 있는 시스템에 맞춰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이다. 하지만 이 공동체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자연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평화롭깨 풀을 뜯는 소에게서 행복을, 자연의 순리대로 떨어진 밤에서 생명을,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참 멋진 삶의 가치관인 거 같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