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면 선물을 받게 되는 기대감에 벅차 괜시리 들뜨곤 했다. 그 연말의 기대감이 관성이 되어 아직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린아이 같이 설레곤 한다. 홍씨 성을 가진 꽤나 냉소적인 내 친구는 크리스마스에 모두가 행복해야 할 것 같은 생경함에 부담스럽다고 했다. 모두가 사랑하는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구나.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없다. 서양의 종교로부터 온 하루 혹은 이틀의 휴일은 하고 많은 날 중에 임의적으로 정해진 날들이다. 심지어 우리가 상상하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미지 대부분은 코카콜라가 겨울철 판매량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만든 광고에서 왔다. 종교와 광고가 합작해 만든 휴일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둘 다 신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물론 이러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나는 크리스마스가 요구하는 ‘산타클로스’라는 믿음을 굉장히 오랫동안 간직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믿음이 깨지질 않길 바랐다. 너무나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일들만 일어나는 세상에서 한번쯤은 비과학적이고 판타지적인 일들이 일어나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산타를 자처해 선물을 준비하는 데 지쳤고 이제는 알아야 할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산타라고 보기엔 너무나 무성의한 선물이 준비되어있었는데, 트리 밑 투박한 제품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용돈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아직도 가끔 그 때의 차가운 공기와 무너져 버린 내 기대감이 떠오른다. 엄마는 내 어두운 표정을 보고 트리 밑에서 선물을 받아보고 싶지 않았냐며 눈치를 봤고, 그 말은 나의 추측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나의 환상은 이제 깨졌지만, 그때의 순수함이 그리운 것인지 혹은 어딘가 내가 모르는 판타지를 바라는 것인지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그러한 설렘이 사실 허상이고 믿음을 요하는 무언가에 의해 조작된거라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