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또래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2002년을 전후해 축구 사랑이 시작된 이들이 많다.
뜨거웠던 우리의 대학시절, 나 역시 한국 축구 역사에 다시없을 2002년에 빨간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에서 '짝짝짝 짝 짝 대한민국!'을 외쳤다.
월드컵 3,4위전을 보기 위해 친구와 함께 몇 달 전부터 고가의 티켓을 예매했는데, 우린 베컴이나 말디니 또는 지단을 볼 것을 기대했지만 우리가 본 것은 한국 대 터키전이었다. 3,4위전은 티켓가가 그나마 싸서 16강과 같은 티켓가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대구까지 가서 홍명보의 마지막 경기를 보았으니, 나름 성공한 축구 덕후의 인생이었다.
그러나 나의 축덕의 역사는 이보다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평생을 마이너한 감성을 안고 살아온 경계인의 삶 때문일까. 남들은 솔리드, R.ef,DJ DOC의 공개방송에 따라다닐 시절에 난 각종 구기종목 경기를 보러 다니는 이상한 여중생이었다.
야구, 농구, 배구, 여자배구 등등의 경기장에 가서 생생한 경기를 보면서 나름 사춘기의 스트레스를 떨치고, 생의 희열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제 나이보다 늙은 아재감성이 쌓였던 건 경기장에서 받은 소주 아재들의 영향이리라.
암튼 당시엔 농구와 배구는 인기 종목이었기 때문에 여중생이 가도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축구경기장과 야구경기장은 정말 아재들과 함께 온 초딩들밖에 없는 나름 험한 느낌의 장소였다.
경기를 관람하고 있으면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으니말이다. 많은 아재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애라는 이유로 기특해하며 말을 걸고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도 상냥하던 아재들이 경기를 보며 던지던 걸쭉한 욕설은 여전히 생생하다.
프로축구를 보러 다니던 나는 초딩때 첫사랑이 다니는 옆 학교(중, 고교가 같이 있는 학교였다)가 전국고교축구대회 결승에 올랐다는 걸 알았고 우연히 보러 가게 된다. 땡볕에 앉은 남고생들의 교복 응원을 곁들인 경기는 꽤나 재밌었는데, 거기에서 상대팀 포철공고에 눈에 띄는 한 명의 선수가 있었다. 솔직히 양 팀을 통틀어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낸 선수였는데, 어떤 느낌이었냐면, 무대 위에서 팔로우 조명을 유일하게 받는 주연이랄까 아니면 올림픽에서 우사인 볼트를 본 느낌이랄까. 어린 안목에도 그 경기장의 누구보다 빠르고 볼감각이 뛰어난 이라는 게 느껴졌다. 지금은 오남매의 아빠로 친숙한 이동국이 바로 그였던 것. 당시 그는 포항에서 이미 유명인사였다고 하는데, 원정경기였지만 그를 응원하기 위해 따라온 여고생 팬들이 이미 2~3명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이후 이동국은 병역이나 대표팀 선발, 해외진출 등 많은 이슈들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셀럽이 되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열악한 경기장에서도 누구보다 영민한 플레이를 하는 고등학생 선수로 남아있다.
오래된 축덕으로서 기억에 남았던 몇 가지 순간 중 하나는 K리그의 레전드가 되었던 고등학생 심바의 시작을 보았던 것도 손꼽히는 기억 중 하나이다.
지난해 그는 23년의 선수 인생을 마쳤고, 나는 고난의 삼십대를 끝냈다.
유망주였던 고등학생 선수는 이제 지도자를 준비하고, 축구를 좋아했던 여중생은 마흔이 되어 25년 전 덕질을 고백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