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rrick Kim RN Sep 15. 2022

직장은 당신이 가진 가치를 결정하는 곳이 아닙니다.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을 위한 나의 경험

임상에서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면 누구에게나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있다. "신규 시절"


병원에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많은 직업들이 살을 부대끼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들은 장시간의 수련과정을 거쳐 단련되어 환자의 건강을 책임진다. 물론 어느 직군이나 시작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옛날부터 "병원에 3월에는 가지 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낯선 지역에서 지도 들고 길 찾는 것도 힘든데 대가를 받고 기능을 요구받는 일터에선 오죽하겠는가? 여태껏 많은 동료들을 근무환경에서 만나봤지만 어느 누구도 "신규 때부터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니 무뎌질 뿐인 것이지.


나의 신규 시절 역시 너무나도 강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대학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착각 속에 기능을 충분히 하는 간호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품고 병동에 입성했지만 단 10분 만에 병동의 무서운 "그녀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톡톡히 보여줬다. 아무것도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이곳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기 때문에 "에잇 뭐 한번 소신껏 해보자"가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간호사의 손을 떠나버리면 문제를 막을 방법이 없어 최후의 보루로 어떤 문제든 걸러내야 했고, 어김없이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면 문제가 발생했다. 근거가 불분명한 간호수행은 반드시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정확히는 환자에게 말도 안 되는 간호를 내놓기가 부끄러워 본격적으로 환자를 보기 시작하고  한동안은 공부의 연속이었다. 누구든 한 것을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던가? 하지만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다. 누군가 그랬듯이 "콩나물시루에 물 붓듯이" 계속 공부하고 혼나고 시정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어느새 1인분을 하게 된다. 물이 줄줄 빠지는 것 같아도 결국은 콩나물 줄기가 자라게 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고되고 힘들다. 정답도 없고, 정해진 기간도 없기 때문에 쉽게 무기력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신규 시절은 콩나물 줄기 자라듯이 금방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이걸 버티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기 마련이다. 남들은 6개월만 지나면 괜찮다고 하는데..라는 말은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프리셉터"라고 사수가 붙어서 업무환경마다 다르지만 2달 동안 도제식 교육을 실시하는 기간이 초기에 주어지지만, 사수도 환자를 봐야 하기 때문에 나의 교육에 온전히 투입될 수 없다. 결국 혼나는 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인 이곳에선 환자의 생명을 앞에 두고 모두들 날이 서있기 때문에 신규의 감정 따윈 매만져 줄 수가 없다. 그들이라고 처음이 힘들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과거를 떠올리면서 온정을 베풀기엔 나도 화장실도 못 가며 일하기 때문에 여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교육을 나눠줄 때 하나의 철칙이 있었다. "간호로 시작해서 간호로 끝내기"


요즘은 "직장 내 분위기"에 사회적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 까진 아니겠지만 내가 처음 신규로서 간호사를 시작할 땐 인격모독이 횡횡했다. 내 앞에 처음이라 낯선 이 사람은 과연 무엇 때문에 힘들어할까 고민해 보면 그 여러 가지 중에 "자존감의 저하"가 가장 심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내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그 부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환자의 안위를 놓고 일하는 우린 그저 좋은 게 좋은 분위기로 풀어갈 순 없지만, 난 적어도 간호에 대한 피드백을 줄 권한이 있을 분이지 이사람의 인생에 대해 주제넘게 피드백을 줄순 없기에 주어를 "간호와 치료행위"에 두고 말했었다. "너"가 아니라.


만일 지금 "신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 출근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당신이 수많은 비난을 겪고 있다고 해도 그건 당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간호행위를 부정하는 것이지"


이곳도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수많은 비난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사회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무기력감에 매일 빠지게 된다.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이 작은 병동은 나의 간호행위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줄 순 있지만 나의 전부를 규정할 수 없다. 당신의 부모, 가족, 친구들은 언제나 당신을 응원하고 있으며, 당신이 너무 힘들다고 하면 나를 간호해야 상대방을 간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땐 뒤쳐 나올 용기도 필요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언제든 그만둘 곳이고 안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그 비난과 분위기에서 마음이 조금은 초연해지기도 한다. "뭔가를 잘하고 싶고,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평판에 목매는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다. 난 1년만 일하고 갈 거거든"이라고 생각하면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무책임은 안된다.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은 게을리 해선 안된다. 당신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간호사의 손을 떠나면 그다음은 바로 환자이기에, 늘 우리는 바짝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일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몸으로 습득하면 언젠간 익숙해지게 되겠지만, 나는 그 "언젠간"까지 나의 손을 거쳐가는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신규 때는 "나 같은 간호사를 만나서 환자에게 미안한" 죄책감이 크지만 그건 적당한 친절로 단기간에 보상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간호가 빠진 친절은 아무 의미가 없기에 게을리하지 않고 그 "언젠간"의 과정을 최대한 당겨 놓아야 한다. 나를 위해서도, 나를 만나는 환자들을 위해서도.


신규 시절을 버티어 나가는 것은 너무도 고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자책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든 힘들었고, 어느 순간 내가 기능을 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심봉사 눈뜨는 것 같이". 하지만 그때까진 단련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신규 선생님들이 간호를 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는 과정을 "나를 소중히 여기며" 의미 있게 보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간호사를 하고 싶지만 더이상 간호사를 할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