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것은 찜찜하지만 도움이 된다

by 지하 십이층

가끔 안경을 벗고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눈으로 거울을 보면, 내가 꽤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눈,코,입 모두 흐릿한 채 형태만 보이지만 툭 튀어나온 광대뼈, 비율이 안맞는 이마길이, 작은 입의 너비와 맞먹는 코평수 등 명확한 단점을 꼬집어 볼 때마다 훨씬 더 관대해지기 때문이다. 반투명한 막에 쌓여 거울을 바라보는 나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한 느낌도 난다. 예전 연예인들은 일반인과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신비주의' 콘셉을 유지했다. 흔히 잘 아는 서태지도 그렇고, 보아 역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신비스러운 소녀의 이미지를 꾸며내기 위해 페르시안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다고 고백했다. 이렇듯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어떠한 미지의 영역은 대상을 미화시키는 듯하다.

너무 선명하고 분명하며 솔직한 것은 가끔 환상을 깨뜨리고 실망을 안겨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대상을 향해 적정의 거리를 갖고 지켜볼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요즘은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감정을 자주 느낀다. 처음 본 사람에 대한 나의 예측이 맞든 틀리든 지금 여기서 다가가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고 되도록 아름답게 끝맺을 수 있다. 결국 1/2확률에서 나의 불길한 예측이 틀리다 해도 내 판단이 언제 또 바뀌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게 다가 아니란 걸 느끼는 순간은 분명 있다. 너무 정확한 눈금으로 사람을 재지 않으려 한다. 띄엄띄엄 5cm, 10cm 단위더라도 대충 가늠만 하면 되고 멀리서 보면 똑같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을 향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다정한 틈을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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