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큰 상실감에 목적을 잃고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평생 마실 술은 그때 다 마셨지 싶은데, 손을 달달 떨면서 술만 마시러 나가고 담배만 주야장천 피니 부모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부모님도 당시 곤란한 상황에 있어 스스로의 무게만을 감당하기도 벅차셨던 지라 우리 가족은 모두 답답한 하루하루를 넘겨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해서 차곡차곡 모아놓은 알토란 같은 돈들도 술값으로 다 써버리고 넋이 나간채로 1년 정도를 보냈지 싶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다음날이 되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만 무사히 하루를 넘길 내가 무서워서 다음날이 안오길 바라기도 했었다.
그러다 친구가 가라고 등 떠밀어서 일주일간 간 지리산 종주. 비가 억수같이 퍼붓다 그치다를 반복했던 그해 여름에 배낭 하나 메고 꼬박 일주일을 생고생을 하고 돌아와 누군가의 권유로 시작한 간호대로 가기 위한 공부. 그렇게 나는 간호사를 시작했고, 7년의 시간을 거쳐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오래진 않았지만 미국에서 일하고 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답도 줄 수가 없다. 애초부터 부귀영화나 돈을 위해 온 미국도 아니고, "더 나은 대우"는 내 여러 이유 중에 하나에 불과했다. 결정적으로 어린 나이에 나름대로 큰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웬만한 큰일에는 "무식하게 부딪쳐보는" 나의 습성에 의한 것일 뿐. 이상하게 안정감을 느낄만하면 깨지는 일이 반복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사회생활과 인간관계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병과 같이 느껴짐을 느꼈다. 그래서 나의 무식한 기질로 "내 주변에 모든 게 다 산산조각 나더라도 나만은 살아남을만한 내공 한번 제대로 쌓아보자"는 용기로 미국에 나 스스로를 등 떠밀었다.
20대 이후 한 번의 나름대로 큰 일, 그리고 이후에 크고 작은 일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확실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리 오래가지 않아 밤과 낮이 반복되듯 번갈아가며 찾아왔다. 지금의 이민생활이 나한테 준 어려움도 많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사소한 부분에서 행복해하기도 하고 숱하게 많은 낮과 밤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 순간순간 느끼는 어려움이 그리 길지 않은 밤일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어서 그런지 의외로 지레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름대로 순탄하게 잘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나를 어릴 때부터 잘 알던 친구들에게 한 번씩 버릇처럼 말하곤 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무 일 없이 미국까지 왔으면 나 힘들어서 짐 싸고 다시 한국 벌써 갔을 것 같아" 어찌 되었건 나름대로 크고 작은 일들이 해결되었건 그렇지 못하고 끝나버렸건 간에 피하지 않고 온전히 겪은 덕에 나름의 면역을 겪은 것이라 생각되니 또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넘겨주지. 더 들어와 봐라!" 하는 느낌으로 덤덤히 넘겨가고 있다. 그렇게 다시 용기를 얻어가며 날마다 근무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