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피아노
지금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지만 나의 유년시절 인기 있는 학원은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이었다. 두 학원 모두 다니는 아이들도 꽤 되었고, 무엇보다도 둘 중 하나는 필수인 것처럼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두 살 터울의 언니를 따라 피아노 학원에 가게 되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피아노의 처음은 이름도 익숙한 바이엘이다. 보통 바이엘 1권~4권의 순서로 시작하여, 체르니 100, 30, 40번의 순서로 배우게 된다.(50번도 있지만, 전공자가 아닌 이상 내 주위에 거기까지 배운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
바이엘 1~2권은 어렵지 않게 칠만 했지만, 바이엘 3권이 되자 박자는 쪼개지고, 콩나물 같은 음표는 많아져 유난히 손가락이 짧았던 어린 내가 양손을 빠르게 치기엔 버거웠다.
그때부터 흥미를 잃었다. 피아노 학원은 피아노를 치러 가는 곳이 아닌 친구들과 어두운 피아노 방에서 귀신 놀이를 하러 가는 곳이었다. 선생님이 나눠준 진도카드에 몇 번을 연습했는지 사과에 색칠을 해야 했지만, 색칠만 열심히 하는 날이 많아졌다. 얼마 못 가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또 몇 달이 지나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지면 변덕스러운 마음에 엄마에게 다시 피아노 학원에 가겠다고 졸랐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할 거 냐며 몇 번을 묻고는 속는 셈 치며 매번 다시 보내주었지만, 어김없이 바이엘 1권부터 시작해 3권에 다다르면 여지없이 흥미를 잃고,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곤 했다.
내가 다시 시작하고, 그만 두기를 서너 번 반복할 동안 비슷한 시기에 다녀 꾸준히 피아노를 쳤던 언니는 체르니 30번을 나가고 있었고, 나의 진도는 항상 바이엘 3권에 멈춰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만뒀을 땐 내 적성엔 음악이 그리고 피아노가 맞지 않는다고 철저히 믿었다.
올해 초, 휴직을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겠냐고 물어봤었다. 나는 딱히 취미가 있는 편이 아니었다. 운동은 취미와 흥미보다는 의무감에 하는 편이었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도록 인기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게 다였다.
그나마 요리에는 꽤 관심이 있어 베이킹도 했지만, 이번에는 왠지 망설여졌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문득 피아노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 후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서 배우고 있는 언니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꽤 잘 쳤던 언니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이제부터는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엄마의 성화였다. 언니는 그 시절을 한풀이라도 하듯 취업을 하자마자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 꾸준히 배우고 있다. 언니는 왜 피아노가 좋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너무나도 뻔한 '재밌다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는 하나쯤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농사, 엄마는 수영, 남편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처럼 언니에게는 피아노가 그런 존재였다. 나에게 순수한 재미를 주며, 내가 꽤 꾸준히 하는 취미가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나에겐 그런 게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피아노가 치고 싶었다. 휴직과 동시에 집 근처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내가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개월 차, 나는 지금 바이엘 4권을 치고 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역시나 어릴 때처럼 여러 번 들었다.
역시 바이엘 1~2권은 무난히 넘었지만, 과거의 깊게 각인된 경험 탓인지 바이엘 3권은 어려웠다. 바이엘과 같이 연습하는 연주곡의 난이도도 어려워졌다. 똑같은 시간을 연습해도 진도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계속 틀리는 바람에 벌써 곡 여러 개를 끝내지 못한 채 한 달 내내 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예전만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치면 칠수록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 곡에 대한 이해력이 나아진 건지, 손가락이 조금이라도 길어져서 치기 편하게 된 건지, 내 인내심이 더 길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왜 피아노가 치고 싶었을까. 주변 사람들처럼 재미를 찾고 싶었던 걸까. 고상한 취미 하나쯤을 가지고 싶었던 걸까. 언니를 따라 하기 좋아했던 내가 이번에도 언니를 따라 하고 싶었던 걸까. 항상 포기했던 바이엘 3권의 벽을 정말 넘어보고 싶었던 걸까. 좀처럼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드디어 항상 포기했던 이 마의 고비인 바이엘 3권을 꾸역꾸역 넘어 최근에 바이엘 4권을 시작했다. 체르니 100번을 바라보는 희망찬 미래가 드디어 나에게도 생긴 것이다. 어쩌면 내가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던 그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던 그 마음, 같은 구간에서 항상 포기했던 과거의 나를 극복해 보고 싶다는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랬다. 피아노뿐 아니라 마주해야 하는 힘든 모퉁이를 만났을 때 지나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될 일이라며 서둘러 포기하거나, 회피하기에 급급한 적이 많았다. 그냥 돌아가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도 있지도 않은 지름길을 찾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허비했다.
이번에는 좀 달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과정이 힘들더라도 이 길모퉁이를 묵묵히 돌아볼 생각이다. 한번 지나면 그다음 모퉁이도 지날 수 있을 것 같으므로.
노랗게 물든 은행잎보다 더 노란 피아노 가방을 들고 학원에 간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좀 유치하지만, 이 계절에 유난히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창피함은 짧고, 왜인지 발걸음은 가볍다. 오늘도 바이엘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