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의 편리함을 알아버렸다
나는 엄청난 드덕(드라마 덕후)이다. 어릴 때부터 TV를 끼고 살았다. 부모님은 맞벌이였고, 유일한 안식처이자 친구가 되어주는 건 TV였다. 그래서인지 온갖 드라마나 예능을 섭렵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노트북과 핸드폰은 각종 영상을 보는 데 그 역할을 꽤나 했다. 핫하다는 드라마는 꼭 정주행을 해야 직성이 풀렸으며, 유명하다는 영화도 거의 빠짐없이 봤다.
그러던 내가 최근에 유튜브로 몰아보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장면 하나 빠짐없이 정주행을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알고리즘에 선택된 몰아보기로 신세계가 열렸다. 유튜브 프리미엄 회원이며, 모든 것을 유튜브에 검색하는 열렬한 유튜브 맹신자인 남편과 달리 난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유튜브를 본다거나 쇼츠 같은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편도 아니었다.
처음 몰아보기를 눌러본 건 OTT 플랫폼이 다양해서였다. 넷플릭스에서는 이 작품만 보고 싶고, 디즈니플러스에서는 저 작품이 재밌을 것 같고, 티빙은 이게 재밌을 것 같고, 이런 식이였는데 이 많은 OTT를 한 작품 때문에 다 구독하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몰아보기를 먼저 보고, 재밌으면 봐야지 생각했지만, 결국 푹 빠지고 말았다. (그래도 3개의 OTT는 정기구독을 하고 있는 모순..)
보통 드라마는 12회~16화로 구성된다. 다 보면 10시간이 훌쩍 넘는다. 예전에는 이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지만, 몰아보기는 2~3시간 안에 요약하여 결말까지 볼 수 있어 그 편리함에 눈을 뜨게 되었다. 모든 이야기는 끝이 항상 궁금하다. 결말을 봐야 다 본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든달까.
몰아보기는 이 결말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축소시켜 준다. 요새는 안 봤던 드라마나 이미 봤는데 재밌었던 드라마나 영화 몰아보기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 한 작품을 보는 시간은 줄었을지 모르나, 몰아보기로 여러 편을 보기에 영상을 보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 MZ세대들은 쇼츠나 짤에 열광한다고 하는데 나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콘텐츠를 길게 보는 것을 지루하게 느껴 몰아보기를 하게 된 것인지, 유튜브의 자연스러운 노출로 인해 몰아보기를 선호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점점 예능도 재밌는 장면만이 나온 엑기스(?) 요약본을 찾게 된달까. 이렇게 유튜브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유튜브로 몰아보기 요약본을 보다가 반대로 그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요약본을 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건 꽤 오랜 기간 나의 습관이었다. 어느샌가 변해버린 나의 취향에 스스로 놀라며, 이제는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한 곳에 열정을 쏟기엔 시간도, 집중력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최근 연휴 동안 한 편당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인 반지의 제왕을 정주행 한 남편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꼈다. 중간중간 옆에 같이 있어주었으나 이미 아는 내용이라 그런지 소파에 앉아있기엔 좀이 쑤셨다. 만약 20년 전이 아닌 지금 이 영화가 나왔다면 나는 왠지 몰아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루 자고 나면 새로운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시대, 그 뒤를 쫓기엔 나의 취향이 너무 올드해서 변해야만 했을까. 왠지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