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에 대하여
어릴 때 했던 놀이 중에 귀신 잡기가 있었다.
가위바위보로 귀신을 정한다. 시이작!이라고 외침과 동시에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달아난다. 물론 꺄아아악 비명은 기본이다.
귀신은 제자리에서 다섯을 세며 아이들의 위치를 파악한 후 뒤를 쫓기 시작한다. 잡힌 아이의 등을 치며 잡았다!라고 소리친다.
이 놀이는 달리기를 잘하거나 나이 많은 아이가 귀신이 되면 싱겁게 끝나버릴 것 같다. 하지만 놀이를 재미있게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 다 있다.
귀신 역을 맡은 애가 잡으러 온다. 미친 듯이 뛴다. 손이 등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 숨이 목전에 닿는다. 그때 제자리에 딱 멈춰 서며 방법을 쓰면 살 수 있다. 귀신과 다섯 발 안에서 보이지 않는 선으로 네모를 그리며 재빨리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챙그랑 챙그랑 챙그랑 구리항아리]
그러면 또 놀이가 싱겁게 끝나버린다. 그래서 지켜야 할 규칙이란 것이 있는 것이다. 생각을 해 보라. 귀신의 손이 등에 닿을 듯 말 듯한 순간에 멈춘다면 바로 잡혀버리지 않겠나? 그러니 그 찰나에 아주 순간적으로 몸을 휙 돌려 반대편으로 뛰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이 놀이의 묘미인데 그런 순발력과 치밀한 계산능력과 담대함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귀신의 손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선을 긋는 데 성공하고 주문까지 외우면 결계가 생긴다.
[챙그랑 챙그랑 챙그랑 구리항아리]
이제 아이는 결계에 갇히고 귀신은 주변을 맴돌 뿐 아이를 잡을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흔하게 생겨나는 것이 이 방법이다. 이른바 결연이니 손절이니 하며 관계를 정리하는 일 말이다. 40년을 함께 산 부부, 유년부터 장년까지 함께한 친구, 7년을 사귄 연인. 심지어 한 가지에서 난 형제. 부모와 지식 사이... 오랜 날을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단단한 성벽이라고 믿었던 관계에 몇 마디 말로 선이 그어지고 결계가 생긴다.
[다신 보지 말자]
관계가 깨질 때에 우리는 당황한다. 그간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던 견고한 성벽이 사실은 느슨하고 얇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낡은 그물이었다는 것에. 그 그물 속에서 우리는 그간 사력을 다해 담을 쌓았었구나. 믿음이라는 모래알을 뭉쳐서 말이다.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은 이별 자체보다 괴롭고 아프다.
나는 지금 결계 안에 있다. 안전하고도 불편하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단지 망설이는 중에 아프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