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싼 라면을 샀냐고 물으신다면...
목요일은 집 앞 마트에 일주일 치 전단행사 품목이 업데이트되는 날이다. 주말 대목을 앞두고, 목요일에 정보 제공을 하는 대기업의 탁월한 마케팅에 감탄하며, 핸드폰 앱으로 행사상품 전단지를 클릭했다. 매주 달라지는 품목, 이번 주말 장보기에는 어떤 품목을 담아야 하나 신중하게 살펴봤다.
봉지라면이 종류 상관없이 3개 묶음에 9,900원이었다. 라면은 생필품이다. 보통은 떨어지기 전에 쟁이는 품목 중에 하나임으로 이번에는 라면을 담아 오리라 생각했다. 또 다른 품목은 호빵이었다. '역시 이 계절엔 호빵이지!' 역시나 종류 상관없이 3 봉지에 9,900원이었다. 집 앞이라 아침부터 갈 수도 있었지만 늦장을 부리다 저녁이 돼서야 집을 나섰다.
행사하는 호빵은 이미 품절된 듯, 진열대에는 행사 제외 호빵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팥 호빵이랑 야채 호빵이랑 남은 한 봉지는 또 뭘 살까, 팥을 2 봉지 살까.' 고민했던 시간들은 역시나 의미 없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라면코너로 향했다. 자주 먹는 국물 라면을 익숙한 듯 하나 담고, 익숙한 짜장 라면이 없어 옆에 계신 직원 분에게 물었다.
"OO 건면은 없나요?"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고객님, 그 상품은 아침에 다 나갔어요. 그 상품이 6천 원 대라 제일 비싸거든요."
'하하, 역시 종류 상관없이 고를 때는 제일 비싼 것을 집는 게 이득이구나.' 생각하며 남은 2개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괜히 두리번거렸다. 사실 집에 라면이 꽤 남았는데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 좋아하는 라면으로 더 집을까 싶다가 이내 가격표를 들여다봤다. 역시 비싼 걸 집어야 손해보지 않는 것 같아 평소 먹지 않는 짜장 라면 중 제일 비싼 라면을 집어 들었다.
우동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역시 두리번거리니 짜장 라면과 다르게 친절한 안내문구가 종이에 적혀있었다.
"△△ 우동은 조기 품절 되었습니다."
이미 가격표를 떼어버린 그 자리에 붙어있는 안내 종이만 봐도 이 라면코너에서 우동은 제일 비싼 금액대에 속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엔 비빔 라면 코너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아까 그 직원이 다시 와서 친절히 말했다.
"고객님, 이 제품이 이득이에요. 이게 더 비싸고, 더 맛있어요."
요새 광고를 많이 하는 바로 그 비빔면의 쫄면 버전이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더 비싸다는 그 비빔 라면보다 사실 더 저렴한 제품이 먹고 싶었다.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 직원이 추천한 비싼 제품을 고를까 하다가 영 내키지 않아 돌아섰다.
나머지 한 묶음을 뭘로 채울까 고민하다 딱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돈코츠 라멘을 집었다. 쌓여 있는 다른 라면에 비해 두 개 밖에 안 남았다는 건 인기가 많아 다 팔린 것 같은 희소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라면을 집어 들었다. 가격표를 보니 제일은 아니지만 꽤 비싼 편이었다. 누가 집어갈까 서둘러 담았다. 별로 먹고 싶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원래 먹던 라면 1개를 제외하고는 의도치 않게(?) 나름 비싸고, 처음 보는 라면 2 봉지를 집어왔다. 자주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지만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 집어온 라면들, '이 기회에 먹어보는 거지!' 라며 합리화를 했다. 라면을 고르는 기준이 맛있어 보인다거나 평소 먹고 싶었다가 아닌 철저히 가격이 높은 순으로 골라오다니. 자본주의에 너무 찌들었나 싶었다.
오랜만에 라면이나 먹어볼까 하고, 찬장을 열어 라면을 꺼냈다. 역시 손에 잡히는 건 매일 먹었던 바로 그 라면, 역시 입맛은 먹었던 걸 찾는다. 가격에 상관없이 자주 먹는 라면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게 정말 현명한 소비 아니었을까. 싸더라도 그냥 먹고 싶은 라면을 먹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이 뇌리에 스쳤다.
그날 찾아온 소비요정은 평소와 다르게 모험심이 가득하고, 손해 보는 걸 싫어하는 요정이었음이 틀림없다. 눈에 익숙지 않은 라면들로 꽉꽉 채워진 찬장 사이로 맛있을 거라 기대하며 샀던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라면이 보였다.
왠지 새로운 라면도 그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음 한편에는 기대감보다는 후회감이 더 커졌다.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호빵도 비싼 라면도 쟁취할 수 있는 것인가.
시간은 또 지나 목요일, 이번 주 전단행사를 여지없이 확인했다. 같은 브랜드의 봉지라면 2개를 사면 20% 할인이다. 비슷한 행사를 또 하고 있었다. 지난주에 행사 가격이 더 이득이긴 했지만, 지난주에는 없어서 못 샀던 짜장 라면이 매대에 가득했다. 비슷한 행사는 꽤 자주 반복된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그때가 아니면 못 살 거 같아 별로 필요하지 않은데도 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손해 보는 것 같아 한 주 빨리 발 빠르게 구입한 라면을 보며, 과연 내가 어떤 생각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가격이 최우선인가 싶다가도 또 동물복지 계란과 무항생제 우유를 찾는 나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소비를 하고 있을까. 라면 하나 사는 게 이렇게 심각해질 일인가 싶다가도 나의 소비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번주에는 부디 모험심이 가득한 소비요정도 손해 보는 걸 싫어하는 소비요정도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먹고살려면 소비를 하긴 해야 하는데 라면 하나 고르는 게 이렇게 피곤할 일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