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부터 약 1년 반 동안 교육업에 종사한 적이 있다. 사실 ‘업’이라고 칭하기에는 금전적, 시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아니었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뒤 항상 알바를 해왔던 내게 가장 적합한 단기 일자리이지 않나 싶다. 영어를 가르칠 때면 몇 가지 고비가 있는데, 그 중 꽤 초반에 나오는 고비가 ‘현재완료’다. 이 시제는 우리나라 문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시제를 사용하는 느낌을 얻는 데 꽤 많은 문장을 봐야한다. 이 개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과거가 현재에 ‘유효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 쓰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 ‘키를 잃어버렸다’고 쓴다면 모든 상황이 압축되어 상황을 자세히 알기 위해 문맥을 살펴야 하지만, ‘I have lost my key.’라고 쓴다면, 과거에 열쇠를 잃어버렸고 현재까지 그 상황이 이어진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영어를 배우다 보면 한국어의 세심함에 놀라곤 하는데(우리나라에서 노랗다는 노르스름하다, 누렇다, 노릇하다 등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영어론 ‘yellow’로 통합돼 표현된다.) 시제에 대해서는 영국인들의 깊은 통찰이 돋보인다.
현재완료를 가르칠 때마다, 우리의 현재는 항상 과거에 영향을 받는데, 그것을 굳이 문법으로 표현해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매년 연말이 다가올수록 현재완료를 상기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말과 연초는 굉장히 근접한 시간인데,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는 연말이고 1초 뒤인 1월 1일 12시 00분은 연초다. 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말과 연초가 주는 어감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연말은 한 해의 마무리를 상징하며 연초는 새로운 시작, 설렘을 상기한다. 사실 연말과 연초는 단절적이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데 그걸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연말은 사계절을 온전히 지나고 한 해를 새로이 시작할 원동력을 갖는 시간이다. 즉,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과거와 현재의 나를 정리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연말에 서서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결국 이어지는 미래를 잘 가꾸어나가는 것과 연결된다. 최근에 퍼블리에서 글을 보다가 노션 ‘연말 회고록’ 템플릿을 발견했는데, 자신의 일년을 돌아보며 소소한 송년회를 즐기는 것이다. 그 해 내가 인상깊게 봤던 책, 영화 등을 정리하며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 지 어떤 새로운 발견을 했는 지 점검할 수 있다. 서로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 시끄러운 술자리 속에서 무의미하게 잔을 부딪히는 게 진정한 송년회라고 할 수 있을까? 새해를 기다리며 단순히 숫자가 바뀐다는 것으로 인생이 바뀔 것이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연말과 연초, 과거와 현재 모두 촘촘한 시간 속에서 이어지며 필연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2022년을 준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