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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 작은 마음 Nov 13. 2023

집사가 되었다


참 이상한 날이었다. 11월 11일.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 오후에는 연주가 있었고 9시쯤 일어나 슬슬 움직여볼까 하고 커피를 내렸다. 그전날 친구집에서 위스키와 와인을 마셔서 그런가 숙취가 조금 있었지만 커피 한잔을 마시니까 금방 깼다. 전날밤 친구집에는 주황색 고양이가 있었다. 이름은 심바, 7년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져 데려온 한 마리라고 했다. 참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하며 위스키와 와인을 습습 들이킨 기억이 있다. 한 명은 작곡과, 한 명은 바이올린, 또한 명은 바이올린 그리고 또 바이올린. 참 왜들 그렇게 바이올린을 하는지.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그렇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 고양이를 입양했다. 사실 이 적막한 집에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물고기나 거북이 아니면 햄스터. 근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햄스터와 이야기하고 있을 내가 너무 불쌍했지 뭐야. 생각해 보면 햄스터도 쥐다. 쥐가 내 집에 들어온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사실 임시보호를 하려고 보호소에 갔다. 하지만 임시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은 어디가 아프고 항시 지켜보고 돌봐줘야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럴 시간이 없는데.. 임시보호가 안된다고 해 차로 다시 돌아와 집을 가려고 했는데 정말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두 시간 반을 차에 앉아 생각한 결과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입양을 가야 할 고양이들이 정말 많았는데 한 번에 눈에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펌킨. 주황색이었고 태어난 지 11주가 된 아기고양이었다. 검은색 고양이 이름은 바닐라빈 11 주가 된 형도 있다고 했지만 펌킨만 보여달라고 했다. 처음 펌킨을 보았을 때는 낯가림도 심하고 털을 잔뜩 세우고 낑낑 울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 쓰다듬어주고 놀아주니 금방 친해졌다. 


그렇게 펌킨을 집으로 데려왔다. 대려 오는 모든 순간 마음으로 기도했다. 내가 너를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도록, 내가 너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집에 오자마자 고양이 전문가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건 뭐고 저건 뭐고 뭘 사야 하고 뭐가 필요하고. 무슨 애기고양이 한 마리 키우는데 이렇게까지 많이 필요한가 싶었다. 아기의 이름을 바꿨다. ‘니모'. 딱 맞는 이름이었다. 주황색 고양이. 첫 하루는 잘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밥을 줘도 먹지도 않고 침대밑에 숨어있었다. 데리고 오기 전에 청소를 안 해놓아서 청소기를 돌리는데도 걱정이 되었다. 놀래진 않을지, 밥을 먹지 않을 때도 배고프지는 않을지. 그렇게 연주를 하고 돌아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슬금슬금 올라와 베개에 폭 눕더라. 그때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베개를 나눠 배고 잔 다음날 오늘은 이름을 부르면 오고 밥도 잘 먹고 놀기도 잘 논다. 자고 싶을 때는 침대에 앉아있는 내 가슴팍에 올라와 어깨에 머리를 두고 잠이 든다. 


이틀간 아기를 돌보며 느낀 점은 아 이게 우리 엄마아빠가 느꼈던 감정이구나 싶었다. 엄마아빠가 나를 처음 키울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작은 고양이지만 내가 살면서 느껴본 책임감 중 가장 깊은 책임감이고, 누군가를 사랑으로 키우고 돌봐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내 자식한테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경험하고 좋은 것만 주고 싶다는 마음을 알 거 같다. 니모 사료를 살 때도 신중하게 고르고, 어떤 게 좋고 어떤 건 피해야 하고 다 신경 쓰고 따지며 사는 내 모습이 새삼 신기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구나,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밥을 먹을 때 정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부모님의 마음을 또 한 번 배워간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배울 것이다. 아직 초보 집사지만 항상 건강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은 계속될 것 같다. 불편해지는 게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 정도 내가 수고할 수 있지. 


이제 11월 11일은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이자 내가 니모를 만난 날이기도 하다. 비록 나에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지만 너를 사랑으로 극복해야지. 

이 세상 모든 초보집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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